“춤을 출 때 난 어떤 느낌이 들었었지?“
얼마 전 영화를 소개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뮤지컬로도 유명한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많은 발레하는 남자들 중에 내가 선택된 부분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감도 적지 않게 느꼈다. 요청받은 내용은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빌리의 발레학교 오디션 장면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문가적 관점에서 어떻게 봤는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어렵게 입단해 반년 정도 지난 2001년 3월 즈음이었다. 발레단 생활에 대한 기대감 이상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현실이라는 단단한 벽이 매일 밤 나를 짓눌렀다. 나의 마음까지도 서서히 점령해 나가던 매일매일의 초조함을 버텨내던 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영화가 발레하는 남자아이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같은 전공을 하는 남자로서 한번은 봐줘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으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나의 무기력했던 삶을 되살아나게 해 주었던, 내 인생의 비타민과도 같았던 최고의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그 일을 하며 느끼는 기쁨과 감사함은 어느 순간 당연함이라는 감정으로 덮혀져 먼지 가득 쌓인 채 방치되다시피 할 때가 있다. 물론 그 상태를 일깨워주며 자각할 수 있게 만드는 기회가 존재함에도, 그 기회를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건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너무나 다행히도 그 흔하지 않은 기회가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그 기회로 인해 당시 거의 정체되어있다시피 했던 나의 삶이 더 큰 동력을 얻어 전진할 수 있었다.

현실부정이라는 단단한 벽속에 자신을 가둬버린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모른 체, 내가 원해서 선택한 삶이었음에도 어느새 그것에 대한 불평 불만만 늘어놓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나를 영화 속 어린 ‘빌리’가 얼르고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발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런 발레를 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계속 하려 하는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일깨워줬던 영화….
“춤을 출 때 난 어떤 느낌이 들었었지?“
주말 오후 이른 퇴근을 하고 발레단 근처 거리를 거닐다 ‘빌리 엘리어트’ 포스터를 보고는 영화관 표를 사게 되었다. 거의 다 채워진 관람석 속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꾸욱 참고 있었던 눈물을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 결국 터트리고 말았다. 발레학교 오디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아빠와 함께 오디션장을 나가려는 빌리에게 한 여자 심사위원이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빌리의 대답이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빌리는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들지?”
“제 몸이 변하는게 느껴져요,
마치 제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
새처럼요.”

영화 속 심사위원의 질문은 나를 비롯해 영화를 보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던져졌던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부끄러워 처음엔 하기 싫던 발레였지만, 이젠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게 된 발레에 대한 그 순수한 마음을 잊은 나였다. 발레단 내에서 원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덜거리며 신세 한탄만 하며 지내던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

예전에 발레 콩쿨 심사에 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나의 코끝을 찡하게 하며 울컥하게까지 한 참가자들이 있었다. 바로 발레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인 일반부 성인 발레 참가자들이었다.
전공자들에 비해 수준은 많이 떨어졌지만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던 그들의 춤을 보며 어느새 나태해진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춤이 그 사람이듯, 그 사람은 곧 그 춤이다.
춤은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절대 속일 수 없는 것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춤이다. 특히 사람들을 위해 춤을 추거나 춤을 지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순수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춤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