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가 지난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 지휘를 마친 뒤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가 지난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 지휘를 마친 뒤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지난해 말까지 3년간 서울시향을 이끈 핀란드 출신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가 24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은 그가 청중에게 건네는 조금 늦은 작별 인사. 작년 12월 불의의 낙상 사고로 임기 내 마지막 공연(베토벤 합창)을 지휘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시벨리우스 레퍼토리로 4회에 걸쳐 청중을 만난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4번 음반으로 독일 음반평론가협회상과 그래미상 교향악 부문 최고상을 휩쓴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첫 공연이 시작된 이날 오후 8시. 오케스트라 뒤편으로 지휘자 벤스케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언제나 꼿꼿이 선 자세로 지휘봉을 휘두르던 그는 이날 단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깊은 숨을 몰아쉰 뒤에야 두 팔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첫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모음곡’. 핀란드 민족 문화의 요람이라 불리는 지역 카렐리아를 주제로 한 곡이다. 벤스케의 유려한 지휘에도 시작은 약간 불안했다.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감성을 유발해야 하는 현악기의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 구간에서 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등 다소 산만한 인상을 남겼다. 2악장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토속적 색채를 살려냈고, 3악장에선 경쾌한 음색으로 행진곡 특유의 흥겨운 매력을 펼쳐냈다.

이후 명문 음반사 도이체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인 조지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44)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연장 천장까지 뻗어나가는 시원하면서도 열정적인 음색과 애수 띤 표현력으로 시벨리우스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아름다움을 살려냈다. 현에 가하는 장력, 보잉(활 긋기) 속도 등을 섬세하게 조절해 어떤 때는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강렬함으로, 어떤 때는 목놓아 울부짖는 애절함으로 시벨리우스의 서사를 풀어냈다.

다만 불안한 고음 음정과 활의 미스 터치, 흔들리는 왼손 음계 진행 등 연주 중 기술적 실수가 잦았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서울시향의 연주도 솔리스트와 좋은 합을 이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장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바이올린의 선율을 이어받아 폭발적인 힘을 분출해야 하는 구간에서 악단의 빈약한 음색과 단조로운 악상 표현이 드러나 몰입감을 떨어뜨렸다.

2부에선 북유럽의 정취와 서정성이 담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6번 연주가 이어졌다. 출발은 좋았다. 벤스케가 긴 호흡의 현악기 선율과 목관악기의 신비로운 음형을 조화롭게 이끌면서 특유의 차분하고도 서늘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의 전경과 후경을 담당하는 악기군의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다소 평면적인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마지막 악장이었다.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모든 단원이 긴밀하게 주선율을 주고받으며 쌓아가는 응축된 에너지가 부재했다. 고도의 긴장감이 정적인 선율로 옮겨가는 것이 이 작품의 백미인데 그 매력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이날 서울시향 연주는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자리라고 정의하기엔 분명 아쉬움이 남는 무대였다. 지난 3년간 벤스케와 악단이 고군분투하며 이뤄온 시벨리우스에 대한 깊은 이해, 북유럽 음악의 정수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벤스케가 서울시향에 남긴 건 당장 시벨리우스 정신을 흉내 낸 조화(造花)가 아니다. 오랜 시간 무르익어 시벨리우스의 영혼을 꽃피워낼 씨앗이다. 한국의 청중에겐 시벨리우스의 아름다움이 서울시향을 통해 완전히 펼쳐질 그날을 기다려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조급해할 것 없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