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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민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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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민 칼럼] 日·中 갈등이 남의 얘기가 아닌 이유

    중국 국가부주석을 지낸 왕치산이 부총리 시절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과 한 행사장에서 나눈 대화다. “전에는 장관이 내 선생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선생 자리에 있는 것 같소. 미국 시스템을 보시오. 우리가 당신들한테 더 이상 뭘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네.”왕치산이 폴슨의 얼굴을 뻘겋게 만든 이런 말을 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금융위기는 중국 공산당에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역사적 전기였다. 영원할 것 같던 미국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는 덩샤오핑 이후 도광양회의 위장술을 벗어던지고 패권 야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남중국해 영유권을 국제 사회에 처음으로 공식 제기한 게 2009년이다. 이듬해인 2010년 9월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충돌 사건이 일어났다. 직전인 2010년 2분기, 중국이 분기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말이 충돌이지 중국 어선이 일본 해경 순시선을 의도적으로 들이박은 도발 행위다. 일본은 중국인 선원 전원을 체포해 일본으로 송환했으나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17일 만에 전원 무조건 석방하는 수모를 당했다.중국이 국제 분쟁 때마다 꺼내는 명분이 ‘국가핵심이익’이다. 전쟁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국가 생존권 문제다. 주권, 영토완정(領土完整), 안보, 국민 생명, 변경 이슈 등을 망라한다. 특히 영토완정은 실효 지배 여부를 넘어 자의적 역사를 들이대며 단 한 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비타협성으로 주변국과 갈등을 확산시키고 있다.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한일령(限日令)’의 근거로 제시하는 게 국가핵심이익 침해다.

    2025.12.09 17:34
  • [천자칼럼] '악마의 금속' 銀

    금에 밀려 늘 서자 신세인 은에 대해서도 몇 차례 초대형 매집이 있었다. 미국 텍사스 석유 재벌의 후손인 헌터 형제는 1970년대 실물 은 1억 트로이온스를 사들였다. 당시 세계 은의 3분의 1 규모다. 인플레이션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실물 자산이 오를 것으로 예측해서다. 1970년대 초 온스당 1달러선이던 은값은 1980년 초 49달러로 폭등했다. 두 형제의 투기적 매집은 금융당국 개입을 불렀다. 1980년 3월 27일 은 선물가격이 단 하루 만에 50% 이상 폭락한 ‘검은 목요일’ 이후 몰락이 시작돼 이들 형제는 결국 파산했다.‘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은에 손을 댄 적이 있다. 1998년 은 보유량이 1억270만 온스에 달했다. 공급 부족과 재고 급감 등을 감안할 때 가격이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버핏은 두 배의 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세계 최대 은 투자 큰손은 JP모간으로 파악된다. 2021년 1월 기준 뉴욕상품거래소(COMEX) 창고 은 보유량의 절반이 넘는 1억9000만 온스 이상의 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달러 하락에 대비한 리스크 헤지와 더불어 금, 은 등 실물자산을 기초로 한 가상화폐 구축이 이유라는 분석이다. 은 채굴 원가가 온스당 14~17달러인데, JP모간의 평균 매입 단가는 15~18달러로 저가 매수를 위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억눌러 왔다는 의혹도 있다.은 시세가 온스당 57달러를 돌파하면서 역사적 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은 붐에는 과거와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양광, 전기차,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 소재라는 수요 측면과 환경 규제 등으로 은광 생산이 지속 하락했다는 공급 측면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은에는 금속의 대

    2025.11.30 17:35
  • [천자칼럼] '코인 대도(大盜)' 北 라자루스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슐로모 카프란 거리에는 세계 최대 사이버 보안 기업 체크포인트 본사가 있다. 전화선으로 겨우 인터넷에 접속하고 모뎀 특유의 삐직 소리가 나던 1993년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을 내다보고 설립된 회사다. 이곳에서 사이버 보안 산업에 관해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직원은 북한 해커 그룹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탈취 사건 대부분이 그들 소행이라는 말과 함께.북한의 ‘라자루스 그룹’은 이렇게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에서 8100만달러를 털어갔다. 목표 금액은 10억달러였으나, 도중에 시스템이 차단돼 그나마 이 정도로 피해를 줄였다.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사건 때는 피해를 본 나라가 세계 150개국이다. 압권은 올 2월 두바이에 본사가 있는 바이비트 가상화폐거래소에서 14억6000만달러 규모의 이더리움을 훔친 일로, 사상 최대 코인 탈취 사건이다. 북한이 올 한 해 빼간 가상화폐는 20억달러, 누적으로 60억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비트코인 보유량이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한 엘살바도르보다 많다고 한다.지난 27일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서 발생한 445억원 해킹 사건 배후로도 라자루스가 지목되고 있다. 2019년 580억원 규모 이더리움 해킹 사건과 똑같은 날짜에 당했다. 업비트의 모기업인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 합병일에 사건이 터졌다. 잔칫날에 재 뿌린 격으로, 라자루스에 철저히 농락당한 모양새다.수학·과학 영재를 뽑아 초등학교 때부터 해커로 키우는 북한군 해커 규모는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국방부 사이버작전사령

    2025.11.28 17:26
  • [천자칼럼] 트럼프의 '제네시스 미션'

    미국의 핵무기 개발은 잘 알려진 대로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9년 10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서 “독일보다 늦지 않도록 서둘러 핵무기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간절한 호소의 편지를 받았다. 실제로 편지를 쓴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절친인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로, 아인슈타인은 발신인으로 서명만 했다. 당시 독일은 우라늄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 뒤 벨기에에서 우라늄을, 노르웨이에서는 감속재로 쓰일 중수를 다량 확보한 상태였다.루스벨트가 핵 개발을 승인한 것은 2년 뒤인 1941년 10월이었다.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다. ‘맨해튼’이란 이름은 뉴욕 맨해튼의 컬럼비아대에서 초기 연구가 이뤄진 데서 유래했으며, 핵심 과정은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등에서 진행됐다. 로스앨러모스란 지명이 대통령 명령에 따라 지도에서 사라졌을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루스벨트는 부통령 해리 트루먼에게도 핵 개발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공지능(AI)판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할 ‘제네시스 미션’ 출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네시스’는 성경의 ‘창세기’로, AI로 새 세상을 열겠다는 취지에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영역이 된 AI 패권 장악을 위해 미국의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는 ‘AI 총동원령’ 격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구축한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 풀을 활용해 초지능·거대 AI 모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신소재 개발, 생명공학, 대체 광물, 핵융합 발전, 양자 컴퓨팅, 차세대 칩 등 전략 분야에서 초격차를 내겠다는 목표다.맨해튼 프

    2025.11.26 17:31
  • [천자칼럼] 트럼프·맘다니의 말발굽 이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계가 껄끄러운 지도자 중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둘은 만날 때마다 입을 악다물고 관절이 하얘질 정도로 팔씨름 악수를 하며 힘겨루기 한다. 트럼프가 SNS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에마뉘엘은 항상 틀린다”고 저격하면 마크롱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며 뭉개는 식이다.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트럼프 사이는 정반대다. 스타머가 노동당 대표로 트럼프와 정치적 성향이 상반됨에도 둘은 각별한 관계다. 영국이 유럽연합(EU, 15%)보다 낮은 10%의 상호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었던 데도 정상 간 우애가 한몫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처럼 스타머의 몸 낮추기가 트럼프의 환심을 샀다. 스타머는 트럼프가 서류 꾸러미를 바닥에 떨어뜨리면 아랫사람처럼 급히 허리를 굽혀 주워줄 정도다.스타머-트럼프 이상으로 모든 것이 다른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과 트럼프 간 회동이 화제다. 34세 최연소 뉴욕시장과 79세 최고령 미국 대통령, 자칭 사회주의자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 서로를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라며 포효하던 둘이 정작 만나서는 세상없는 브로맨스를 보였다. 맘다니는 트럼프에게 ‘Sir’로 극존칭을 쓰고, 사진을 찍을 때도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등 시종일관 존중의 자세를 표했다. 트럼프 역시 팔꿈치로 툭툭 치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둘이 서로에게 한 표현들은 덕담 일색이었다.‘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하듯, 둘의 뜻밖의 밀월 관계에는 정치 이론 하나가 작용하고 있다. 극좌와 극우가 서로 극단적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밀접하게

    2025.11.23 17:38
  • [천자칼럼] 휴대폰 딴짓

    글로리아 마크 미국 UC어바인 석좌교수는 현대인의 집중력을 추적 연구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PC 화면에 대한 평균 주의력 지속 시간이 2004년에는 2분30초였다. 2012년 연구에서는 75초로, 2016년에는 47초로 줄어들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훨씬 더 단축됐을 것이다.마크 교수에 따르면 집중력을 방해하는 주범은 우리 자신이다. 알림, 전화 같은 외부 요인에 방해받는 것만큼이나 자주 스스로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린다. 그 ‘다른 일’로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휴대폰이다. 현대인은 하루평균 96회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한다. 수면시간을 빼면 대략 10분에 한 번꼴이다.휴대폰 딴짓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길을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보게 되면 시야 폭은 56%, 전방 주시율은 85% 감소한다. 그로 인해서 사고 발생 확률이 70%나 증가한다고 한다. 운전 중에는 더 위험하다. 60㎞ 속도로 주행 중에 휴대폰 액정 화면을 확인할 경우 1초간 폰에 집중하면 15m 더 간 뒤에 제동하게 되고, 2초간 집중하면 34m 더 간 뒤에 제동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혈중알코올농도 0.08% 음주 운전 때 수준으로 반응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사고 위험은 물론 건강에도 안 좋다. 휴대폰을 보면서 식사하면 ‘식사 엔그램’이라고 하는 뇌 속 식사 기억 데이터가 손상돼 과식하게 된다. 수면장애, 시력장애, 안구건조증, 거북목증후군, 손목터널증후군 등도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에 따른 장애다.휴대폰 딴짓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일이 있었다. 전남 신안 족도 여객선 좌초 사건의 원인이 항해사가 휴대폰을 보느라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구간에서 자동항법장치에 선박 조종을 맡겨 변침(

    2025.11.20 17:36
  • [윤성민 칼럼] 학교보다 출신 부대를 더 따지는 이스라엘의 힘

    USB 메모리, 캡슐 내시경, 인터넷 방화벽(파이어 월), 자율주행의 근간인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모두 이스라엘에서 탄생한 제품·서비스다. 1인당 벤처창업률 세계 1위, 인구 1000만 명인데도 나스닥 상장 기업 수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붙는 수식어가 스타트업 네이션, 창업국가다.이스라엘 청년은 다른 나라 또래들이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군대부터 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남성은 3년, 여성은 2년 의무복무한 뒤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제대 후에도 20년간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군이 개인의 삶을 이처럼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연한 사고가 무기인 혁신기업이 번성하고 있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궁금증은 지난주 이스라엘에서 만난 한 예비역 장성을 통해 다소나마 풀렸다. 15년 전 퇴역했다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공습 이후 예비군 지휘관으로 복귀한 그는 1녀2남을 두고 있다. 큰딸은 해군에서 스쿠버다이버로 근무한 뒤 의대에 진학해 현재 의사를 하고 있다. 특공대 출신 사위는 공대를 거쳐 방산기업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역량을 군에 환원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첩보부대에서, 막내아들은 공군 무인기 조종사로 군이 공학 기술을 익히는 배움터가 됐다. “아이로 군에 들어와 남성과 여성이 돼서 나가는 것이죠.”철부지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곳이 군이란 얘기다. 이스라엘방위군(IDF) 병력 선발 과정부터 교육, 군 문화까지 보면 ‘성숙함’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다. 이스라엘군은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받지 않는다. 과거 경력이 아니라 잠재 역량을 가장 눈여겨본다. IDF에서 최우선 선발

    2025.11.19 17:23
  • [윤성민 칼럼] AI 강국, 핵심 戰力은 電力이다

    인공지능(AI)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계량화할 수 있는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AI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것은 AI 소비자인 우리의 질문 요청을 AI 모델이 저장된 데이터센터 서버랙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추론·응답하는 상호작용이다. 그 과정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힘은 전적으로 전기다.AI 세상을 움직이는 데는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한가. AI 모델을 만들 때부터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 매개변수(파라미터)가 1조8000억 개로 알려진 오픈AI GPT-4의 훈련에는 50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이 소모됐다. 한국 전체에서 40분가량 소비되는 전력 규모다. AI가 본격적으로 전기 블랙홀이 되는 것은 모델 개발 후부터다.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과학분석 잡지인 ‘MIT 테크놀로지리뷰’가 얼마 전 우리 생활 속 AI의 전기 소모량을 분석했다. 기금 모금 자선 달리기 행사 개최를 위해 AI에 모금 방법에 대해서 15번, 전단 홍보물용 이미지에 대해 10번, 인스타그램용 영상용으로 3번을 요청했다고 가정할 때 예상 전력 소비는 약 2.9KWh(킬로와트시)다. 전기자전거로 160㎞를 주행하거나, 전자레인지를 3시간30분 돌리는 에너지양이다.이런 AI 전력 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해 보자. GPT-4의 상위 버전인 GPT-5를 사용하면 질문 1건당 8.7배의 전력이 더 든다. 세계에서 하루 25억 건의 질문 요청이 있다고 하면 하루 전력 소모량은 45GWh, 원전 2~3기의 전력량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30년에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945TWh(테라와트시)로 팽창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 전체의 전력 소비량보다 많다.이번 경주 APEC

    2025.11.05 17:24
  • [천자칼럼] FOMO와 FOPO 사이

    역사적 증시 변동기였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닷컴 버블 때. 상장 6개월 만에 150배 폭등한 뒤 99% 하락한 새롬기술로 대변되는 국내 증시 또한 극도의 롤러코스터 장세였다. 당시 지인 A의 얘기다. 1000만원을 몇 달 만에 1억2000만원으로 불린 그는 역시 주식으로 큰 재미를 본 친구와 구두를 닦으러 갔다가 이제 막 투자를 시작했다는 구둣방 아저씨가 주식 얘기만 하는 것을 보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는 곧 주식을 모두 처분했지만, A는 ‘마지막 딱 한 번’이라며 새 종목에 ‘몰빵’했다가 결국 원금으로 돌아왔다.이 상황을 요즘 증시 용어로 요약하면 FOMO(fear of missing out)와 FOPO(fear of peak out)가 교차하는 순간쯤 될 듯하다. FOMO는 상승장에서 배제될까 하는 소외 불안 심리, FOPO는 현재가 고점 아닐까 하는 공포 심리다. 구둣방 아저씨가 FOMO에 사로잡혔다면, A와 친구는 FOPO를 느꼈지만 A는 욕심을 부렸다가 ‘일장춘몽’을 꾼 케이스가 됐다.주가지수가 4000을 넘어서 상승세가 지속되는 지금 역시 FOMO와 FOPO가 뒤엉켜 있는 분위기다. 랠리에 올라타려는 추동 심리만큼 차익 실현에 조급증을 내는 매도 동조 현상 또한 확연히 포착되고 있다. 한국형 공포지수라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가 지난 4월 트럼프의 상호 관세 발표 이후 처음으로 30을 넘어선 것도 FOPO의 한 방증이다.현 장세에서 FOMO가 맞는지, FOPO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주식시장이 합리성보다는 심리와 감정에 더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교수의 표현대로 ‘버블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수학적 추론 이상으로 &l

    2025.11.02 17:29
  • [천자칼럼] 입스(yips)라는 마음의 병

    뾰족한 물건에 공포증이 생겨 이쑤시개만 봐도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 보스, 평범한 공중 그네타기도 걸핏하면 떨어지는 베테랑 곡예사, 악송구가 반복돼 공 던지기를 무서워하는 프로야구 선수. 한국에도 팬이 많은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최고로 인정받다가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강박증으로 무너져 가는 사람들 이야기다.이들에게 나타난 증상이 ‘입스(yips)’다. 영어 yip은 강아지가 안절부절못하면서 ‘낑낑’거리는 것을 뜻하는 의성어다. 입스의 유형은 광범위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반 위를 달리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갑자기 굳어버리는 현상도 입스다. 군대에서 제식훈련 할 때 오른손과 오른발이 같이 올라가는 ‘고문관’은 행진 입스, 분데스리가 98골 중 단 한 골도 페널티골이 없는 차범근은 페널티킥 입스다.입스는 스포츠, 그중에서도 대표적 멘털 경기인 골프에 많다. 가장 일반적인 퍼팅 입스는 물론 드라이버 입스도 자주 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고교 2학년 때 한국오픈을 제패한 천재 골퍼 김대섭은 드라이버가 쇠뭉치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공이 두 개로 보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거리를 늘리려고 스윙을 바꾼 게 독이 됐다는데, 입스를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불안이 증가하는 심리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되면서 평소 잘하던 동작도 제대로 못 하는 일종의 ‘국소성 이(異)긴장증’이다. 오랜 기간 훈련으로 형성된 본능적 동작에 과도한 의식이 개입하면서 엉뚱한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수많은 선수를 은퇴로 내몬 입스를 극복하는 과정은 ‘리셋’이다. 양발 사이에 공을 두고 홀을 정면

    2025.10.28 17:25
  • [천자칼럼] 같은 듯 다른 레이건과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증오하는 정치인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2011년 4월 백악관 기자단 초청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는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공개 망신을 당했다. 오바마는 트럼프가 방송 등에서 자신의 출생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트럼프를 삼류 음모설 유포자로 한껏 조롱하며 앙갚음했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반대로 트럼프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레이건의 두 번째 임기 말 무렵 40대 초반의 촉망받는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레이건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며 정계 진출을 꿈꿨다. 트럼프는 당시 약 10만달러의 돈을 들여 뉴욕타임스 등에 자신의 국가 비전을 피력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그의 지난 대선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는 레이건의 구호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그 레이건이 자신을 공격하는 소재로 쓰이자 트럼프의 ‘뒤끝’이 작렬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관세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한 레이건의 라디오 연설 장면을 활용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TV 광고를 내보내자 캐나다에 대한 관세율을 10%포인트 인상하겠다고 한 것이다. 트럼프는 ‘악의적 가짜 광고’라며 맹비난했지만, 광고 중 레이건의 연설 내용은 부분 편집은 됐어도 원본에 그대로 나오는 대목이다.트럼프는 외모부터 연설 방식, 정책 방향까지 ‘레이건 따라쟁이’라고 할 정도로 레이건의 열혈 팬이지만, 둘 간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레이건은 플라자 합의 등으로 일본을 옥죄었지만, 외교·안보에선 사상 최강의 동맹 관계를 형성했다. 레이건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간 밀월

    2025.10.26 17:33
  • [천자칼럼] 카네기 도서관

    1840년대 스코틀랜드 동부 던필립의 식료품 가게. 엄마를 따라온 한 소년이 체리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리 파는 할아버지가 “한 줌 집어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소년은 그저 할아버지만 쳐다봤다. 엄마도 허락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체리를 한 움큼 집어 건네자 그제야 고맙다며 받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왜 할아버지가 집어주기 전까지 가만있었냐고 묻자 소년의 답은 이랬다. “할아버지 손이 저보다 훨씬 크니까요.”이 영리한 소년이 훗날 ‘철강왕’이 된 앤드루 카네기다. 1919년 세상을 뜬 카네기의 만년 개인 재산은 4억7500만달러를 넘었다. 당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0.6% 수준이다. 현 30조달러대인 미국 GDP와 단순 비교해도 1800억달러 가치의 돈이다. ‘기부왕’으로도 유명한 그는 자선단체, 공익재단, 대학 등에 3억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내놨다. 그는 자서전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부자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카네기의 사회 공헌 활동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무료 공공도서관 건립이다. 미국 1681곳을 비롯해 세계 2811개 공공도서관 건립을 후원했다. 카네기재단이 내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카네기가 설립한 도서관 전체에 1만달러씩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카네기 사후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1280여 곳이 운영 중이라고 한다. 도서관 운영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후원을 의무화한 ‘카네기 공식(Carnegie formula)’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돈을 기부하는 데도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카네기가 도서관에 그렇게 가치를 둔 것은 어린 시절 소중한

    2025.10.24 17:20
  • [윤성민 칼럼] 수만대 1 과거制처럼 기업 관리하는 中공산당

    중국 명조 초기 수도 난징의 과거 시험장인 장난공원(江南貢院)은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의 두 배 넘는 규모에 2만 개의 시험실이 있다. 한 평도 안 되는 크기에 문도 없는 시험실마다 한 명씩 시험을 보는데, 양쪽 벽을 가로지르는 나무판을 책상 삼아 답안지를 쓰고 밤에는 침대 삼아 새우잠을 잔다. 이렇게 아흐레 동안 갇혀 시험을 치르는 말 그대로 ‘지옥 관문’이다.장난공원은 성 단위(명 때는 14개)로 보는 향시 고사장 중 가장 큰 곳이다. 향시는 동생시라는 지방 인재 시험에 합격해야 볼 수 있고, 향시를 통과하면 회시, 이어 황제 앞에서 보는 전시로 이어진다. 전시에 급제하면 고위 관리로 등용되는 진사 학위를 받는다. 수만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엘리트 공무원 교육기관 격인 ‘한림원(翰林院)’을 거쳐 평생의 삶이 보장되는 고관 길에 들어서게 된다.중국 레드테크의 성장 과정도 과거제도의 살인적 경쟁 구조와 닮은 데가 많다. 중국 전기차(하이브리드카 포함) 브랜드는 BYD를 포함해 129개가 있다. 전기차의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보다 40%가량 적다고 해도 한 나라에 이렇게 많은 차 브랜드가 시장에 나와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당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며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한 결과다. 정글 같은 경쟁 환경에서 향후 5년 내 생존할 확률은 10% 정도다. 세계 2위 풍력발전 기업 엔비전은 무한 경쟁 끝에 중국 챔피언에 오른 경우다. 2021년까지만 해도 엔비전과 치킨 게임을 벌이던 300여 개의 경쟁 업체 대부분은 퇴출당했다. 현재 중국에는 제2의 스페이스X를 꿈꾸는 민간 우주업체만도 430곳에 달한다.중국 제조업 굴기의 리더는 중국 공산당이

    2025.10.22 17:21
  • [천자칼럼] "뇌물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

    1995년 8월, 김영삼 정부의 실세 중 한 사람인 서석재 총무처 장관은 기자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김 대통령의 청렴성을 강조하다가 “시중에 4000억원을 가·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실명 전환하려 한다”는 내용을 비보도 조건으로 말했다. 이틀 뒤 유일하게 한 신문에 보도된 이 발언은 그해 10월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문으로 단군 이래 최대 스캔들로 비화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다.당사자 노 전 대통령은 보도 때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잘 참는 나도 못 참겠다”며 펄쩍 뛰었다가, 박 전 의원 폭로 며칠 뒤 ‘못난 노태우’로 시작하는 대국민 사과문에서 재임 중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5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시인했다. 노태우 비자금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표에게도 20억원이 흘러 들어갔다. 박지원 대변인은 곤혹스러운 나머지 “전국적으로 전기가 나가 TV도 꺼지고 신문 윤전기도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회고록에서 “김영삼에게 (1992년 대선 자금으로) 3000억원을 줬다”고 했다.그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30년쯤 지나 다시 회자한 게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을 통해서다. 지난해 5월 2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1999년 쓴 ‘선경 300억원’ 메모지 등을 증거로 채택해 노태우 비자금이 SK 성장에 기여했다며 최 회장의 재산 중 35%를 노 회장 몫으로 인정하는 재산분할 판결을 했다. 그 돈이 1조3808억원이다. 1심(665억원)의 20배가 넘는 액수다.대법원이 어제 이 산정 방식이 잘못됐다며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노태우

    2025.10.16 17:26
  • [천자칼럼] 마쓰시타정경숙

    일본 104대 총리로 예정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는 1984년 고베대를 졸업한 뒤 3년간 더 배움의 길을 걸었다. 정규 학위가 없는 그 코스는 일본의 대표적 정치인사관학교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이다. 사나에 총재가 5기 숙생으로, 이 정경숙은 1기 숙생인 노다 요시히코에 이어 두 명째 일본 총리를 배출하게 된다.‘경영의 신’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가 정경숙을 개숙한 것은 85세 때인 1979년. 사재 70억엔에 기업 헌금 50억엔을 들여 후지산과 태평양이 보이는 도쿄 도심에서 전철로 1시간 거리인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시에 설립했다. 마쓰시타가 모델로 삼은 것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이 1857년 고향 야마구치현에 세운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다. 쇼카는 松下의 일본어 음독, 마쓰시타는 훈독이다.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쇼카손주쿠 출신이다. 요시다의 일본 내 위상은 그가 야스쿠니 신사 1호 봉안 인물이라는 데서 긴 설명이 필요 없다.요시다가 쇼카손주쿠에서 일본 근대화의 선봉장들을 길러냈다면, 마쓰시타의 정경숙 설립 취지는 21세기 일본 리더들을 키우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 후 오사카에서 사환으로 시작해 경영의 신으로 불리게 된 대기업인의 숙원 사업이 국가 지도자 양성에 일조하는 것이었다. 학습 과정은 숙생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하는가를 고민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2~35세의 지원자 중 선발된 숙생들은 오전 6시 기상 후 청소로 일과를 시작하고, 외부 강사 강의 외에 다도, 서예, 검도 등 일본식 전인교육과 24시간 동안 100㎞를

    2025.10.09 17:09
  • [천자칼럼] 日총리 누가 되든 미국通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1871년, 일본에서는 대규모 해외 문물 시찰단인 이와쿠라 사절단이 출국했다. 정치인, 학자, 유학생 등 107명이 2년간 미국과 유럽 12개국을 돌며 선진 문화를 습득해 오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 국가 예산의 1%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부단장 격인 부사 중 한 사람이 후일 일본 초대 총리가 되는 이토 히로부미다. 7세 소녀로 일본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 된 쓰다 우메코는 5000엔권 지폐의 인물이다.서구 문명에 대한 일본의 열망은 에도막부 때부터 싹텄다. 17세기 나가사키에 조성한 인공섬 데지마를 통해 일본과 독점 무역을 허락받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정례적으로 ‘네덜란드 풍설서’로 불리는 해외 정보 보고서를 막부에 제출했다. 데지마의 네덜란드인 무역관장은 매년 에도의 쇼군을 알현하고, 바깥 세상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발전해 간 것이 근대 일본을 이끈 서양 학문, 난학(蘭學·란가쿠)이다.일본의 국제 감각은 104대 총리를 결정할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재입증됐다. 후보 5명 모두 미국 유학파이거나 미국 정계 근무 경험을 갖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유력 후보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은 컬럼비아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내각 2인자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트럼프 1기 때 미국과 무역 협상을 주도한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 주미 일본대사관 근무 이력이 있는 고바야시 다카유키 의원 등 세 명은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선후배 간이다. 후보자 중 유일하게 미국 유학을 가지 않은 ‘여자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

    2025.10.03 16:07
  • [천자칼럼] 타이레놀 논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미국 11개 주의 어린이 자폐증은 36명 중 1명꼴로 2000년의 150명 중 1명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한국도 취학아동 38명 중 1명꼴로 상당한 유병률을 보인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자폐증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도 많다.자폐증 급증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꼽는 이유는 분류 기준이 크게 넓어졌다는 것이다. 진단 기준이 6개에서 16개로 늘었는데, 과거엔 6개를 모두 충족해야 했지만 요즘은 16개 중 절반만 돼도 자폐증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전적 요인에 더불어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이 복잡한 질병마저 정치의 영역에 들어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케네디가의 일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 장본인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케네디가 트럼프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다. 트럼프는 케네디에게 자폐증 등 만성 질환의 해결사 역할을 맡겨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겠다’(MAHA)고 했다.그들이 자폐증의 주범으로 제시한 게 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이다. 트럼프는 임신부가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주성분인 타이레놀은 태아 기형을 야기할수 있는 이부프로펜 계열의 소염·진통제에 비해 가장 안전한 진통제로 알려져 왔는데, 트럼프의 발언으로 전 세계 임신부가 불안에 휩싸이게 됐다.트럼프는 딱히 명확한 의학적 근거를 대지 않았다. 다만 2022년 이후 타이레놀 제

    2025.09.23 17:36
  • [천자칼럼] 미·중 정상회담

    1972년 2월 21일, 역사적인 닉슨-마오쩌둥 회동 때다. 회담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을 출발한 닉슨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마오와 만나 회담했다.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도 둘 간 회담 시간과 장소를 몰랐을 정도로 은밀히 이뤄졌다.중국은 1969년 소련과 극한 국경 분쟁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다. 미국은 소련 일극 체제의 공산권 분열을 노리고 중국을 새 파트너로 삼으려고 했다. 이런 공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지만, 닉슨의 방중은 일찍이 19세기에 나폴레옹이 경고한 대로 ‘잠자는 사자’를 깨워 세상을 흔들 단초를 제공한 격이 됐다. 훗날 닉슨은 자서전에서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적국과 회담해선 안 된다”며 실수를 자인했다.미국 대통령 중 중국과 관계가 가장 돈독했던 사람은 아들 부시 대통령이다. 그는 중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 중 네 번을 찾았다. 아버지 부시가 중국 연락사무소장을 지냈을 때 중국 생활을 한 경험 등이 작용했다. 중국에 가장 껄끄러운 미국 대통령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 1기 때인 2017년 4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만찬 후 디저트를 먹던 중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59발의 미사일을 시리아에 막 발사했다고 알렸다. 시진핑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무언중 압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그해 11월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에게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처음으로 자금성 전체를 대관해 만찬을 베풀어줄 정도로 신경을 썼다.두 사람이 10월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회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이

    2025.09.21 17:33
  • [천자칼럼] 트럼프와 황금마차

    영국 버킹엄 궁전에는 로열 뮤스(Royal Mews)라는 왕실 마구간이 있다. 그곳에는 왕실 권위의 상징물인 황금 마차가 여러 대 보관돼 있다.그중 최첨단은 찰스 3세 국왕이 2023년 대관식 때 탄 ‘다이아몬드 주빌리 스테이트 코치’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호주에서 제작한 것이다. 냉난방장치에 전동 창문, 최신식 서스펜션까지 갖췄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함인 HMS 빅토리호와 16세기 튜더 왕조 때 건조된 메리로즈호, 캔터베리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역사적인 선박과 건축물 등에서 가져온 목재 조각까지 사용됐다.찰스 3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 후 버킹엄궁으로 환궁할 때는 왕실 마차 중 가장 유서 깊은 1762년산 ‘골드 스테이트 코치’를 이용했다. 길이 8.8m, 높이 3.7m에 무게가 4t에 달한다. 워낙 무겁다 보니 8마리 말이 끌어야 한다. “배를 타고 거친 바다에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승차감은 좋지 않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 연방을 상징하는 천사상과 바다의 신 트리톤 조각 등 장인정신이 담겨 ‘바퀴 달린 왕관’으로 평가받는다.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영국을 두 번이나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아일랜드 국가 마차’가 제공됐다. 1851년 더블린에서 만들어져 1853년 더블린 대공업박람회 때 빅토리아 여왕의 눈에 띄어 왕실이 구입한 것이다. 이 마차에도 각별한 스토리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47년 필립 공과의 결혼식 때와 의회 개원식에 ‘킹스 스피치’를 하러 갈 때 탄 마차다.트럼프의 최고 로망 중 하나가 영국 왕실이다. BBC 방송은 트럼프가 영국 왕실로부터 환

    2025.09.18 17:29
  • [윤성민 칼럼] 프랑스병의 주범, 주 35시간제

    도요타가 프랑스 북부 랭스에 공장을 지은 2001년 때다. 조 후지오 당시 도요타 사장과 외빈으로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가 준공식에 참석했다. 프랑스의 한 신문에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소재로 만평이 실렸다. 조스팽이 도요타 사장에게 프랑스가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했다고 자랑삼아 얘기한다. 그러자 도요타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하루가 24시간인데 어떻게 35시간을 일할 수 있는가요?”도요타 사장은 설마 주당 근로 상한이 35시간이겠냐는 생각에서 그리 되물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실한 근로자들로 꼽히는 도요타 임직원들에게는 상상도 못 할 숫자다. 주 35시간제는 프랑스 좌파와 노동계에 상징적인 제도다. 2000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동거 정부 총리인 사회당 출신 조스팽 행정부에서 도입해 지금까지 법정근로시간으로 유지되고 있다.기존에도 충분히 적은 39시간에서 근로시간을 더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근로시간 단축에도 임금 삭감은 없다. 반짝 효과가 있는 듯하더니 일자리 창출에는 별 소용이 없고, 기업 부담만 늘리는 폐해를 낳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노동법규”라고 했다.정권 교체기마다 주 35시간제가 화두가 됐다. 2007년 집권한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제도의 폐지를 내걸고 당선됐으나 노조 반발에 가로막혔다. 2012년 집권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자기 당 정책임에도 실정을 인정하고 폐지를 시도했으나 이 역시 좌절됐다. 이때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맡고 있던 이가 지금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으로, 그가 사회당과 결별한 계기 또한 주 35시

    2025.09.17 17:35
  • [천자칼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는 없다

    히말라야 남쪽 기슭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부탄과 네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두 곳에 대해 가진 인상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다. 부탄은 영국의 한 기관이 실시한 세계 행복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알려지면서 ‘마지막 샹그릴라’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특히나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선호하는 탄소 발자국이 적은 원시성, 경쟁 없는 느린 삶의 표본 같은 나라로 통한다.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세계 최하위권인 남녀평등지수, 한국보다 높은 살인율과 불평등지수, 가정 폭력에 따른 높은 자살률 등. 네팔은 부탄과 맞붙어 있으면서 같은 지리·환경적 요인으로 덩달아 행복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최근 국제 뉴스의 핫토픽이 된 네팔 사태는 이런 환상을 여지없이 깨트린다.이번 사태를 촉발한 건 정부가 SNS 플랫폼을 차단하면서다. 당국이 SNS 봉쇄 이유로 제시한 ‘가짜 정보’라고 하는 것은 네팔 특권층 자녀들의 영상과 사진이다. 루이비통, 까르띠에 등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 상자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 장관 자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뒤 벤츠 승용차 앞에서 폼 잡고 있는 법관 아들 등의 모습과 그들을 비판한 영상이다.네팔을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은 이번 시위를 주도한 계층은 20~30대 젊은 층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상당수가 해외 이주 노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한국의 고용허가제 비자(E-9)로 들어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한국어 인증 시험에 합격해 대기 중이거나, 시험을 재수 중인 사람들도 있다. 해외 취업을 위해 하루 3000명의 네팔인이 고국을 떠난다고 한다.해외에 나간 네팔 근로자 220만 명이

    2025.09.11 17:30
  • [천자칼럼] 성과급 전쟁

    국내 기업에 성과급 문화를 정착시킨 사람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2001년 PS(초과이익 분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다. “이 세상에 공짜도 없고, 거저 되는 것도 없다”고 한 이 회장은 칭찬은 입이 아니라 지갑으로 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 이 회장은 인센티브를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했다.그 위대한 발명품이 요즘 한국 기업 경영진의 최대 고민거리로 변했다. 반대로 조금만 홀대받는다는 생각만 들어도 엉덩이가 들썩이는 MZ세대에게는 직장생활의 최대 쟁취물이 됐다. 최근 성과급 논란은 대학생 취업 선호도 1위 SK하이닉스가 지속해서 주도하고 있다. 2021년 1월 입사 4년 차의 SK하이닉스 한 직원이 당시 이석희 사장과 전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삼성만큼 임금·성과급을 챙겨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십니까”라며 PS 산출 방식 등에 대해 공개 해명을 요구했다. 최태원 회장까지 나서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 30억원을 모두 내놓겠다고 했으나, 결국 성과급 기준을 바꿔야 했다.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회사 측이 기본급 기준 1년 반치인 1700%를 제시했는데도 직원들이 거부하자 최 회장이 “5000%인들 행복하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으나, 결국 직원들의 뜻대로 됐다. 영업이익 10%를 PS 재원으로 모두 활용하기로 해 1인당 평균 1억원의 역대급 성과급을 받게 됐다고 한다.삼성전자 직원 블라인드에는 “SK 이직 알아본다”는 요지의 글이 쏟아지고 있고, 노조는 이재용 회장에게 성과급 제도 개선 요구 공문을 보내며 압박하고 있다. 과거 삼성 반도체 공장 기숙사에서는 PS를 놓고 다른 부서

    2025.09.05 17:41
  • [윤성민 칼럼] '진짜 사장' vs '진짜 노동자'

    1987년 6·29선언 후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 때다. 당시 2700여 개였던 단위 노조는 1989년 7800여 개로 급증했다. 노사분규는 1986년 276건에서 1987년 3749건으로 1년 만에 열 배 이상 폭증했다. 쟁점은 대부분 임금인상이었다. 1986년 29만4000원이던 제조업 월 평균 임금은 1989년 49만2000원으로 3년 새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당시 제조업 실질 임금이 급증한 것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기업엔 전례 없는 압박이었다. 임금이 노동생산성을 그처럼 빠르게 앞지르는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무렵 기업의 대응을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이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발표됐다. 오지윤 명지대 교수와 라이언 마이클스 미국 필라델피아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노동자 대투쟁 전후인 1982~1995년 10인 이상 한국 제조 공장을 보면 임금이 10% 상승할 때 자동화 도입 비율도 최대 2.8% 높아졌다고 한다. 기계 설비에 투자한 공장 중 39%는 동시에 고용도 줄였고, 특히 임금 급상승기인 1987~1992년에는 그 비율이 43.8%나 됐다. 임금 상승이 자동화 도입을 직접적으로 촉발하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노동자 대투쟁에 버금갈 정도로 임금이 급등한 때가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집권 초기 2년간 최저임금이 약 30% 인상됐고, 5년간(2017~2022년) 총 41.5% 올라 시간당 6470원에서 9160원이 됐다. 근로자·서민층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미명 아래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끌어 올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인건비 부담에 자영업자들이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자 대투쟁기에 기업이 공장 자동화에

    2025.09.03 17:47
  • [천자칼럼] 기업 새옹지마(塞翁之馬)

    기본급 기준 1년 반 치나 되는 1700%의 성과급을 놓고도 적다고 아우성이 나오는 SK하이닉스. 시곗바늘을 20여 년 전으로 돌려놓고 보면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로 사명이 바뀐 2001년 매출 5조2887억원에 영업적자가 1조9102억원, 바로 회사 문을 닫아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이천 공장의 전기료 낼 돈이 없어서 한국전력에 통 사정했을 때다. 그런 회사가 지금 어떻게 변했는가. 2003년 3월 26일 125원까지 떨어진 주가는 어제 종가로 26만원이다. 과거 21 대 1 감자를 감안하더라도 100배가량 올랐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대박으로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30조원대다. SK가 인수하기 전 한때 거론되던 것처럼 하이닉스가 중국에 팔렸다면. 제정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 것에 견줄 수 있는 국부 유출이었을 게다.‘뒤웅박 팔자’는 봉건시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기업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한·미 동맹의 린치핀으로 부상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의 주역 한화오션도 그런 사례다. 옛 대우조선이 잘나가던 시절의 거제시 옥포동에는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돈이 흔했다. 하지만 국내 조선 3사 체제에서 가장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은 대우조선은 2010년대 중반 조선업 불황에 따른 대규모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산업은행 관리체제로 들어갔다. 그런 회사가 한화로 넘어온 뒤 미국 조선업 부활의 선봉장 역할을 맡을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한화의 인수 과정 역시 곡절을 거듭했다. 2008년 6조3000억원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

    2025.08.27 17:34
  • [천자칼럼] 사내 교육의 진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3년 경남 마산의 한일합섬 공장을 방문했을 때, 한 여공에게 소원을 묻자 그 답이 “공부하고 싶다”였다. 당장 야간학교가 개설됐고, 행정명령으로 학력 인정까지 받게 했다. 그렇게 태어난 학교가 교정의 ‘팔도 잔디’로 유명한 한일여자실업학교, 지금의 한일여고다. “5남 1녀로 태어나 ‘고교 진학을 포기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어떻게 해서든 학교가 가고 싶어 한일합섬에 들어가 한일여실에 입학했다. 휴가 때 교복을 입고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자 아버지는 엉엉 우시며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매달 용돈을 보내드렸다.”(졸업생 문집 중에서)미국에는 한일여실 같은 산업체 부설 학교와는 성격이 다른 사내 교육 기관이 있다. 원조는 맥도날드가 1961년 설립한 햄버거대학이다. 맥도날드 창립(1955년) 6년 만에 생겼으니, 이 회사가 얼마나 일찌감치 교육에 눈을 떴는지 알 수 있다. 햄버거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교육과정은 훨씬 깊이 있다.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직원 커뮤니케이션 및 코칭 능력 같은 리더십 과정이 핵심이다. 미국 시카고는 물론 세계 8개 지역에 글로벌 캠퍼스를 두고 있다. 디즈니대학, 픽사대학 등도 잘 알려진 사내 대학이며, 국내에는 제너시스 BBQ의 치킨대학 등이 있다.고졸 직원에게 대학 졸업장을 딸 기회를 제공하는 사내 대학도 있다. 삼성전자공과대학이 대표적이다. 1989년 ‘반도체 기술대학’으로 문을 열어 2005년부터 4년제 대학 과정 교육부 인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600명가량의 학사를 배출했다.이제는 사내 교육기관에서 정식 석·박사학위까지 수

    2025.08.25 17:36
  • [천자칼럼] 남미 우파 3인방

    지난 주말 외신에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실렸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밀레이 집무실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다. 밀레이는 그의 아이콘이 된 전기톱을, 노보아는 정글을 헤쳐 나갈 때 쓰는 칼인 마체테를 들고 있다.밀레이와 노보아는 이른바 ‘핑크타이드’로 불리는 온건 좌파가 장악한 남미 권력 지도 속에서 우파 지도자로 집권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전기톱과 마체테는 그들의 과감한 국가 개혁의 상징물이다. 밀레이의 전기톱은 퍼주기 복지와 방만 재정 등 아르헨티나의 망국병 요인들을 모두 잘라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밀레이 집권 18개월 만에 아르헨티나는 기적처럼 변했다. 월평균 13%에 달하던 물가 상승률이 1%대로 잡혔다. 16년 만에 재정 흑자, 경제성장률 플러스 전환, 환율 안정 등이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 부처 절반 폐지, 공무원 4만 명 감원, 재정 지출 30% 삭감 등이 전기톱 개혁의 성과들이다.노보아에게 마체테는 ‘범죄와의 전쟁’을 의미한다. 에콰도르는 과거 미국 중산층에 은퇴 후 최고의 이주 장소 중 하나로 주목받은 곳이다. 그러나 2007~2017년 반미 좌파 성향의 코레아 정권이 미국 마약단속국과의 협력을 거부하면서 마약 소굴로 변했다. 노보아 집권 후 갱단과의 전쟁을 위해 거리에 군인을 배치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마약 업자에게 형량 연장 조치를 하면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다.이들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남미의 또 다른 우파 지도자가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다. 그의 초강력 범죄 소탕 작전 덕에 2015년 인구 10만 명당 106.8건이던 엘살바도르 살인율은 지난해 2.4건으로 떨어졌다. 이

    2025.08.24 17:48
  • [천자칼럼] 맞담배

    일본 영화를 보다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심지어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상하 간 맞담배를 엄격히 금지하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 전후로 알려져 있다. 하멜표류기에 네댓 살짜리 어린애도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는 대목을 보면 처음부터 맞담배를 터부시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맞담배에 대해선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신분에 따라 담뱃대 길이가 비례하게 됐는데, 장죽을 쓰는 양반은 혼자서 불을 붙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불을 붙여 줘야 했다. 따라서 부자간에 같이 피우면 아버지가 아들 담뱃대 붙을 붙여주는 꼴사나운 광경이 연출돼 맞담배 금지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맞담배 금지가 위계와 상관된 것이니, 반대로 자유로운 흡연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과거 한 재벌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유학 중인 20대 후반의 장남이 급거 귀국해 자리를 잇게 됐다. 그 후계자는 첫 사장단 회의에서 아버지뻘인 사장들 앞에서 혼자서 재떨이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보고받고는, 사장들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도록 했다고 한다. 그 나름대로 조직을 장악하는 방법이었던 셈이다.담배를 절대 권력의 과시용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북한 김정은이다. 그가 군부대 등을 시찰할 때 담배를 피우면서 일장 훈시하고 옆에선 나이 많은 장성들이 연방 메모하고, 한쪽에선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얼마 전 김정은이 러시아 파병 지휘관들을 집무실에서 격려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지휘관들 앞에 담배, 재떨이,

    2025.08.22 17:33
  • [윤성민 칼럼] 李 대통령, '바보 노무현' 정신으로 트럼프 만나길

    “잠들어 있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사자가 깨어나는 순간 온 세상이 흔들릴 테니.”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사자는 중국이다. 이미 200년 전 얘기이니, 대단한 촉의 소유자다.근래 서구 지도자 중 나폴레옹에 필적할 선견지명을 지닌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카터 행정부 때인 1979년 1월 미·중수교로 대만과 단교한 이후, 안보 불안에 떠는 대만에 1982년 여섯 가지 사항을 보장해 준다. 구체적으로 ①대만 무기 수출에 관해 기한을 정하지 않고 ②대만 무기 수출에서 중국과 사전 협상을 진행하지 않으며 ③중국과 대만 간에 중재 역할을 하지 않고 ④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⑤대만의 주권에 대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⑥대만으로 하여금 중국과 협상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6항 보증(六項保證, Six Assurance)’으로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 총통의 끈질긴 요구에 구두로 약속한 것이나, 지금까지 미국이 대만 문제에서 견지해 오고 있는 철칙이다. 미국 의회는 얼마 전 6항 보증을 명문화하자는 법안을 공화·민주 초당적으로 발의해 놓고 있다.대만은 6·25전쟁처럼 전면전은 아니었더라도 이에 버금가는 대형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다. 1954년 1차 대만해협 위기 때는 미국이 중국에 핵 위협까지 했다. 1958년 2차 위기 때는 중국 푸젠성 샤먼과 불과 1.8㎞ 떨어진 진먼(金門)섬에 44일 동안 48만 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이때 군인들의 공포를 달래주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여 보급한 술이 ‘금문 고량주’다. 3차 위기는 대만 첫 직선 총통 리덩후이의 당선을 막기 위해 1995년 중국이 해협을 봉쇄한 일이다. 결국 미 해군이

    2025.08.20 16:58
  • [천자칼럼] 진중문고 논란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속에는 군인들이 휴식 시간에 야전 상의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는 장면이 종종 있다. 독서는 전쟁의 공포를 잊게 해주는 좋은 심리 치료제였다. 당시 군대에서 가장 훌륭한 물자가 페니실린이고, 그다음이 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미군이 병영 도서를 체계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1943년부터다. 도서 리스트를 선별하고 미군의 표준 군복 주머니 크기에 맞춘 페이퍼백을 4년간 1억2000만 부를 찍어 보냈다. ‘Armed Services Edition, 진중문고’다.한국에서는 1978년부터 진중문고 사업이 시작됐다. 국방부에서 서점가 베스트셀러와 군 관련 기관의 추천을 바탕으로 연간 2~4회, 회당 20권 안팎을 선정한다. 책을 비치할 생활관(내무반)이 줄다 보니 지금은 권당 배포 부수가 9685부로, 1만 부가 채 못 된다. 출판사의 군 납품 가격도 시판 정가의 50%다. 그렇다 해도 진중문고 선정은 출판사에는 가뭄에 단비다. 진중문고 물량은 요즘 출판사 초판 1쇄분 1000부의 열 배다. 책값이 2만원을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1억원대 매출을 단번에 올릴 기회이기도 하다.진중문고 책들이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올초에는 6·25 참전 언론인들의 증언록 가운데 “민주주의, 진보, 사람 사는 세상은 모두 주체사상을 아름답게 포장한 말” 등의 표현이 문제가 돼 전량 폐기된 적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이 세 번이나 진중문고 최종 선발에서 탈락한 것을 놓고 진보 문화계에서는 “진중문고가 노벨상보다 더 어렵다”는 비아냥도 나왔다.이른바 극우 교육단체의 추천 도서라는 낙인이 찍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가 전량 폐기

    2025.08.18 17:13
  • [천자칼럼] 공산권에도 수출되는 K-9 자주포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북한 군인과 주민들에게 ‘악명’이 자자해진 한국 무기가 있다. 우리 군 보복 사격의 주역인 K-9 자주(自走)곡사포다. 북한 포가 1분에 한 발 발사됐는데, K-9 자주포는 1분에 여섯 발 이상 발사됐다. 북한 포는 불발탄율이 60%나 됐지만, K-9 자주포의 포격을 받은 북한군 포진지는 벌집이 됐다고 한다. 우리 군과 민간인을 합해 4명이 사망한 데 비해 한 달 이상 포격 준비를 한 북한군은 30명 이상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발을 주도한 북 지휘관은 강등됐다.2019년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전쟁 때다. 파키스탄은 중국산 SH-1 자주포 36문으로 공격했다. 인도군은 그해 실전 배치한 K-9 10문으로 맞섰다. 3 대 1 이상의 수적 차이에서 이뤄진 싸움이었다. 정확한 전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 인도군은 전쟁 이후 K-9 90문을 추가 도입했다. 파키스탄은 SH-1 성능에 대해 중국 측에 항의했고, 중국은 파키스탄군이 운용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인도는 현재 K-9 100문을 중국 국경 지역에 배치했다.K방산의 가장 상징적인 무기가 K-9 자주포다. 2010년 이후 전 세계에 판매된 자주포 중 50% 이상이 K-9이다. 경쟁 무기인 독일 PzH 2000에 비해 극강의 가성비와 적기 납품으로 시장에서 압도적 반응을 얻고 있다. 1999년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 공동 개발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엔진 국산화에 성공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카르텔의 일원인 노르웨이가 독일산 대신 K-9을 선택할 정도로 품질력을 인정받고 있다.K-9 자주포가 또 하나의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 무기 판매 사상 처

    2025.08.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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