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시카고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때는 1946년이었고, 아직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미국도 불황을 겪고 있었다. 오페라는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 공연에 함께 캐스팅 되었던 베이스 니콜라 로시-레메니가 뜻밖의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성악가였던 그는 그해 여름 이탈리아 베로나의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1913년에 창설된 이 음악제는 고대 로마의 야외경기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오페라 축제다. 일체의 인공적인 음향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장대한 고대 극장을 무대삼아 노래하는데, 하룻밤 관객들만 2만 명이 넘는다. 당연히 성량이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목소리의 성악가들이 필요하지만, 어수선한 시절이라 이런 특별한 목소리를 지닌 성악가들이 귀했다.

로시-레메니의 전보가 베로나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이자 당대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였던 툴리오 세라핀에게 도착한다.

“마에스트로, 드디어 제대로 된 소프라노를 발견했습니다!”
화물선 타고 대서양 건너온 '신의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 탄생기
마리아 칼라스의 이탈리아 데뷔는 이렇게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예산 여유가 없어서 우아하게 비행기를 타고 갈 형편도 아니었다.

칼라스는 당시 미 동부와 이탈리아를 오가던 화물선 하나를 빌려 타고 간신히 대서양을 건넜다. 몇 주만의 항해 끝에 남부 캄파니아 주 나폴리에 상륙한 칼라스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기차를 잡아타고 하루 온종일을 달려 베로나에 도착한다.
화물선 타고 대서양 건너온 '신의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 탄생기
그녀의 목소리는 단숨에 페스티벌 관계자들을 사로 잡았다. 그녀가 지닌 비범한 음악적 자질과 놀라운 예술성은 모두를 매료시켰다. 칼라스가 공연할 오페라는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라 지오콘다 La Gioconda>였다. 베네치아의 길거리를 떠도는 카페 여가수 조콘다는 제노바 태생의 귀공자 엔초 그리말도를 사랑하여 그와 재결합하기를 애원하지만, 뜻하지 않은 정치적 암투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는 쓸쓸하게 죽어간다.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잘 설계된 극적인 스토리와 장대한 아리아와 압도적인 듀엣 등이 엄청난 감동을 주는 대작 오페라다.

칼라스는 초연부터 빛나는 성과를 보였다. 관객들은 미국에서 온 이름 모를 신인 소프라노의 놀라운 기량에 뜨거운 갈채를 보냈고, 그 속에는 당시 베로나의 거부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도 있었다. 50대의 신사로 칼라스보다 28살이나 연상이었던 이 남자는 한눈에 그녀에게 반해 프로포즈를 했고, 둘은 부부로 맺어져 1959년까지 역사상 최고의 프리마 돈나와 그녀의 남편이자 매니저로 전 세계 무대를 누비게 된다.
화물선 타고 대서양 건너온 '신의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 탄생기
1977년 칼라스는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유품 중에는 책 한권이 있었는데, 그 속에서 <라 조콘다> 최후의 아리아 가사가 적힌 자필 메모가 발견되었다.

“자결!(Suicidio), 이 참혹한 순간에 그대는 홀로 남아 나를 유혹하는구나. 내 운명의 최후의 목소리, 내 여정의 최후의 갈림길이여!”

당시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쓸쓸하게 살아가던 칼라스였지만, 자신의 데뷔 무대를 장식했던 비련의 여인 조콘다에 대한 기억만큼은 평생토록 잊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