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그게 전부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참수 작전에 관여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전직 요원의 말이다. ‘60초’는 표적물 최종 확인에서부터 타격 명령, 작전 완료까지 걸린 시간이다.인공지능(AI)이 주도한 최초의 국가 간 전쟁이라는 미국·이란 전쟁은 미군 현장 총지휘관 브래드 쿠퍼 중부군사령관도 언급한 대로 초 단위, 곧 ‘생각의 속도’로 진행됐다. 개전 첫 24시간 동안만 1000개, 한 달 뒤 1만 개 이상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었던 것은 AI 시스템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미군 AI 시스템의 핵심인 팰런티어테크놀로지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은 “간밤에 이란혁명수비대 보급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정보 장교의 질문에 위성 영상과 드론 정찰 데이터, SNS까지 분석해 답을 내놓는 수준이었다.팰런티어는 세계 최대 방위산업 기업 록히드마틴에 비해 매출은 2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시가총액은 2.5배 더 크다. 현대전이 미사일, 탱크 등의 화력에 기반한 ‘플랫폼 전쟁’에서 모래알처럼 파편화돼 있는 데이터를 연결해 숨은 의미를 포착하고 이를 ‘킬 체인’화하는 ‘알고리즘 전쟁’ ‘네트워크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됐음을 방증한다.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는 이번 전쟁을 통해 전통 방산기업을 대체하는 신군산복합체로 부상했다. 팰런티어만큼 상징적인 기업에 안두릴인더스트리즈도 있다. 수천 대의 드론과 센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3차원(3D) 전장 지도를 생성해내는 것은 물론 드론, 무인전투기 등 자율무기까지 직접 생산한다. 전쟁 발발 후 기업 가치가 두 배 이상 불었다.빅테
미국·이란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1기 때부터 이어진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은 2017년 말 이란 등 이슬람권의 극렬한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다. 2018년에는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고, 2020년 1월에는 헤즈볼라·하마스의 핵심 배후인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다. 트럼프 2기 들어선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에 대한 벙커버스터 공격에 이어 이번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참수 작전까지 단행했다.과거처럼 중동 석유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 호르무즈해협이 석유 수송의 ‘초크 포인트’였다면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사안들이다. 미국 자신감의 원천은 잘 아는 대로 셰일 혁명으로 인한 에너지 완전 독립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서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중동 석유에 더 이상 엮이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 패권국 지위가 미국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미국 현대사는 곧 에너지 확보의 역사다. 미국이 에너지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1969년 콜로라도 핵폭발 사건이다. 그때도 셰일이라는 거대하고 단단한 암석층에 가스와 오일이 매장돼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를 뽑아낼 방법을 찾지 못하자 ‘핵폭발’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시도했다. 미국 원자력위원회가 TNT 4만t급 폭발로 셰일층을 깨부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을 합한 것보다도 큰 규모다. 가스 채굴량은 현격히 늘었으나, 방사능 오염으로 상업화할 수 없게 돼 무용지물이었다.미국 정부도 손든 셰일 개발을 해낸 이들이 중소 석유개발 기업인이었다. ‘셰일의
‘골프 스윙의 아버지’ 벤 호건은 37세 때 고속도로에서 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쇄골, 갈비뼈, 발목 등 11군데 뼈가 부러졌다. 의사는 다시 걷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호건은 병상에서 클럽을 들고 왜글 동작을 반복하는 등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퇴원 후에는 고통스러운 재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16개월 뒤 미국 최고 골프대회 US오픈. 최종 라운드 다음 날 18홀 승부로 치러진 연장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으로 꼽힌다. 호건은 평생 다리 통증에도 메이저대회에서 여섯 번 더 우승했다. “골프는 내 인생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골프 하러 갔다.”잭 니클라우스는 40세인 1980년 PGA챔피언십 우승 이후 6년간 메이저 우승이 없었다. 미국 한 신문이 그런 니클라우스를 비아냥대며 ‘황금 곰은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1986년 46세의 니클라우스는 마스터스오픈에서 이 기사를 오려 냉장고에 붙여 놓고 대회에 임했다. 그는 캐디로 나선 아들이 보는 앞에서 후반 9홀에서만 7타를 줄여 대역전승을 일궈냈다.스토리 없는 우승은 없다. 멘털에 극도로 예민한 골프에서는 더 그렇다. 퍼팅 입스를 이겨내기 위해 왼손 퍼팅까지 불사한 대만 여자 골퍼 쩡야니의 4306일 만의 우승, 약물과 알코올에 빠져 인생 나락으로 떨어졌던 한국계 앤서니 김의 5798일 만의 우승 스토리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지난 주말, 골프 팬들의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던 이미향의 우승 소식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 부상으로 시드권을 잃고 큐스쿨까지 추락했던 그는 숱하게 골프를 그만둘까 하다가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지도자가 여호수아다. 이 과정에서 첫 번째로 마주한 요새가 여리고 성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것은 정보전의 승리였다. 과거 모세가 정탐꾼 12명을 보냈다가 내부 여론이 분열된 실패를 거울삼아 여호수아는 2명만을 비밀리에 보내고, 수집한 정보도 자신에게 직보하도록 했다. 현지 협력자 기생 나합의 협조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리고 주민들이 실제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귀중한 심리 정보를 얻었다. 이를 기반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6일 동안 매일 한 번씩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 일곱 번을 돈 뒤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으로 무너뜨렸다.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보기관이라는 모사드를 보유한 이스라엘의 정보 DNA는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형성됐다. 모사드의 전설적인 작전 능력은 여러 차례 영화로도 제작됐다. 넷플릭스 6부작 미니 시리즈 ‘더 스파이’는 신분을 위장해 시리아 국방차관에까지 오른 모사드 최고 스파이 엘리 코헨의 스토리다.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범인 팔레스타인의 검은9월단 멤버 13명을 9년간 쫓아 보복 암살한 ‘신의 분노’ 작전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 홀로코스트 기획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체포·압송 작전을 그린 영화는 ‘오퍼레이션 피날레’다.모사드의 작전 수행 과정은 가공할 정도로 집요하고 치밀하다.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센 파크리자데는 20년간을 추적 관찰했다. 교차로 인근 트럭에 설치된 원격조종 기관총에서 오로지 그의 안면만을 겨냥해 총알이 발사됐고, 차 안에서 25㎝ 떨어져 있던 부인은
미국 독립전쟁의 일대 전환점은 1776년 트렌턴 전투다. 조지 워싱턴의 대륙군은 영국군에 연전연패하며 와해 지경까지 몰렸다가 이 전투 대승을 발판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워싱턴 군대는 눈보라 속에서 병력 2400명을 이끌고 얼음덩어리가 떠다니는 델라웨어강을 건너 영국군이 고용한 독일 용병 헤센 군대를 쳤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짧은 공격 끝에 포로로 잡은 적만 1000명에 달했다. 전투가 벌어진 시간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 새벽. 전날 밤늦게까지 크리스마스 파티로 곤드레만드레 곯아떨어진 용병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베트남전쟁 중 가장 유명한 기습 작전은 구정(베트남어로 뗏) 대공세다. 1968년 1월 30일 밤~31일 새벽 사이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전역의 100여 개 도시와 군사기지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암묵적 관례대로 구정연휴는 휴전 기간이라고 여기고 병력의 절반이 고향을 방문한 남베트남군과 미군이 단단히 허를 찔렸다.중동전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이스라엘이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던 때가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른바 ‘욤 키푸르’전쟁이다. 유대교에서 가장 경건한 명절로 라디오·TV 방송도 중단하고 운전조차 금지된 ‘속죄일’(욤 키푸르)을 노린 이집트·시리아 연합군의 기습으로 개전 초 이스라엘 17개 여단이 궤멸했다. 그로부터 딱 50년 뒤인 2023년 10월 6일, 이번에도 유대력상 7대 절기 중 하나인 명절에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국경을 밀고 내려온 게 현 가자전쟁의 발단이다.명절이나 종교적 기념일, 휴일은 군 경계가 가장 느슨해지는 때다. 요즘 이 방심 상태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
미국 월가의 경쟁력 중 하나가 신조어와 약어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이다. 입에 착 감기는 맛깔난 용어를 통해 복잡한 시장 상황, 기술 변천, 자금 이동 경로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2000년대 초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4개 신흥국을 지칭하는 브릭스(BRICs), 2000년대 후반 재정 위기에 휘말린 남유럽 5개국 피그스(PIIGS), 2010년대 미국 금리 인상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한 신흥 5개국을 가리키는 프래자일파이브(Fragile Five) 등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의 엘리트 경제학자들이 작명했다.월가 신조어가 집중된 분야는 물론 증시 주도주다. 미국 7대 빅테크(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를 묶은 말이 ‘매그니피센트7’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한 투자전략가가 1960년대 서부영화 ‘황야의 7인’에서 따왔다. 매그니피센트 7개 기업의 첫 글자 ATMMAAN에 브로드컴을 포함한 8대 대형 기술주가 배트맨(BATMMAAN)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작년에는 과격한 관세 폭탄 발언 뒤에 결국은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패턴을 역이용해 단기 수익을 노리는 ‘TACO(Trump Always Chicken Out) 트레이드’가 최고 유행어였다. 인공지능(AI)을 빼놓고 증시 트렌드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금, 새롭게 등장한 월가 테마주 이름이 ‘헤일로(HALO) 트레이드’다. Heavy Assets, Low Obsolescence의 약자로, 막대한 자본 투자에 따른 높은 진입 장벽으로 진부화, 곧 도태 위험은 낮은 산업군을 뜻한다. 인프라, 전력망, 철도, 에너지, 중장비 등 실물 자산에 기반한 업종이다. 챗GPT나 제미나이가 소프트웨어 기업은 파괴할 수 있어도, 전기를 생산하거나 직접 땅을 파는 일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수장 마크 앤드리슨은 대표적인 인공지능(AI) 낙관론자다. 그는 AI가 인간을 신의 영역으로 이끌 구세주라고 칭한다. 인류의 IQ를 500, 1000으로 확장해 난제를 해결하고 생산성 극대화로 진정한 ‘풍요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한다. 실업의 공포에 대해서도 AI가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앤드리슨에게는 AI 발전을 멈추는 것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 행위다.설립 21개월 만에 유니콘기업에 등극한 퍼플렉시티의 창업자 아라빈드 스리니바스는 AI에 ‘인류 해방자’ 타이틀을 붙여 줬다. 부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호기심이며, AI는 인간을 권태와 무료함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골드만삭스, 맥킨지 등 세계적 금융·컨설팅 기업도 AI가 세계 경제에 미칠 장밋빛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오픈AI의 챗GPT 출시로 촉발된 생성형 AI의 대중화 원년인 2023년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최근엔 그 기류가 확 바뀌었다. AI발 일자리 상실에 대한 ‘둠스데이 형’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엊그제 미국 월가 한 시장분석업체의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가 메가톤급 파장을 낳았다.AI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AI가 너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바람에 경제의 파국을 초래한다는 게 요지다. 대규모 화이트칼라 감원으로 기업은 역대급 이익을 올리고, 국내총생산(GDP)도 뛰어오르지만 그 부는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극소수 정보기술(IT) 자산가에게 집중되는 ‘유령 GDP’일 뿐이다. 여기에 각 기업이 자체 AI 에이전트를 돌
이혼을 반대하는 로마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성공회를 세워 스스로 수장에 앉은 헨리 8세. 38년 재위 기간에 여섯 번 결혼하고, 그중 두 명의 왕비는 처형했다. 형수이던 첫 부인과 이혼하고 시녀를 새 왕비로 맞았다.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불린이다. 앤은 헨리 8세의 계속된 외도에 자신도 맞바람을 피우다 정부들과 합세해 헨리 8세 제거 공모까지 했다. 3년의 짧은 결혼 생활 끝에 런던탑에서 처형됐다.헨리 8세는 앤 처형 후 시녀를 또다시 왕비로 맞아 아들(에드워드 6세)을 봤으나, 왕비는 산욕열로 사망했다. 이후 새 왕비는 초상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곧 이혼하고 앤의 사촌을 들였다가 앤처럼 간통 혐의로 참수한다. 헨리 8세는 문란한 성생활 탓에 매독에 걸렸다. 에드워드 6세는 아버지에게 몰려 받은 선천성 매독의 영향으로 고작 7년간 권좌에 있다가 1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영국 왕실의 역사는 끊임없는 스캔들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현대의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좌를 팽개친 에드워드 8세(윈저 공작)다. 퇴위 후 행보를 보면 세기의 로맨스로 미화될 일만은 아니다. 윈저 공작은 독일 고위층과 어울리며 히틀러를 만나고 다녔다. 심프슨 부인이 나치 스파이였다는 미국 FBI 보고서가 있다고 한다.엡스타인 파일에 연루된 앤드루 전 왕자(찰스 3세 국왕의 동생) 때문에 영국 왕실이 또 한 번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영국 경찰이 공무상 위법 혐의로 앤드루를 체포해 조사했다. 사법 처리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영국 왕족이 공권력에 체포된 것은 1649년 찰스 1세 국왕이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폐위·처형된 뒤 377년 만이다.엡스타
설 연휴 가장 핫한 글로벌 뉴스는 역시 ‘트럼프발’이다.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 규제 근거가 되는 ‘위해성 판단’을 종료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연방정부 차원의 온실가스 규제가 폐지됐다. 진영 간 입장 또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규제 혁파”와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후정책 퇴행”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온실가스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일관적이다. 지난해 1월 취임 일성으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 내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생산을 가로막는 규제 완화로 생산을 극대화해 에너지 가격을 인하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미국 제조업 경쟁력 향상 및 석유 기반 패권을 재확립하겠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그동안 화석연료를 죄악시하는 온실가스 규제 및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정책을 ‘hoax’(사기) 또는 ‘green scam’(녹색 사기)이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녹색 가면’의 기획자, 중국이 있다는 것이다.트럼프의 극단·선동적 어법으로 그의 말이 궤변으로 치부되는 사례가 왕왕 있지만 녹색 사기론은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석유다. 70%를 넘는 수입 의존도는 물론이고 상당수가 미국 해군이 통제하는 믈라카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해협 봉쇄 시 중국이 멈춰버릴 수 있다는 ‘믈라카 딜레마’는 공산당 지도부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이런 취약한 에너지 패권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고안된 전략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다.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 보조금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에서 흔한 ‘열정 노동’의 원조 격은 애플이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PC를 개발할 때다. 스티브 잡스는 유명한 ‘우주에 자국(dent)을 남기자’는 슬로건 아래 주 90시간 근무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임원이 직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사기를 북돋우고자 등에 재치 있는 문구를 새긴 후드티를 단체로 맞췄다. “90Hours a Week and Loving It(주 90시간 일해보니 너무 좋아)!”2007년 아이폰 개발 때 애플 직원들 사이에서 회사는 ‘이혼 공장’으로 불렸다. 밤과 주말을 포기하고 일에 매달리는 바람에 이혼하거나 실연한 사례들이 회자됐다.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 휘하에서도 고강도 업무 문화는 여전하다. 쿡 자신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다.테슬라가 모델3 양산에 들어갔을 때 일론 머스크가 ‘생산 지옥’이라고 부른 심각한 생산 차질을 빚었다. 머스크 스스로 ‘리더가 가장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주 120시간 근무로 헤쳐 나갔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시가총액 세계 1위가 된 지금도 “언제든 30일 내 망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엔비디아 주차장에는 최고급 차가 즐비하지만 직원들이 퇴근을 위해 시동을 거는 시간은 오전 1~2시다.실리콘밸리 사상 가장 긴박한 비상 경영 체제는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 등장에 구글이 ‘코드 레드’를 발동했을 때다. 코드 레드는 병원에 불이 난 상황이니, 그 위기감을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휴가 전면 취소, 회사 전역의 워룸화, 24시간 릴레이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제미나이다. 그러자 공수가 바뀌었다. 이
1965년 5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는 백악관 마당에서 존슨과 함께 14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베트남전 파병 확대와 한·일 국교 정상화 지지, 주한 미군 행정협정(SOFA), 경제개발 차관 등 향후 한국의 외교·안보와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역사적 성명문이었다. 그 말미에는 미국이 한국의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존슨이 파병 사례로 도서관이나 병원 건립을 제안했으나, 박정희는 과학기술연구소 지원을 끈질기게 요청했다. 방미 한 달 전 일이다. 정부 산하 연구소장들을 부른 자리에서 박정희가 경공업 수출 실적을 자랑하자 최형섭 원자력연구소장이 “계집애들 머리카락 팔아 번 돈이 뭐 그리 자랑스럽습니까”라고 해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식었다. 박정희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그럼 우리가 뭘 팔 수 있어?”라고 하자 최 소장은 “일본은 전자제품 수출만도 10억달러가 넘는다”며 기술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다.미국에서 받은 1000만달러에 우리 정부가 1000만달러를 더해 세운 국내 첫 정부출연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그렇게 탄생했다. 60년 전인 1966년 2월 10일 서울 청계천6가 한일은행 건물의 10평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이후 연구원이 들어선 서울 홍릉은 명성황후의 묘가 있던 곳이다. 일제에 의해 시해된 국모가 묻힌 자리에서 대일본 기술 추격전에 나섰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최형섭 초대 원장의 운영 지침은 ‘인재’와 ‘산업화 기술 개발’ 두 가지다. 당시 국내에 없던 의료보험에 주택 제공, 국내 교수 4~5배 봉급 등으로 해외한인 과학자
태극마크를 달고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의 김성집이 동메달로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제대로 된 바벨이 없어 시멘트로 만든 역기로 훈련해야 했던 열악한 상황에서 목에 건 메달이라 더 값졌다. 김성집은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 조국의 해방을 실감했다”고 했다. 그는 6·25 전쟁 와중인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또다시 동메달을 따 한국 스포츠 사상 첫 2회 연속 올림픽 메달 수상자로도 남았다.첫 메달 뒤 전 국민이 학수고대한 금메달까지는 28년이 더 걸렸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62㎏의 양정모다.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 전해진 쾌거로 대부분 신문사가 호외를 찍을 정도였다. 양정모 이후 한국이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은 142개. 이 중에는 4~5개를 보유한 선수도 더러 있다. 남자 양궁의 김우진이 5개, 여자 양궁의 김수녕과 사격의 진종오가 4개씩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여자 양궁 단체전의 10연패는 올림픽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꼽힌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에는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국민적 영웅이 된 인물들이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장기 말소 사건의 손기정과 56년 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그를 재소환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등이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렸다. 해외 교과서에 등장한 스타도 있다. ‘피겨 퀸’ 김연아는 미국 고교 수학 교과서의 각도 계산법 부분에 그래픽으로 실릴 정도로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았다.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김상겸의 은메달로 한국이
15세기 말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의료진은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10대 소년 세 명의 피를 뽑아 교황에게 경구 투여했다.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세 소년은 과다 출혈로 사망했고 교황 역시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젊은 피를 수혈해 생명을 연장하거나 불로장생하려는 시도는 끊이질 않았다. 16세기 헝가리의 한 귀족 여인은 젊은 여성의 피로 목욕하면 피부 탄력이 유지된다는 말에 현혹돼 수백 명의 하녀를 제물로 삼았다가 성에 유폐된 채 생을 마감했다. 레닌의 동지였던 러시아 공산주의자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는 ‘혈액 교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자신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다가 부작용으로 사망했다.요즘 강남 자산가 사이에서 ‘피 갈이’가 유행이라고 한다. 과거의 위험천만한 방식에 비해 훨씬 과학적이긴 하다. 자기 피 100㏄ 정도를 채혈한 뒤 ‘유포톤’이라는 독일산 장비를 통해 산소 투과와 단파장 자외선 조사 뒤 정맥에 다시 투입해 면역력 향상을 꾀한다는 것이다. 한 회 수십만원의 비용에도 몇 달 치 예약이 밀려 있다고 한다.이런 ‘포톤 테라피’도 ‘롱제비티(longevity)’의 일환이다. 장수를 뜻하는 롱제비티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즉 ‘골골 백세’가 아니라 ‘팔팔 백세’를 추구한다. 롱제비티는 요즘 산업계에서 가장 핫한 분야 중 하나다. 올해 CES에서도 30초 동안 서 있으면 노화 정도를 점수로 계산해주는 900달러짜리 ‘장수 거울’ 등이 단연 화제였다.미국 빅테크들도 ‘회춘 전쟁’에 들어갔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노화는
2010년 7월 일본에서 세계 최초 비트코인 거래소가 개설됐을 때 첫 거래 체결금액은 개당 0.06달러였다. 지금 환율로 88원 정도다. 비트코인은 그 뒤 무수한 굴곡을 겪으며 지난해 10월 7일 12만6198달러(약 1억8544만원)까지 치솟았다. 최초 대비 210만3300배다.비트코인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가격이 치솟을 때는 돈 복사기였다. “1초마다 연봉이 변한다”며 온종일 시세를 쫓느라 일상을 전폐한 코인 중독 환자를 무수히 낳았다. 낙폭도 가공할 수준이었다. 암호화폐 빙하기인 2017~2018년 1년 새 2만달러 언저리에서 3000달러대까지 80% 이상 폭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단 하루 만에 50% 이상 급락한 일도 있었다.비트코인이 또 한 번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연일 8만달러, 7만달러의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며 6만5000달러 선까지 밀려났다. 작년 가을 최고점 대비 반토막으로 추락했다. 최근 비트코인 시세에는 세 거물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미국 중앙은행(Fed) 차기 의장에 예상외로 매파적 성향인 케빈 워시가 지명된 것이 촉발점이 됐다. 유동성이 비트코인 투자자의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우려에서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비트코인 하락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은 없다”는 발언은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화룡점정은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 마이클 버리 사이언자산운용 대표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이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며 5만달러 붕괴를 경고했다.최근 비트코인 약세에는 세계 최강의 공격적 투자 성향을 지닌 한국 투자자들의 이탈도 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역사적 상승세를 탄 국내 증시에 자금이
미국 CES에 단골로 참가하는 기업 중에 농업 부문 회사도 있다. 180년 전통의 세계 최대 농기계업체 존디어가 대표적이다. 차와 사람이 다니지 않는 대형 농장은 일반 차로에 비해 완전 자율주행차를 운용하기가 훨씬 용이하다. 존디어의 인공지능(AI) 트랙터는 스마트폰을 통한 간단한 조작만으로 트랙터가 알아서 밭 갈기, 씨 뿌리기 등을 척척 해낸다. 수백 개의 센서가 작동해 작물 상태에 따라 농약이나 물 분무량도 자동 조절한다. 이 회사의 요즘 슬로건은 “우리는 곡물만큼이나 많은 데이터를 수확한다”이다.존디어처럼 전통 기업이 테크 기업으로 변신한 가장 상징적 사례는 월마트다. 오클라호마 출신 촌뜨기 샘 월턴이 64년 전 인구 5000명의 소도시 아칸소 로저스에 1호점을 연 월마트는 이제 미국 증시에서 빅테크 대접을 받고 있다. 기술주 시장인 나스닥에서 거래되고 있고, 얼마 전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했다. ‘1조달러 클럽’ 중 본래 테크기업이 아닌 곳은 벅셔해서웨이와 월마트 두 곳뿐이다.월마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은 AI 쇼핑 챗봇 ‘스파키’다. 고객이 “바비큐 파티를 할 거야”라고 하면 좋아하는 고기 부위, 즐겨 마시는 음료 브랜드, 기존에 구매한 일회용 접시 세트까지 기억해 장바구니 구성을 제안하는 식이다. 스파키는 아마존 ‘루퍼스’와 함께 에이전트형 AI의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았다.월마트에는 ‘10마일의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 인구의 90%가 미 전역 4700여 개 월마트 매장 약 10마일(16㎞) 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혁신적 배송 시간 단축은 물론 고객이 퇴근길에 매장
미국 보스턴 시민들의 어깨는 미국인 평균에 비해 한 치쯤 올라가 있다는 말이 있다. 미국의 정신이 태동한 곳이자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대와 MIT도 모두 광역 보스턴권에 있다.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개발 주역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992년 MIT의 학내 벤처로 탄생했다. 로봇 공학의 대부로 불리는 마크 레이버트(현 보스턴다이내믹스 AI연구소장)가 창립자다.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혁신 군사기술연구의 상징인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군사 로봇 프로젝트로 기술력을 키워 오다가 2013년 세계 최고의 플랫폼 기업 구글에 인수됐다. 당시 인수를 주도한 사람이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다. 그러나 루빈이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구글을 떠나게 되면서 또 한 번 손바뀜이 일어나게 된다. 이번엔 세계 최대 기술 투자 펀드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손 마사요시(孫正義)의 소프트뱅크다(2017년). 그때 인수전 경쟁자들이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도요타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물류 기업 아마존이다. 소프트뱅크가 2020년 위워크 등의 투자 실패로 2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다시 매물로 나오자 이를 차지한 게 현대차다.보스턴다이내믹스 역사에 얽힌 대학과 정부 연구기관, 기업들은 한결같이 글로벌 넘버 원이다. 이 시대 최고의 지력·기술력, 자본력이 어디로 수렴되고 있는지 단번에 읽을 수 있다. 현 주인 현대차는 세계적 자동차 기업이긴 하지만 1위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CES에서 입증됐듯 세계 최고 모빌리티 기업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됐다.현대차가 구글, 소프트뱅크에 비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데이터를 쌓아 가면서 로봇에 현
로버트 다우니 주연의 영화 ‘셜록 홈즈’에는 지하 권투클럽에서 홈즈와 거구의 권투 선수 간 격투 신이 나온다. 홈즈답게 시합 전에 머릿속으로 제압 시나리오를 아주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한 뒤 그대로 재현해 완전히 KO시킨다. 수건을 던져 시선을 흩뜨리고 상대의 페인트성 잽을 막은 뒤 왼쪽 뺨, 이어서 양 귀때기를 한 번에 때려 놓고는 복부, 턱, 명치 연쇄 강타에 이어 횡격막 타격까지.이때 홈즈가 양 귀때기를 동시에 가격하면서 하는 말이 ‘디스컴버뷸레이트(discombobulate)’다. 얼이 완전히 빠진 상황, 쉽게 말하면 ‘멘붕 상태’다. 이 익숙지 않은 영어 단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서 또 접했다. 트럼프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작전 때 ‘디스컴버뷸레이터(discombobulator)’라는 비밀 병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러시아·중국제 로켓으로 무장한 베네수엘라군이 미군이 진압할 때 방아쇠를 눌렀지만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디스컴버뷸레이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체포 작전 때 수도 카라카스 일대의 정전 및 레이더·통신망 마비와 마두로 경호원들이 설명하기 힘든 음파의 영향으로 극심한 두통과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보도는 이미 있었다. 트럼프의 인터뷰 발언으로 무기마저 작동 불능 상태였음이 추가로 알려진 것이다. 트럼프는 이 모든 마비 상황을 초래한 무기체계를 디스컴버뷸레이터로 통칭한 것으로 보인다.19세기 말 미국의 포함(砲艦) 외교 상징은 쿠로후네(黑船·흑선)다. 1853~1854년 페리 제독이 이끌고 온 군함에 도쿠가와 막부는 ‘태평한 잠을
2023년 99세 나이로 별세한 워런 버핏의 단짝, 찰리 멍거 벅셔해서웨이 부회장.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먹은 배달 음식은 한국식 프라이드치킨과 김치볶음밥 세트였다. 프라이드치킨이 태동한 곳도, 프랜차이즈로 번성한 곳도 미국이지만 이제 치킨 하면 미국보다 한국을 먼저 떠올린다. 두 번 튀기는 방식의 ‘겉바속촉’ 맛과 매운맛, 간장 맛, 달콤한 맛에 치즈까지 곁들인 다양한 풍미로 프라이드치킨 원조 KFC를 능가하는 또 다른 ‘KFC’(Korean Fried Chicken)로 자리 잡았다.멍거 부회장이 평소 좋아하던 음식에 스팸도 있다고 한다.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스팸을 즐기는 그가 분명 반했을 한국 음식이 또 있다. 부대찌개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를 기본으로 마카로니, 통조림 콩, 치즈를 얹고 김치, 사골육수, 라면까지 섞는 이 혼잡스러운 부조화의 조화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인스턴트 라면의 본산 일본 닛신식품이 ‘부대찌개(Korean Army Stew) 맛 컵라면’을 내놨을 정도다.섞고 섞이며 진화해온 K푸드에 김밥도 있다. 일본 노리마키에서 유래했지만, 한국 김밥은 일본 마키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햄, 시금치, 단무지, 계란지단, 우엉, 맛살, 어묵 등 다채로운 속 재료와 충무김밥, 키토김밥 등 다양한 파생 메뉴로 독창적인 영역을 이뤘다. 유튜브나 SNS에서 김밥을 먹고 자랑하는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치킨, 부대찌개, 김밥처럼 ‘원조와 변형 사이’에서 싹튼 또 하나의 K푸드가 있다. 요즘 가장 핫한 디저트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다. 중동식 면 튀김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조합인 두바이 초콜릿의 한국식 변형
상영 영화 중 최고 흥행 실적을 거두고 있는 ‘아바타 3: 불과 재’. 2편(물의 길)부터 세계 첫 개봉 무대를 한국으로 삼고 있다. 아바타 시리즈 외에도 한국에서 최초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가 적잖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더 배트맨’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등. 이들이 한국을 개봉작 테스트베드로 삼는 것은 관객들의 ‘얼리 어답터’ 기질과 바이럴(입소문) 성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50개 가까운 한국어 단어 중 유일한 부사어가 ‘빨리빨리’다. 부실과 날림의 원인이자 망국병으로까지 지목됐지만, 한편으론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7년이었다. 오늘날 세계적 디지털 강국의 토대에는 그런 속도전이 자리 잡고 있다.얼리 어답터는 남보다 빨리 신제품을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한국인의 이 기질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변함없다. 한경에이셀 리서치팀이 신용카드 이용자 2000만 명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챗GPT 등 생성형 AI의 작년 한 해 월평균 유료 구독료가 803억원으로, 넷플릭스의 2024년 월평균 구독료(750억원)를 넘어섰다고 한다. 챗GPT의 국가별 유료 구독 매출 비중을 놓고 봐도 작년 11월 기준(센서타워 분석)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빨리빨리’ 문화와 더불어 한국인의 얼리 어답터 성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DNA가 비교의식과 호기심이다. 일본인이 축소 지향적이라면, 한국인은 비교 지향적이다. 남이 해보는 것은 꼭 해
2021년 이후 국내 개인정보 유출 건수는 1억 건 언저리로 추정된다. 지난해 7월까지 451건의 보안사고가 발생해 8854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3369만 건의 고객 계정이 관련된 작년 11월의 쿠팡 사태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고객 정보는 ‘공공재’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법하다. 사실상 국민 전체의 개인정보가 다 털린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재외 교민이나 국내 체류 경험이 있는 외국인, 해외에서 국내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해본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는 분노 지수만 더 치솟게 할 뿐이다. 어차피 다 털릴 거면서 그 짜증 나는 ‘인증 지옥’을 겪게 했으니 말이다.국내 거의 모든 인터넷 서비스 이용은 휴대폰 본인 인증을 거치도록 설계됐다. 그러다 보니 재외 교민이더라도 한국 휴대폰 번호가 없으면 인증 단계에서 제동이 걸린다. 재외국민이 아니라 ‘제외 국민’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취업이나 학업 등을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역시 ‘외국인 등록증’이 나오는 데 걸리는 2개월간은 휴대폰을 개통할 수 없어 이 기간 ‘디지털 난민’ 신세가 된다. 한류 열풍에 비해 해외 역직구가 활성화하지 못하는 이유도 국내 휴대폰 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회원 가입 자체가 원천 봉쇄되기 때문이다.반면 아마존, 이베이, 알리익스프레스 등 글로벌 플랫폼의 인증 시스템은 훨씬 유연하다. 이메일 인증만으로 소액 결제 등 기본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고, 고액 결제나 성인용품 등 민감 단계에서만 고강도 인증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해킹이라는 것이 서버 등 뒷단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뒷문은 허술하게 관리하면
지난해 이스라엘 항구 도시 하이파에서 여학생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이 한국인임을 안 그들은 반가워하면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한 학생이 사진을 찍으면서 한 말은 ‘원, 투, 쓰리’가 아니라 ‘하나, 둘, 셋’, 우리를 부르는 말은 ‘한국 아저씨들’이었다.이스라엘 학생들 입에서 ‘아저씨’라는 말이 너무도 쉽게 나오는 것은 넷플릭스에서 최고의 한국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의 아저씨’ 영향이다. ‘국뽕’과 별개로 그들이 아저씨 호칭의 다중다의한 의미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아저씨뻘’이라고 할 때처럼 친족 용어도 되고, 낯선 성인 남성을 부르는 통칭도 된다. ‘나의 아저씨’나 ‘키다리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주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한국어 호칭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말도 찾기 힘들다. 영어에선 남자 형제는 ‘브라더’, 여자 자매는 ‘시스터’로 묶어 부르지만, 우리는 성별 상하에 따라 형·언니·동생·오빠·누나로 참 다양하다. 심지어 같은 동양 문화권인 일본도 형·오빠는 ‘오니상’, 언니·누나는 ‘오네상’으로 나뉠 뿐이다. 가족 호칭이 연인 사이에도 쓰이는 것을 보면 외국인들은 더 혼란을 느낀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일본에 처음 소개됐을 때 한석규가 여자 후배와 오랜만에 재회한 장면에서 후배가 한석규를 ‘오빠’라고 부른다. 일본어 자막은 ‘오니상’으로 나왔는데, 일본 관객에게는 자칫 둘이 친남매 간이라는 혼돈을 줄 수 있다. ‘센
1980년대까지 중·고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지리 교과서에서 텅스텐(중석)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석회석 정도를 빼면 자원 불모지인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광물이다. 강원도 영월의 상동광산은 지금도 단일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텅스텐 광산이다. 추정 매장량이 5800만t으로 향후 수십 년에서 100년까지 채굴이 가능하고, 텅스텐 함유율(품위)도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미국 CBS에서 이곳을 취재해 작년 말 방영했다. 텅스텐은 원소 중에서 녹는 점이 가장 높아 배선, 반도체, 배터리는 물론 각종 탄환 소재로 쓰이는 등 방위산업에 필수불가결한 광물이다. 이곳 대표는 캐나다 광산기업 알몬티 인더스트리스의 창업자, 루이스 블랙이다. 알몬티는 상동광산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블랙 CEO는 중국이 세계 텅스텐 공급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에 필수적인 텅스텐 공급의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고 했다. 백악관에서 미국 관리들과 안정적인 텅스텐 공급에 대한 계약도 맺었다고 했다. 알몬티는 올 1분기 상동에서 텅스텐 본격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우리가 상동광산을 잊고 있는 사이 모든 게 바뀌었다. 묻힌 곳만 한국일 뿐 소유권 일체가 캐나다 회사로 넘어갔다. 그 회사는 미국 안보 공백을 메워주는 일을 최대 역할로 생각하고 있다. 국내에는 제련 기술이 없어 원광을 미국으로 가져가 가공해야 한다.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상동광산에서 중석이 발견된 것은 1916년, 빛을 보기 시작한 때는 6·25전쟁부터다. 1950년대 초 미국에 특수강 원료인 중석을 공급하는 한미중석협정과 함께 공기업 대한중석이 세워졌다. 과거 우리 경제에서 텅
2013년 3월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우고 차베스가 사망한 지 이틀 뒤 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는 차베스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유리관에 영구 보존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신 미라화를 위해서는 사망 직후에 특수처리해야 했으나, 며칠이 지난 터여서 기술적인 문제로 실현하지는 못했다. 대신 수도 카라카스 서부의 차베스가 쿠데타 지휘소로 사용했던 곳에 유해를 안치한 뒤 사망 시각(오후 4시25분)에 맞춰 매일 예포를 쏘며 신격화했다.마두로는 평생을 차베스의 후광 속에서 살아왔다. 중졸 학력에 버스 기사 출신 노동 운동가인 그는 30세 때인 1992년, 쿠데타 실패로 투옥된 차베스를 면회하러 갔다. 그 인연으로 1999년 차베스 집권 이후 국회의장, 외교부 장관, 부통령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2012년 차베스가 암 치료차 쿠바로 떠나기 전 행한 마지막 TV 연설에서 공식 후계자로 지명됐다. 이듬해 차베스 사망 후 대선에서 “차베스가 작은 새로 환생해 나에게 지저귄다”는 식으로 ‘차베스 팔이’를 한 끝에 1.5%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하지만 마두로는 차베스보다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차베스 때와 달리 유가 폭락으로 무상 시리즈를 이어 나가기에 재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해결책으로 가장 손쉬운 수단인 무제한 발권력을 동원했다. 2018년 베네수엘라의 물가 상승률은 무려 169만8488%를 기록했다. 그러자 2018년 10만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2021년에는 다시 100만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낮추는 무지막지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까지 실시했다.마두로 정권이 국가 파탄 상황에서 생존 방식으로 삼은 게 마약 유통이다. 마두로와 함께 미국 법정에 선 처의 조카도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을 상징하는 사진이 있다. 지금은 슬로바키아 지역이 된 브라티슬라바의 국립 코메니우스대 본관 앞 광장에서 한 남성이 양손으로 가슴 옷깃을 풀어 헤친 채 홀로 탱크를 막아서고 있는 모습이다. 프라하의 봄은 소련이 동원한 25만 명의 바르샤바조약 군대와 2000대의 탱크에 의해 이틀 만에 무력 진압됐지만, 21년 뒤 벨벳혁명의 씨앗이 됐다.1989년 톈안먼 사태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장면이 ‘탱크맨’이다. 흰 셔츠, 검은 바지 차림의 한 젊은 남성이 베이징 창안대로 한가운데서 탱크 행렬을 가로막고 있는 사진이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장의 사진’ 중 하나다. 톈안먼 광장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한 호텔 발코니에서 촬영한 프리랜서 사진기자 찰리 콜은 필름 롤을 비닐봉지에 담아 변기 물탱크에 숨겨 공안의 압류를 피했다. 사진 속 남성의 신원과 생사는 여태껏 확인되지 않고 있다.프라하의 봄과 톈안먼 사태 때 탱크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이번엔 이란에서 연출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 속에 수도 테헤란에서 한 남성이 도로 복판에 웅크리고 앉아 진압 경찰의 오토바이 행렬을 막고 있는 모습이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요인은 살인적 환율·물가 폭등이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달러당 140만리알 수준으로, 2015년 미국 등 서방과 핵 합의 당시 3만2000리알에 비해 10년 새 4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지난해 이스라엘 전쟁 여파까지 겹쳐 물가 상승률이 40%를 넘는다.이란은 세계 유일의 이슬람 신정 국가다. 이 독재 신정 체제가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거하겠다며 핵 개발에 올인한 대가로 경제가 결딴난
삼양식품은 주식시장에서 ‘면비디아’로 통한다. ‘라면’과 ‘엔비디아’의 합성어로, 주가 상승세가 미국 엔비디아를 연상시킨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양식품 주가는 최근 3년 새 10배가량 올랐다. 대표 제품 불닭볶음면의 세계적 인기 덕이다. 해외 매출 비중이 80%나 되다 보니 수익성도 좋다. 국내에선 라면값 100원만 올려도 정부가 쌍심지를 켜고 보는데, 주력 시장이 해외이다 보니 가격 정책에서 훨씬 자유롭다. 식품회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안팎인 데 비해 삼양식품은 20%를 웃돈다. 불닭볶음면 열풍에는 BTS와 ‘영국 남자’ 같은 해외 유명 유튜버의 불닭 도전 콘텐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구 사회에서 학교에 김밥을 싸가면 미개인 취급을 받았다. 들기름·참기름 냄새에 끈적거리는 식감과 검은색 음식 색깔까지, 서구인에게 이질감투성이 음식인 탓이다. 그랬던 김도 요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올해 사상 첫 수출 10억달러를 돌파하며 ‘검은 반도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이 역시 한류 영향이 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매일 아침 김밥을 먹는 모습이 전 세계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올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중 루미가 김밥을 통째로 먹는 장면이 불을 붙였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와 래퍼들이 김밥을 먹고 어깨춤을 추거나 “미쳤다”고 감탄하는 SNS 영상이 지속해서 회자하고 있다.K푸드의 차세대 주자로 부상하는 게 어묵이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어묵 고로케가 ‘한국판 딤섬’으로 불리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선봉장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미국 워싱턴DC의 대표 공항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이다.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미국 측 대표 조인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6년간이나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1959년 암으로 사직한 뒤 한 달 만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아이젠하워의 지시로 신공항에 이름을 붙여 기념하도록 했다.워싱턴 덜레스 공항이 개항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 그 케네디가 1963년 11월 암살당했고, 미국 전역이 비탄에 잠겼다. 추모 캠페인의 일환으로 주요 시설물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바꾸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플로리다의 우주기지는 케네디 서거 1주일 만에 ‘발사운영센터’에서 ‘케네디우주센터’로, 뉴욕의 관문 JFK국제공항은 공항 개항 전의 골프장 이름을 딴 아이들와일드공항에서 서거 한 달 만에 현 이름으로 바뀌었다.김춘수의 시 ‘꽃’처럼 우리는 이름을 통해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자주 이용하는 시설물에 붙인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공항, 베트남 사이공의 현재명인 호찌민시 등은 국부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사후 추모가 아니라 현재 권력자의 이름을 공공장소에 붙이는 것은 독재를 위해 추앙을 강요하는 행위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뒤 출세 기반이 된 도시를 스탈린그라드로 바꾸고, 사담 후세인이 고향에 자기 이름의 초대형 사원을 짓고, 김일성 생전에 대학·광장·거리는 물론 꽃 명칭에까지 그의 이름을 갖다 댄 것이 다 그렇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0~1970년대, 육군사관학교 ‘입결’은 서울대 수준이었다. 지방에서는 육사에 합격하면 플래카드를 걸 정도였다. 학비, 생활비는 물론 ‘품위유지비’ 명목의 용돈까지 나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을 끌어들였다. 임관 후 대위로 예편하면 정부 부처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유신사무관’제도까지, 그야말로 ‘꿈의 학교’였다.한국 정보기술(IT) 혁명의 산증인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부총리)은 경기고(54회) 출신으로 육사(18기)에 들어갔다. 고교 시절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서울대에 가고, 나라의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육사에 가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영향받아서다.경기고 동기 30여 명이 육사 시험을 봤고, 그중 11명만이 합격했다. 오 전 부총리는 기초과학부터 기계, 전기 등 모든 응용과학을 육사에서 배웠다고 한다. 육사의 교과 과정은 미국 웨스트포인트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왔는데, 웨스트포인트가 미국 최초의 공과대학이다.육사의 영화는 이제 ‘아 옛날이여~’일 뿐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육사 임관 기수 중 자퇴 인원이 77명으로 전체 정원(330명)의 23.3%에 달했다. 지난해(35명)에 비해 2배 넘게 급증했다. 반면 경쟁률(26.2 대 1)은 전년 대비(44.4 대 1) 반 토막 가까이로 떨어졌다. 일반 대학에 비해선 여전히 높지만, 내용을 보면 이 또한 속 빈 강정이다. 1차 시험 합격자 중 78%는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육사 시험이 수험생들에게 일종의 모의고사로 전락한 것이다.육사의 퇴조는 우리 군 위상의 추락을 그대로 반영한다. ‘병장보다 못하다’는 초급장교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가장
‘워터게이트’ 사건에는 결정적 제보자가 있었다. 일절 신원이 비밀에 부쳐져 ‘딥 스로트’로만 불렸다. 정체가 FBI 전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진 것은 사건 발생 33년 만인 2005년 미국 한 잡지의 특종 보도를 통해서다. 시사 잡지보다 연예·패션지 성격이 더 강한 ‘배니티 페어(Vanity Fair)’다.배니티 페어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막강한 매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리는 매년 4월호에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한데 모아 커버 사진을 싣는다. 우마 서먼, 니콜 키드먼, 기네스 펠트로 등이 잠옷 콘셉트로 참여한 적도 있다. 톰 행크스, 해리슨 포드, 잭 니컬슨, 브래드 피트 등이 ‘할리우드의 왕’이란 타이틀로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타임 100대 사진’으로 꼽힌 데미 무어의 만삭 누드 사진 역시 이 잡지 표지에 실린 것이다.미국 고소득층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매달 100만 부 이상 팔린다고 한다. 연예가 소식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계의 심층 보도가 수준 높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딥 스로트 외에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 행각 ‘테라노스 사건’의 장본인 엘리자베스 홈스의 기행을 낱낱이 추적 보도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또 한 방을 터뜨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충복 ‘얼음공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인터뷰로 워싱턴 조야를 흔들고 있다.와일스는 트럼프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지만 ‘알코올 중독자의 성격’을 지녔다고 했다. 과도한 자신감에 따른 통제불능적 성격을 지적한 듯하다. JD 밴스 부통령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음모론자’로 표현했다. 정치적 기회주의자라는 뉘
눈에 온통 콩깍지가 씌지 않는 한 결혼은 요모조모를 면밀히 따지는 신중한 선택 행위다. 남녀가 각자의 자원을 놓고 가치를 교환한다는 관점에서 결혼시장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요즘 결혼시장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재산, 소득, 외모 등을 종합해서 A~D등급으로 나눈다고 했을 때,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끝내 ‘재고’로 남는 부류는 남자 D와 여자 A등급이다.남자 D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A등급 여성은 왜일까.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는 ‘유보 임금’ 이론으로 설명한다. 구직자가 제안된 일을 맡도록 하는 최소한의 유인책인 유보 임금처럼, 결혼도 상대방과의 결혼 생활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만족스러울 것으로 예상돼야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30대 미혼 여성 50명을 인터뷰한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라는 책의 저자들은 그 ‘유보 수준’을 이렇게 요약한다. “모두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키는 딱 5㎝만 더 크고, 지방대라도 4년제 대학을 나왔으면 했다. 현재 소득이나 미래 전망도 자신보다 낫기를 희망한다.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는 항목은 키, 그다음은 학력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포기하기 어려워한 것은 소득이다.”국가데이터처가 어제 발표한 ‘2015~2023년 인구동태 패널통계’도 이런 결혼시장의 흐름과 부합한다. 30대 초반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자는 정규직일 때, 소득이 평균 이상일 때 혼인과 출산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여자는 정규직·고소득일수록 결혼·출산 비율이 낮았다.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소득을 올리는 남성이 결혼에 적극적인 데 비해 같은 조건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장의 사진’은 역사적 전기가 된 사건을 다룬 작품이 대부분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버섯구름(1945),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1969), 네이팜 투하로 화상을 입고 절규하는 베트남 알몸 소녀(1972), 톈안먼 광장에서 홀로 탱크 행렬을 가로막고 선 중국 남성(1989) 등. 이 중 20세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꼽히는 게 ‘마천루 위의 점심’이다.합성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기에도 아찔하다. 고층 건물 건설 현장의 한 가닥 철제 보(거더)에 걸터앉아 있는 11명의 남자. 1932년 9월,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건설 당시 69층 260m 높이에서의 모습이다. 사진 제목과 달리 점심을 먹고 있지는 않으나, 사진 속 인물들은 건물 공사 현장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노동자다.사진은 건물 홍보를 위해 연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물 표정이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아일랜드와 캐나다 원주민 모호크족 등 이민자들로 추정된다. 특히 모호크족은 유전적으로 고소공포증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1930년대 록펠러 빌딩 외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뉴욕의 초고층 건물 건설에는 모호크족 노동자가 대거 투입됐다. 안전장치가 전혀 없이 철골 위에 기름이 흘러 있는지 등만 확인하고 작업을 했는데도 사망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였다고 한다.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답게 숱하게 패러디됐다. 국내에서도 배우 류승룡이 철골 위에서 짜장면을 먹는 배달앱 CF 등에 활용됐다. 타임이 매년 이맘때면 발표하는 ‘올해의 인물’로 ‘인공지능(AI) 설계자’를 선정했다. 표지 사진으로는 마천루 위의 점심 사진에 AI 시대를 주도하는 빅테크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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