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간 노르딕 퀴진 선봉장 '노마'…일본의 24절기 한 상에 차려냈다
‘노마(Noma)’는 21세기 미식가들에게 전설과 같은 이름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마는 노르딕 퀴진의 선봉장으로 수많은 요리사에게 지적인 자극을 줬다. 식재료에 대한 탐구 그리고 발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르네 레드제피 셰프와 그가 이끄는 레스토랑, 아니 ‘팀 노마’는 2024년부터 영업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2003년 문 연 이후 뉴 노르딕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2010년부터 5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 이들이 갑자기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2021년에도 세계 1위 레스토랑을 차지하며 최고의 찬사를 받는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산업으로서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한계점을 이야기한다. 노마의 요리들은 철저하게 자연 재료를 채집하고, 직접 가공하며 발효한다. 그 과정을 더해 원하는 맛과 조화를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노마에서의 견습이나 근무를 꿈꾸는 전 세계 젊은 요리사가 넘쳐나고 그들은 노동 환경에 비해 저임금 또는 무임금을 받고서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열정을 피력한다. 하지만 노마도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1년 전부터 예약하는 ‘글로벌 푸디’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재정적 위기에 치달았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노마 형태는 ‘노마 2.0’으로 종료하기로 정했다. 다시 그들의 스타일대로 팝업 형태로 돌아갔다. 2023년 3월부터 10주간 일본 교토 에이스호텔에서 노마의 오리지널 요리가 아니라 교토의 음식을 재창조해 선보인 것.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2년간의 준비를 거쳐 시작한 팝업이다.

그동안 노마가 진행한 도쿄, 시드니, 칸쿤의 툴룸 그리고 교토에 이르는 팝업을 떠올려 보면 장소는 물론 음식과 관련된 땅과 민족, 그들의 전통을 연구해 그것을 플레이트에 옮겨 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우선 팝업 위치가 정해지면 팀 노마는 주거와 어린이집, 학교, 비행기, 비자 확인뿐 아니라 현지의 의사와 생산자, 장인,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넓혀가며 실용적인 중요한 세부 사항들을 준비한다. 이번 교토 팝업의 경우 거의 7년 정도 노마에서 함께 일한 리사 카미오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팝업을 준비하기 위해 노마 내 디자인팀은 일본 전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하고 각각의 테이블 웨어를 협업하기 위해 장인들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팀 노마는 30명의 공예가와 50점의 컬렉션을 모았다. 장인들과 함께 작업한 금속 제품, 옻칠공예, 대나무와 수공예품을 장인의 기술과 함께 원재료 특유의 직관적인 면을 점토와 진흙, 나무 등의 질감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팝업 시작과 동시에 교토 에이스호텔의 실내 오브제도 노마 톤을 입게 댔다. 미역, 나무, 대나무, 조개껍데기 등의 자연과 질감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시간을 반영해 스타일링을 고심했다고 한다.

일본의 사계절을 24절기로 나누고 각각의 계절을 쪼개 10주간의 시간에 테마를 정했다. 3월부터 5월까지 ‘Spring Equinox’ ‘Pure & clear’ ‘Grain Rains’ ‘Beginning of Summer’로 나눠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세 개의 테마로 쪼개 콘셉트를 정했다. 그에 따라 교토를 포함 일본 전역에서 공수한 재료들로 채워지는 메뉴 역시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어렵지 않은 친숙한 봄의 식재료들이 등장해 과연 일본의 식문화와 지형, 환경에 따른 특산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느꼈다. 특히 노마가 꽤 오래 집중하고 있는 홋카이도의 다시마나 해조류 같은 재료를 기름을 더한 육수에 샤부샤부로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 지점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거기에 야생 시금치 한 줄기가 주는 푸르른 풍미란. 생선과 두부, 식감 좋은 죽순 요리를 지나 메인으로 정점을 찍은 연근 스테이크. 글로시한 비주얼의 연근은 밤새 코지 오일에 담아 우마미층과 단맛을 더한다. 그것을 바비큐로 몇시간 서서히 익혀 발효 작용을 유도하며 향신료를 여러 번 발라준다. 바깥이 서서히 갈색이 되며 숯에 떨어지는 기름이 달콤하고 캐러멜화된 연기를 입히며 완성되는 요리. 그리고 셰프 르네가 직접 솥밥의 쌀을 덜어주며 설명하는 녹색쌀. 노마 R&D팀이 반한 녹색쌀은 고대곡물로 여느 쌀과 다르게 고소하고 향이 강한, 녹차와 어우러지는 좋은 팥차를 떠올리게 하는 씹을수록 달콤해지는 식감을 지니고 있다. 채식 시즌에 식사할 이들을 위해 코펜하겐에 가져가 사용할 예정이라고. 페어링 또한 완벽했다. 3년간 일본 구석구석에서 와인부터 사케, 차와 주스까지 공수해온 대표 소믈리에 메이스의 실력은 정말 섬세하고도 강건한 에너지를 보여줬다.

셰프 르네에게 이번 교토 팝업의 가장 뚜렷한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와 그의 팀은 “늘 오리지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위한 팝업을 구상하고 실현한다”고 말했다. 2025년 노마 3.0으로 돌아올 그들의 행보는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지금까지의 형식이 아니라 더욱더 진보적이며 혁신적인 맛을 위한 실험실로의 새로운 스테이지를 펼쳐나갈 예정이다. 남들과는 늘 다른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걷는 그들이 보여줄 그림을 또 한번 기대해 본다.

교토=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