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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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의 2020년 11월 영국 글래스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기조연설은 탈원전 이상으로 국가적 에너지 재앙을 불러올 일이다. 그는 2030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황당한 선언’을 했다. 한 해 전 유엔에 제출한 목표치보다 14%포인트나 높인 것인데, 이를 위해선 남은 9년 동안 연 4.17%씩 감축해야 한다. 우리보다 감축 여건이 훨씬 좋은 유럽연합(EU, 1.98%)보다 두 배 이상 엄격하다.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한 건’ 하려고 던진 무책임한 환경 목표를 지키려면 국가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할 판이다.

[책마을] "바보야, 석유 없이는 토마토 한알도 못 키워"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는 문 전 대통령처럼 환경 문제를 낭만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빌 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라는 캐나다 석학 바츨라프 스밀의 궁극적 관심사는 환경이다. 그는 종말론적 비상벨을 울리거나, 기술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만능론적 시각을 모두 배격한다. 책 제목부터가 그렇다.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허튼소리 하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알려면 에너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생존 기반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다. 합성 암모니아 요소비료가 없다면 오늘날 80억 세계 인구의 40% 이상은 기아선상에 서게 된다. 비료공장 설립·가동이 곧 화석연료의 복합 작용이며, 요소비료 재료인 암모니아 합성에는 천연가스가 필요하다.

비료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인 토마토를 예로 들면 비닐하우스 재배 시 연료부터 저장, 포장, 운송 등 전 과정에 화석연료가 투입된다. 125g짜리 중간 크기 토마토 하나에 75mL의 디젤유가 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선 건조 및 작동, 그물 제작, 양식장 운영 등 해산물 뒤에도 반드시 디젤유가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화석연료를 먹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각종 농기구와 비료 덕분에 두 세기 만에 밀 생산 속도를 300배나 향상한 것은 경이롭지 않은가.

현대인에겐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두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물품으로 둘러싸인 분만실에서 삶을 시작해 집중치료실에서 끝난다. 강철이 없다면 오늘날의 어떤 교통수단도 제 기능을 못했을 것이다. 1990~2020년 30년 동안에만 거의 7000억t에 달하는 시멘트가 우리 세계를 콘크리트화했다.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화석연료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현재와 미래 세대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실제 화석연료 의존도를 감안하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한낱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 신재생에너지 전환(에네르기벤더)에 가장 앞서 있다는 독일도 전기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재생에너지에서 얻고 있지만, 1차 에너지 공급에서 화석연료 비중은 지난 20년간 84%에서 76%로 줄었을 뿐이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전기저장장치, 송전 기술,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은 여전히 미미하거나 환상을 논하는 수준이다.

스밀은 “우리에게 남은 시한은 2028년까지”라는 그레타 툰베리식 종말론적 엄포에 허둥댈 게 아니라 현실적 해결책 또는 진정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약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자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일반 승용차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5% 많다. 온실가스인 메탄가스를 배출하는 소고기 소비를 줄이고 대신 닭·돼지고기를 늘리는 것도 조그마한 대안 중 하나다. 에너지 대전환기에 원전의 유용성은 나날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이 책이 기후변화의 온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앞서 지금 세상이 어떠한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대전환> 등 앞선 저서와 일관되게 그의 관심사는 에너지, 식량, 인구, 기술, 그리고 환경이다. 통계 분석의 세계적 대가답게 그가 제시하는 풍부한 데이터 속에서 숫자의 의미가 꿈틀댄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