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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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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자칼럼] 노담 사피엔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부탄이다. 2004년부터 자국 내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정히 피우고 싶으면 비싼 관세를 물고 수입해야 한다. 경찰에 불법 담배를 적발하기 위한 가택 수색 권한도 있다. 접경 인도에서 3000원 정도의 씹는담배를 갖고 들어오다 적발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부탄은 인구 78만 명으로 통제가 쉬운 나라다. 일반적인 국가의 골격을 갖춘 나라 중 끽연가에게 가장 피곤한 곳은 멕시코다. 지난해부터 공원, 해변을 포함한 모든 공공장소에서 금연에 들어갔다. 위반 시 월 최저임금 절반 수준의 벌금이나 최대 36시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담배 광고는 물론 상점 내 담배 진열도 못 하게 했더니, 월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소비자 권익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세계 각국의 담배와의 전쟁은 이제 담배 없는 세대, ‘노담 사피엔스’를 지향하고 있다. 영국이 2009년 이후 출생자부터 담배 판매를 영구 금지하는 법안을 1차 통과시켰다. 이들은 성인이 되는 2027년 이후에도 평생 담배를 살 수 없다.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영국은 2070년쯤에는 60세 이상 노인층만 담배 구입이 가능한 ‘담배 청정국’이 된다. 리시 수낵 총리는 “흡연자 5명 중 4명이 20세 이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며 “애초에 습관을 들이지 말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담배 없는 세상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영국 법안의 벤치마킹 모델인 뉴질랜드는 2022년 영구 금연법을 통과시켰다가 시행도 못 하고 1년 만인 지난해 폐기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세수 부족을 이유로 후퇴한 것이다. 두 나라 법안 모두 궐련에만 적용될 뿐 전자담배는

    2024.04.18 17:45
  • [윤성민 칼럼] 韓 대파로 싸운 날, 美·日은 의형제 맺었다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국제 정세 메시지 중 하나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의 필요성과 중국발(發) 동아시아 위기에 대한 경고를 모두 담고 있는, 그의 외교 철학과 딱 맞는 표현이다. 누구 얘기인가. 저작권자는 잘 아는 대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개월 뒤인 2022년 5월 영국 방문 당시 발언한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말이다.기시다 총리는 지난주 미국 방문 때도 이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백악관 회담 때도, 미 의회 연설 때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 정치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꼭 집어 했다. “국제 질서를 혼자서 지탱해 온 미국의 외로움과 피로, 무거운 부담이 있다.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기시다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미·일 동맹의 역사적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의 ‘동맹 보호(protection)’를 넘어 ‘동맹 투영(projection)’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표현 방식은 영어 알파벳 ‘t’ 하나를 ‘j’로 바꾸는 언어유희이지만, 두 단어 사이의 의미 차이는 심대하다. 동맹 보호가 미국이 일본을 지켜주는 상하 개념이었다면, 동맹 투영은 대등한 입장에서 같은 전략적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다. 프로젝션(projection)은 수학적 의미로 그림자를 뜻한다. 빛이라는 외부 자극에 피사체와 그림자는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같은 폭으로 움직인다.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일 중심의 ‘소(小)다자(多者)’형 군사 기구를 중심으로 지역 안보 협력 구조가 형성될 전망이다. 미·일·호주 3국

    2024.04.17 17:59
  • [천자칼럼] 김재섭 신드롬

    만화 ‘아기공룡 둘리’,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오징어 게임’에는 지역적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울 도봉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 속 고길동 집 대문 앞 풍경이나 ‘응팔’, ‘오겜’의 쌍문동 골목길에서 느껴지듯 도봉구 하면 변두리 이미지부터 연상하는 사람이 적잖다. 실제 도봉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2022년)이 가장 낮다.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대대로 민주당 계열의 텃밭이었다. 도봉구 선거구는 1988년 13대 총선 때 도봉갑과 도봉을로 나뉘었는데, 그중에서도 도봉갑은 1992년 14대(유인태 전 의원)부터 2020년 21대까지 총 8번 중 7번을 민주당 계열이 승리했다. 2008년 18대 때 신지호 한나라당 전 의원이 뉴타운 바람을 업고 당선된 것을 빼곤 김근태 전 의원(15~17대)과 부인 인재근 의원(19~21대)이 내리 3선씩 했다.보수당의 험지 중 험지인 이곳에서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김재섭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동북권에서 여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당선됐다. 김 후보의 당선은 단순히 ‘깜짝 승리’를 넘어 앞으로 정당의 선거 전략에서 교과서적 사례로 삼을 만한 메시지들이 있다.그는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고령층은 물론 20~30대와 10대 학생층까지 섭렵하는 세대별 타깃 선거운동을 했다. 올해 37세로 스스로 MZ세대인 그의 인스타 팔로어에는 초·중·고교생이 3000명이나 된다. 지역구 내 대부분 일선 학교에 인조 잔디 구장이 없는 것에 착안해 잔디 구장 설치 공약을 했더니 학생들이 인스타 쇼츠 등으로 김 후보 지원에 나섰고, 부모 표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그는 세대별뿐만 아니

    2024.04.11 17:44
  • [천자칼럼] 남중국해의 난파선 해상기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영토분쟁 지역 중 하나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일대다. 18세기 말 이곳을 처음 발견한 선장의 이름을 딴 군도로 암초와 산호초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섬인 서울 명동 절반 크기의 타이핑다오는 대만이, 두 번째로 큰 파가사섬은 필리핀이, 일대 산호섬 몇 곳은 베트남이 각각 실효 지배 중이다.중국은 1960~1970년대 문화혁명과 마오쩌둥 사망 등 내부 혼란을 겪느라 영토 분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1994년 필리핀 경비정이 우기인 몬순 시기에 근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틈을 타 암초인 미스치프 리프를 무력 점거했다. 중국은 이후 2015년 대규모 준설·매립 공사를 통해 이곳을 활주로 등을 갖춘 불침항모 인공섬으로 조성했다.미스치프 리프는 필리핀에서 250㎞ 떨어진 곳으로, 필리핀의 200해리(370.4㎞)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있다. 중국의 무력 도발에 발끈한 필리핀은 1997년 기발한 방법으로 맞섰다. 미스치프 리프에서 불과 37㎞ 떨어진 모래톱 세컨드 토머스 숄에 과거 미국에서 이양받은 전차상륙함 시에라 마드레함을 고의로 좌초시킨 뒤 시멘트와 철강, 케이블 등을 이용해 모래톱에 고착했다. 그러곤 해병대원 10여 명을 상주시켰다. 폐군함으로 대중국 해상 전진기지를 구축한 것이다.시에라 마드레함 인근에선 한 달에 한 번꼴로 필리핀과 중국 간 분쟁이 발생한다. 필리핀 보급선이 접근할 때마다 중국 측이 레이저로 방해하거나, 경로를 막아서는 바람에 선박 간 충돌 사태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중국의 물대포 공격으로 필리핀 선원 4명이 부상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기간 중인 오는 11일 미국·일본·필리핀 정상이 남중국해의 대중 공

    2024.04.09 17:34
  • [윤성민 칼럼] 네덜란드 ASML의 '발 투표'

    기업의 국경 탈출, ‘기업 엑소더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1980년대 스웨덴이다. 사회민주노동당 정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를 기치로 법인세 최고 60%, 상속세 70%의 폭압적 세금을 때리던 때다. 잘 아는 대로 제약회사 아스트라의 창업자 후손들은 상속세에 두 손을 든 채 규모가 더 작은 영국 제네카에 매각해 버렸고,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코로나19 백신을 처음 상용화한 아스트라제네카다. 우유팩의 원조 테트라팩은 스위스로 ‘세금 망명’했다. 응당 스웨덴에 본사가 있을 것 같은 가구 회사 이케아도 이때 해외로 ‘본적지’를 옮겼다. 네덜란드다.당시 네덜란드는 법인세가 스웨덴의 절반 수준이었고, 로열티 수입 등에 큰 폭의 감면 혜택까지 있는 나라다. 상속세는 20% 표면 세율에 각종 공제를 반영하면 실효 세율이 3%대에 불과하다. 세제 혜택에 더해 막강한 경영권 보호장치도 매력이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태동한 나라답게 ‘스티흐팅’이라는 재단법인을 통한 경영권 방어 제도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와 페라리, 축구단 유벤투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을 거느리고 있는 이탈리아 엑소르그룹은 경영권 보호차원에서 2016년 고국을 등지고 네덜란드로 본사를 이전했다.그런 네덜란드가 요즘 기업 엑소더스 조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회사 ASML처럼 본사 해외 이전을 검토하는 대기업이 10곳을 넘는다고 한다. 이들 기업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 것은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는 인종주의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 주도의 이민 제한 법안이다. 지난해 말 의회를 통과한 이

    2024.04.03 18:14
  • [천자칼럼] 中서 319일 만에 풀려난 축구선수

    중국이 지난해 7월부터 간첩 행위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신 반(反)간첩법(방첩법)을 시행한 뒤 중국 비즈니스를 하던 한국 기업인들이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20년 이상 사업하며 두터운 관시(관료 인맥)를 쌓은 한 한국 기업인은 작년 하반기 사업을 접고 영구 귀국했다. ‘이현령비현령’ 식의 반간첩법에 따라 언제 어떻게 간첩죄로 엮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또 다른 한국 기업인은 중국 출장을 자제하기로 했다. 베이징에서 10년 이상 생활한 그는 올초 상하이로 출장 갔다가 공항에서 정체 모를 사람이 다가와 “베이징에 살던 사람이 상하이에 왜 왔느냐. 예전 (관리) 친구들도 다 물러났는데…”라는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고 한다.이들 같은 한국 기업인이 가장 눈여겨보던 사건이 축구선수 손준호 억류 건이다. 손준호 케이스는 중국 사법체계의 반인권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승부 조작 사건에 단순 참고인이었던 그는 조사 당일 구단에 없었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에 37일간 구금됐다. 형사 구류 이후 정식 구속된 뒤에는 영사 접견은 허용됐으나, 중국 공안이 국내법을 들어 구체적 혐의에 대해 일절 알려주지 않아 실질적인 영사 조력을 받지 못했다. ‘비엔나협약’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손준호는 다행히 319일 만에 석방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죄 선고 시 5년 이상 징역형이 예상됐던 점을 감안하면 무죄가 충분히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지난주에 석방됐으나 또 잡혀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귀국하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음은 물론

    2024.03.27 17:52
  • [천자칼럼] 천안함 막말 후보들

    “나라가 미쳤다. 46명 사망 원인을 다시 밝힌단다. 유공자증 반납하고 패잔병으로 조용히 살아야겠다.” 2021년 3월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결정하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규명위는 3일 만에 재조사 결정을 취하했다.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은 국내외 73명의 민·군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에 의해 북한 어뢰의 수중 폭발로 인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로 선체가 반파·침몰한 것으로 결론났다. 북한의 고성능 폭탄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고, 사건 현장에서 북한 어뢰 추진체도 인양했다.북한은 그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진상>이란 선전 책자를 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천안함 사건을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 북한 소행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장의 신빙성을 부각하기 위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도 끌어들였다. 그가 배에서 파공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어뢰에 의한 공격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연구원은 586 운동권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실무를 맡은 뒤 브루킹스 초빙 연구원으로 있던 박선원 씨라고 한다. 문 정부에선 국정원 1차장 등을 지냈으며, 이번 총선에 민주당 인천 부평을 후보로 출마했다.민주당 후보 중에는 박 후보처럼 천안함 음모론이나 생존 장병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사람이 적잖다. 노종면 후보(인천 부평갑)는 “천안함이 폭침이라고 쓰는 언론은 다 가짜”라고 했고, 권칠승 후보(경기 화성병)는 최원일 전 함장을 향해 “부하를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고 막말했다. 조

    2024.03.22 17:50
  • [윤성민 칼럼] 민주당은 강령에서 '굳건한 한미동맹' 빼라

    국가에 헌법이 있듯 정당에는 강령이 있다. 헌법이 국가 최고 규범이듯, 정당 강령도 당의 정체성과 세계관, 지향점의 정수를 담고 있다.동맹은 헌법적 가치관의 공감대가 형성된 국가 간에 가능하다. 정당 간 연대도 강령상 현실 인식과 목표가 상호 수용 가능할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할당과 지역구 단일화로 ‘선거 동맹’을 맺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의 강령을 보면 가치 체계상 연대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정치세력의 정체성은 우군보다 주적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진보당 강령의 ‘해체’ 대상들을 보자. 강령4에 “대외의존 경제체제와 초국적 자본 및 재벌의 독점경제를 해체하고 민중이 경제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강화하여 경제주권이 실현된 민생 중심의 자주자립 경제체제를 확립한다”고 했다. 대외의존 경제체제의 해체는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의 거부로 풀이된다. 초국적 자본은 외세 자본, 재벌은 여전히 매판 자본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자주자립 경제’라는 용어적 혼란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반면 민주당 강령에선 “전략적 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수입과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추구하자”며 국제 경제질서 속에서 활로를 모색한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재벌개혁을 강조하지만, 이는 시장 질서의 공정성 보완이지 진보당식 시장해체론과는 결이 다른 얘기다.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곳을 보는 두 정치 집단이 손잡고 있는 것이다.두 정당 간 안보관의 차이 역시 영혼을 팔지 않고서야 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진보당은 강령2에 “일제 식민 지배

    2024.03.20 17:57
  • [천자칼럼] 오타니 신드롬

    한국인의 일본 과소평가에는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평발에도 불구하고 현역 시절 아시아의 최고 왼발로 꼽힌 축구 선수 혼다 게이스케는 한국 네티즌 사이에선 ‘혼다의 세계일주’로 통했다. 그가 유럽의 빅클럽을 자주 옮겨 다닌 것을 두고 놀린 말이다. 혼다가 가장 존경한 선수가 박지성이고, 런던올림픽 한·일 간 3~4위전 승리 후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를 펼친 것에 대해서도 “애국심으로 이해한다”고 한 선수인데도 말이다.세계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친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입치료’로 조롱했다. 그의 ‘30년 망언’을 저격한 것인데, 인터뷰 원문을 보면 이치로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야구의 맏형 격으로 일본의 자신감을 강조한 뉘앙스가 더 강하다. 한국 언론이 혐한으로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스포츠에도 만연한 한·일 간 적대감을 허물고 있는 역대급 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화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서울시리즈를 앞두고 LA다저스와 국내 팀들 간 평가전에는 그의 등번호인 17번이 적힌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1인당 2장씩으로 한정했는데도 장당 23만원짜리 유니폼은 판매 두 시간 만에 전 사이즈가 동났다.오타니 신드롬을 불러온 것은 무엇보다 그의 인성이다. 방한 전후로 그는 SNS에 태극기 기호를 네 번이나 게시했다. 세계인의 관심거리였던 아내를 처음 공개한 사진에서는 ‘(한국 방문이) 기다려지다’란 한글 소감까지 달았다. 오타니의 한국 사랑에는 고교 시절 첫 방문 때부터 호감과 함께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면 운도 따라온다는 그의 ‘만다라트’

    2024.03.18 18:06
  • [천자칼럼] 러시아의 민주주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 통치와 옛 소련에 대한 잔상이 겹쳐 러시아를 공산주의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는 헌법상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한다. 선거로 대통령·의원을 뽑고, 다당제를 갖추고 있다. 공산당은 집권 통합러시아당에 이은 제2당이다.그렇다고 서구식 투명한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을 보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형적이다. 푸틴은 2000~2008년까지 임기 4년의 대통령을 연임한 뒤 3연임 제한에 걸리자 심복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얼굴마담 대통령에 세우고 자신은 총리 타이틀로 실권을 이어갔다.2012년 대통령에 다시 뽑히기 전 임기를 6년으로 늘렸고, 2018년 재선된 뒤에는 대통령 선출과 관련해 또 한 번의 기상천외한 개헌을 단행한다. 2024년 선출하는 대통령부터는 연임 여부와 상관없이 총 두 차례만 맡을 수 있되 ‘개헌 이전의 대통령직 수행 횟수는 산정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으로 집권 연장의 길을 터놨다. 푸틴이 83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는 이에 근거한 것이다.외형상 민주주의일 뿐 실질은 권위주의적 독재인 푸틴 체제가 가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무자비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그의 독재 스타일이고, 또 하나는 러시아 국민들의 혼란에 대한 공포와 옛 소련이 누린 영화에 대한 갈망이다. 푸틴은 장기 집권 개헌안이 헌법재판소까지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파트, 자동차 등을 경품으로 내걸고 국민투표를 실시할 정도로 치밀하다. 정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 얼마 전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를 끝으로

    2024.03.15 18:08
  • [천자칼럼] 우주항공청 본부장에 대한 대우

    미국,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 3대 우주 강국인 중국의 우주개발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첸쉐썬이다. 중국의 핵 개발, 둥펑·실크웜 등 미사일 개발, 창정 1호 등 인공위성 개발을 주도한 중국 우주개발의 대부다.미국 MIT·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에 이어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1950년대 매카시 광풍 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수감됐다가 중국이 6·25전쟁 미군 포로 조종사 11명과 맞바꿔 본국으로 송환했다. 귀국 직후 그를 처음 접견한 공산당 간부는 천이 부총리였으며, 이듬해 마오쩌둥이 주관한 한 행사에 초청받았을 때 당초 37번 테이블이었으나 마오가 참석자 명단을 보고는 자신의 오른쪽 옆자리로 옮겨 앉게 할 정도로 대우받았다.중국에 첸쉐썬이 있다면 인류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한 인도에는 압둘 칼람이 있다. 인도의 위성과 통합 미사일, 핵 개발을 이끈 그는 비주류인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90% 이상의 지지로 상징적 국가수반인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로 국민적 존경을 받았다. 인도는 화폐 도안에까지 우주선을 새겨 넣을 정도로 우주개발에 열정이 있는 나라다. 인도우주연구기구(IRSO) 연구직원의 연봉은 의사 평균보다 1.5배가량 많다.오는 5월 개청을 앞둔 우주항공청의 연구개발을 총괄할 1급 직책인 우주항공임무본부장에게 2억50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직속상관인 차관급 우주항공청장보다 1억원 정도 많은 것은 물론 한덕수 국무총리(1억9764만원)보다도 높고, 윤석열 대통령(2억5493만원)에 맞먹는 파격적 액수다. 미국 NASA의 최고위 연구직(18만7300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

    2024.03.10 17:51
  • [윤성민 칼럼] AI와 가내수공업의 중국식 결합 '알·테·쉬'

    요즘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되는 모바일 쇼핑 앱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이다. 저가를 넘어 ‘초저가·초초저가’란 수식어가 달린 중국의 크로스보더(CBT) 온라인 쇼핑몰, 곧 해외직구 몰이다.유리창 청소기 스퀴지는 700원대부터 시작하고, 1000원대 휴대폰 거치기와 8000원대 운동화가 즐비하다. 배송비도 안 나올 것 같은 가격에 무료배송, 90일 무료 반품까지 내세우고 있다. 개중에는 ‘쓰레기’ 같은 제품들이나 깨진 상태로 배송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국내 온라인몰의 몇 분의 1 가격에 쓸 만한 상품을 ‘득템’했다는 반응도 많다.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가능할까. H&M을 제치고 미국 10대들의 옷장을 채워주고 있다는 패션 브랜드·쇼핑몰 쉬인을 보자. 쉬인은 중간 유통단계를 완전히 없애고 공장과 소비자를 직배송으로 연결해주는 M2C(manufacturer to customer)의 선구자 격이다. 초저가가 가능한 첫 번째 구조는 세계의 의류공장이라는 중국 광저우시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쉬인의 6000여 개 협력 공장 중 3000개 정도가 광저우시 일대 직원 10~20명의 가내수공업형 의류공장들이다. 원단·원부자재 공장들까지 한데 붙어 24시간 돌아가는 생태계다. 직물 공장들을 끼고 있다는 것은 원가 절감에 엄청난 보탬이 된다. 중국 의류공장은 전 세계 의류업체들의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생산하고 남은 옷감 등 재료가 엄청나게 쌓여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으니 ‘전 세계 의류업체들이 쉬인의 재료비를 대신 내주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원료의 산지를 보면 중국형 원가 구조에 더 기가 막히게 된다. 중국 최대의 면화 산지가

    2024.03.06 17:52
  • [천자칼럼] TSMC 새 회장의 첫 업무

    앨런 조지 래플리 전 P&G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2000~2009년 CEO를 맡아 P&G를 경영 위기에서 구한 것은 물론 세계 최대 생활용품 기업으로 키워냈다. CEO 첫날 그의 모습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다. 주요 임원 6명의 실적을 보고받으면서 후계자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래플리는 업무 시간의 절반 정도를 미래 리더를 발굴하는 데 썼다고 하는데, 그만큼 후계자 육성을 중시한 사람이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다. 잭 웰치의 후계자 발굴 과정은 7년 정도가 걸렸다. 최초 22명을 선정해 그중 6명을 ‘가능성이 가장 큰 팀’, 4명은 ‘뚜렷한 가능성을 보이는 팀’, 나머지 12명은 ‘관망팀’으로 분류했다. 6년 이상 관찰한 뒤 최종 후보 3명을 추렸는데, 의외로 전원 관망팀에서 나왔다.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의 경영 승계 과정도 긴 안목을 갖고 진행된다. TSMC는 류더인 회장 겸 CEO, 웨이저자 CEO 등이 공동 경영 체제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류 회장이 물러나고 웨이 CEO가 회장을 겸직하기로 했다. 오는 6월 회장에 취임하는 웨이는 얼마 전 내정되자마자 후계자를 지명하는 일부터 했다. 두 사람의 수석부사장을 미래 지도자로 낙점하고, 그들의 경영 수업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 향후 10년간 반도체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진 개편이라는 것이다.TSMC 창업자 모리스 창(장중머우)은 첫 번째 후계자를 경질하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 류더인과 웨이저자 두 엔지니어로 집단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모리스 창이 이들에게 제시한 리더십 요체가 ‘기식(器識)’이다.

    2024.03.01 18:12
  • [천자칼럼] 발트해의 '불침항모' 고틀란드섬

    제주도 1.7배 크기의 스웨덴 최대 섬 고틀란드섬은 ‘발트해의 진주’로 불리는 유럽의 휴양 명소다. 석회암 기둥과 깎아지른 절벽, 야생화 초원, 길게 뻗은 백사장 등으로 관광 가이드북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바이킹족의 무역 거점으로 섬 곳곳이 ‘바이킹 박물관’이기도 하다. 12~13세기에는 노르웨이 베르겐, 에스토니아 탈린 등과 함께 한자동맹의 핵심 중계항 중 하나였다. 북쪽 부속 섬 포뢰섬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 말년을 보내며 5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를 숭배하는 김태용 감독이 이 섬에서 탕웨이에게 프러포즈하고, 베리만센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틀란드섬은 이제 가장 주목받는 글로벌 지정학 요충지가 됐다.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으로 발트해가 ‘서방의 연못’이 됐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고틀란드섬을 중심으로 대러시아 방어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리적으로 발트해의 정중앙에 위치한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의 보트니아만,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핀란드만에서 나오는 선박이 북독일로 빠져나가기 위해선 고틀란드 해역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곳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은 하루 1500척에 이른다.러시아 발트해 사령부가 있는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와의 직선거리는 250㎞에 불과하다. 러시아 와 영토를 맞대고 있는 발트 3국(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이 스웨덴의 NATO 가입을 가장 반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른바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고틀란드에 NATO군이 주둔하면 강력한 제공, 제해력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스웨덴은 소련 붕괴

    2024.02.27 18:01
  • [천자칼럼] M7 vs 사무라이7 vs 그래놀라즈

    골드만삭스는 유럽 증시를 선도하는 11개 우량주를 묶어 ‘그래놀라즈(GRANOLAS)’라고 이름 붙였다. 해당 주식 종목의 알파벳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인데, 여러 종류의 곡물과 견과류 등을 섞은 건강식 그래놀라처럼 다양한 업종의 우량 주식을 그룹화했음을 연상시킨다.영국 제약사 GSK(G), 스위스 제약사 로슈(R),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A), 스위스 식품기업 네슬레(N),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NO),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과 명품업체 LVMH(L),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와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S) 등이 해당 종목이다. 600개 상장 주식으로 구성된 범유럽 대표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지수에서 그래놀라즈 11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다. 스톡스유럽600지수의 최근 1년간 상승분의 50%를 그래놀라즈 주식이 담당할 정도다.그래놀라즈는 미국 대장주 그룹의 상대적 개념으로 등장한 용어다. 뉴욕증시의 주도주는 잘 아는 대로 ‘매그니피센트7(M7)’이다. 애플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테슬라 등 7개 빅테크 기업을 가리킨다. 매그니피센트7은 한국에서는 ‘황야의 7인’으로 소개된 1960년대 미국 서부영화 제목으로, 2016년 덴젤 워싱턴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다.일본 도쿄증시의 주도주는 ‘사무라이7(S7)’이다. 도요타 스바루 등 자동차 업체와 미쓰비시상사, 도쿄일렉트론·디스코·스크린홀딩스·어드반테스 등 반도체 장비 기업들로 이뤄져 있다. 사무라이7은 매그니피센트7에서 파생한 용어지만, 어원으로는 일본이 먼저다. 매그니피센트7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대 영화 &l

    2024.02.25 18:50
  • [윤성민 칼럼] 샘 올트먼이 한국 의료대란을 본다면

    역사상 가장 야심 찬 기업인 중 한 사람은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이다. 그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제조와 관련해 투자 유치 목표로 제시한 금액은 7조달러, 1경(京)원에 육박한다. 삼성이 2042년까지 경기 용인에 조성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의 투자금액이 300조원. 이런 걸 30개 이상 지을 수 있는 돈인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추론컨대 올트먼의 구상은 단순히 AI 칩 제조만이 아니라 AI 시대 전반의 생태계를 고려한 게 아닐까 싶다.여기에는 올트먼이 AI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핵융합 발전이 포함된다. 원자력발전이 핵분열 반응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핵융합은 원자 간 충돌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에 주목한다. 태양 에너지의 원리가 그러하니, 인공태양을 만드는 원대한 작업이다. 원전보다 발전 효율이 40배나 높으면서 핵폐기물에서도 자유로운 궁극의 에너지다.올트먼은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에 3억7500만달러(약 5000억원)의 막대한 개인 투자와 함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헬리온은 2028년부터 MS에 핵융합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맺으며 위약금 조항까지 걸었다. 꿈의 에너지가 현실화하고 있는 단계다. 올트먼이 꿈꾸는 세상은 인간의 수고를 최대한 덜어주는 세상이다. 한 축은 AI, 또 한 축은 AI 세계의 절대적 인프라인 전력이다.올트먼과 주변 인물들은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스펙의 소유자다. 지난해 오픈AI 사태의 공동 주역인 그레그 브록먼은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로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다녔다. 올트먼이 벤처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면서 키운 기업가치 100조원짜리 핀테크 스트라이프의 공동 창업자 패트릭·존 콜

    2024.02.21 17:27
  • [천자칼럼] 우주 핵 EMP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테란 종족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공격당한 상대 종족의 군사 체계는 일시에 먹통 상태에 빠진다. 영화 ‘매트릭스-에볼루션’에서는 기계 군단 ‘센티넬’을 한순간에 무력화하는 막강한 공격수단으로 등장했다. 핵보다도 무섭다는 EMP(Electromagnetic Pulse) 얘기다.초강력 폭발로 발생하는 전자기 펄스를 의미하는데, 통신 장비와 전산망, 교통수단의 전면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EMP의 위력은 핵실험의 파급 효과로 밝혀졌다. 미국이 1962년 7월 태평양 존스턴섬 상공 400㎞에서 핵실험을 했을 때 1400㎞ 떨어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신호등 오작동, 통신망 두절, 전력망 차단 등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과학자들은 3년이 지나고서야 원인을 파악했다. 핵실험 때 나온 전자기파가 하와이에까지 영향을 미쳐 전기·전자 장비를 무력화한 것이다.북한은 2017년 남한 상공에서 핵 EMP탄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핵실험 규모와 비슷한 100킬로톤 한 방이면 한국의 모든 전자통신망이 무용지물로 변한다. 150㎞ 이상 상공에서 터지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로도 막을 수 없다. 국내에서 EMP 안전지대는 합동참모본부와 전시 지휘본부가 될 ‘B-1 문서고’ 등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러시아의 우주 핵무기 개발 뉴스로 EMP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가 우주에서 핵 EMP 무기를 사용한다면 전 세계에서 쏘아 올린 위성이 무력화된다. 이럴 경우 위성에 기반한 통신망과 항공·선박·도로 교통망이 마비돼 세계는 삽시간에 석기시대로 돌아간다는 끔찍한 시나리오다.러시아 우주 EMP 개발 소식에 미국이 긴장하는 가장 큰 이

    2024.02.19 17:59
  • [천자칼럼] GDP 역전

    1960년대 욱일승천하던 일본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인 1964년 도쿄올림픽이다. 신칸센 개통, 컬러TV 방송 등 전후 일본 현대사 최대 이벤트였다. 중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올림픽 기간에 핵실험을 했다. 또 하나는 1968년, 서독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서방의 ‘경제적 동물’이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고속 성장을 지속한 ‘메이드 인 재팬’ 파워였다.일본의 G2(주요 2개국) 위상은 이후 42년간이나 지속하다가 2010년 중국에 그 자리를 뺏겼다. 파죽지세 중국 경제가 미국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대두됐다. 그러나 미국은 ‘넘사벽’이었다. 중국 GDP는 2021년 미국의 75.2% 수준까지 추격했으나 2년 연속 격차가 벌어져 지난해엔 66.3%로 뚝 떨어졌다. 일본도 1995년 미국 GDP의 71.12%까지 따라잡았으나 지금은 15%에 불과하다.최근 2년 새 세계 경제 빅5 내 순위가 요동쳤다. 90년 가까이 영국에 식민 지배를 당한 인구 대국 인도가 2022년 영국을 제치고 GDP 5위에 올랐다. 영국에 물경 6경원 가까운 자산을 수탈당했다는 인도인들에겐 ‘복수의 서막’인 셈이다. 작년엔 일본이 55년 만에 독일에 재역전당해 GDP 순위가 4위로 내려앉았다. ‘역사적 엔저’의 산물이긴 하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GDP는 ‘민간소비+정부지출+투자+순수출’이라는 단순화한 산식에서 알 수 있듯 한나라 최종 생산물의 시장가치 합, 즉 경제력의 총합이다. GDP가 의미를 갖는 것은 국력의 추동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현재 13위인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과

    2024.02.16 17:42
  • [윤성민 칼럼] 김정은의 '커밍아웃'이 놀랍지 않은 이유

    김정은은 일련의 발언과 조치를 통해 민족·화해·통일·평화를 모두 부정하고, 핵 무력으로 남한을 평정하겠다는 전쟁론을 노골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두고 급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변한 게 없다. 양의 탈을 벗으니 늑대의 본색이 드러났을 뿐이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은 달랐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무력에 의한 남한 점령을 노렸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가 없다.김일성 일가는 6·25전쟁 이후 70여 년간 남한을 무력 공산화하겠다는 야욕을 버린 적이 없다. 김일성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건 이미 1950년대다. 최정예 테러리스트를 침투시켜 남한 대통령 참수 작전도 시도했다. 김정일 대에 접어들어선 우리 정치에 본격적으로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다. 그 역사적 계기는 2001년 9월에 있었다.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이다. 북한 통일전선부의 지령에 따라 충북 괴산 군자산(君子山)의 한 수련원에서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가 열렸다. 남한 각지에서 주사파 700명이 모였다.군자산의 약속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길거리 통일 운동 대신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남한 제도권 정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핵·미사일로 미국을 압도해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당시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집회에 참석한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는 “북한 주도의 통일론은 군사적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며, 사실상 6·25전쟁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사파의 국회 진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 아니라 남한을 북한 순응적 사회로 바꾸는 것이다. 급기야 전 정권에서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이관시키는

    2024.02.07 18:10
  • [천자칼럼] 후평동 형제

    2022 월드컵 포르투갈전에 이어 이번 아시안컵 호주전에서도 대역전극의 듀오가 된 손흥민(32)과 황희찬(28)은 출생지가 같다. 강원 춘천시 후평동이다. 손흥민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이곳에서 산 데 비해 황희찬네는 생후 열 달 뒤 부천으로 이사 갔지만, 면적 3.87㎢의 좁다란 동네에서 나란히 태어난 두 사람의 인연은 흔치 않다.둘은 고향 선후배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적잖다. 손흥민은 어렸을 때 컨테이너에서 산 적이 있다. 아버지(손웅정 씨)는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도 가리지 않았다. 부친이 축구 교육을 위해 큰맘 먹고 산 창문 틈으로 빗물이 줄줄 새는 고물 프라이드에 온 가족이 좋아했지만, 주위에서 ‘똥차’라며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곤 세상의 차가움을 절감했다고 한다.황희찬은 유년 시절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그는 골을 넣고는 왼쪽 손목에 대고 키스 세리머니를 종종 하는데, 거기엔 조부모의 한자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뵙고 마지막까지 뵙는 분이 조부모다. 그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 인생의 전부이고 모든 것”이다.두 사람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독기 어린 노력과 자기관리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시절 한국에 여름 휴가차 다녀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를 친다. 뒷산을 오르내리는 웨이트가 끝나면 아버지가 들고 온 20개의 공으로 오른발 500번, 왼발 500번씩 1000개의 슛 연습을 5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슈팅은 그때 다 만들어졌다고 한다.황희찬은 부상 관리 차원에서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돼지고기는 입에 대지 않고, 조미료도 안 넣고 외식도 안 한다.

    2024.02.05 17:47
  • [천자칼럼] 스위프트 음모론

    2018년 6월, 미국의 한 시민이 후버댐에서 경찰과 대치극을 벌였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사건에 대한 법무부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숨겨진 비밀 보고서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총기 무장은 물론 사제 장갑차까지 몰고 와 도로를 폐쇄했다. 어제 미국의 한 30대 남성이 부친을 살해한 패륜 범죄로 체포됐다. 그는 연방정부 공무원인 부친을 ‘조국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유튜브에서 절단된 시신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이들은 모두 ‘Q’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Q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세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음모론 집단 ‘큐어넌(QAnon)’을 상징한다. 미국 기밀정보 최고 보안등급인 Q등급과 ‘anonymous(익명)’의 합성어다. 큐어넌은 ‘딥스테이트’라는 소아성애 사탄 숭배자들이 미국과 전 세계를 비밀리에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지목한 딥스테이트는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낸시 펠로시,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 민주당 유력 정치인이나 민주당 지지 셀럽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딥스테이트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정의의 사도가 바로 트럼프라는 것이다.음모론자들이 이번에는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의 동갑내기 연인인 유명 풋볼 선수 트래비스 캘시 커플을 겨냥하고 나섰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 스위프트는 국방부 비밀 요원이며, 그와 캘시의 공개 연애는 바이든 재선을 위한 ‘기획 연애’라는 것이다. 심지어 캘시가 속한 캔자스 치프스의 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 진출도 조작됐다고 했다.스위프트 음모론은 오는 11일 슈퍼볼 경기를 앞두

    2024.02.01 17:57
  • [천자칼럼] 인감증명서

    전 세계에서 도장 문화가 가장 뿌리 깊은 나라는 일본이다. 코로나 재택근무 기간에도 적잖은 직장인이 결재 서류 날인을 위해 1주일에 서너 번은 사무실에 나갔다고 한다. 심지어는 출근부에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하기도 했다.인감 제도가 탄생한 나라도 일본이다. 메이지유신 때인 1878년, 전 국민에게 규격화한 도장을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했다. 인감도장이 찍힌 거래와 계약서만 공인받았다. 전시에도 도장을 들고 배급 물품을 수령했다. 일본에서 도장은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는 수단이자, 개인에게는 자신을 증명하는 징표 같은 것이다.세계적으로 인감 제도가 있는 나라는 일본, 대만, 한국 등 세 곳뿐이다. 대만은 1906년, 한국은 1914년 일제 강점기 때 도입했다. 나머지 대부분 나라는 서명과 공증 제도를 함께 쓴다.우리 인감 제도에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12년 12월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도입하면서다. 주민센터에서 지문날인으로 본인 확인을 거치고 이름만 쓰면 인감증명서와 같은 효력의 문서를 발급하는 것이다. 전자 발급도 가능해 매번 주민센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본인서명사실확인서는 인감증명서 발급의 5~10%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도 본인 증명이 필요한 곳에서는 여전히 인감증명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정부가 민생 정책의 일환으로 인감증명서 대폭 간소화에 나섰다. 집 매매 뒤 소유권 이전 등기 때 인감증명서를 없애고, 부동산 거래·금융기업 제출용을 제외한 일반 인감증명서는 온라인에서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인감증명을 요구하는 사무도 80% 이상 폐지하기로 했다.2000년대 초만 해도 한 해 5000만 통 수준이던 인감증명서 발급 건수는

    2024.01.30 18:00
  • [천자칼럼] 피클볼 열풍

    기존 인기 운동 종목을 변형해 만든 새로운 경기를 ‘뉴스포츠’라고 한다. 야구 파생형 티볼, 지름 1.2m짜리 공으로 하는 배구형 킨볼, 태클 대신 허리춤에 찬 플래그를 뺏는 변형 미식축구 플래그 풋볼 등이 있다.요즘 미국에서 가장 ‘핫한’ 뉴스포츠가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를 결합한 피클볼이다. 탁구채 2배 크기의 라켓에, 테니스공 크기의 구멍이 송송 난 플라스틱 볼을 쓴다. 코트 규격은 테니스장 3분의 1로, 배드민턴과 같다.피클볼은 저렴한 비용에 쉽게 배우고 안전하게 즐긴다는 뉴스포츠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좁은 코트에 볼 스피드도 테니스의 3분의 1에 불과해 남녀노소 누구나 간단히 배울 수 있다. 룰은 몇 가지를 빼곤 테니스와 같다. 서브와 첫 리턴을 받아 칠 때는 바닥에 반드시 한 번 튀긴 뒤 쳐야 하는 투바운스룰, 네트 근처에서는 발리를 금지한 ‘키친존’이 있다는 정도다.피클볼 인기몰이는 유명 인사들이 주도했다. 피클볼이 50년째 취미라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유튜브 영상과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미식축구(NFL) 전설의 쿼터백 톰 브래디 등의 피클볼 구단 인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미국에는 정기적 피클볼 인구 500만 명에, 프로 리그까지 생겼다. 피클볼 리그에는 현대자동차가 후원할 정도다.테니스장이 피클볼 코트로 바뀌면서 부작용도 없지 않다. ‘팡, 팡’ 하는 플라스틱 공 소음에 주민들이 소송이나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한 고소득층 지역에서도 이런 갈등이 표출됐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소음 문제는 피클볼 대중화를 위한 제1 과제다.피클볼은 조정에

    2024.01.28 17:38
  • [천자칼럼] 착한 가게

    301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가격 상한령은 인류 최초의 가격 통제 정책이다. 1000여 개 상품과 서비스 요금에 최고 가격을 매기고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결과는 대혼돈이었다. 시장 기능이 마비되면서 상품이 사라졌다. 당시 역사학자 락탄티우스는 “많은 사람이 물건 하나 때문에 죽었고, 절도와 약탈이 들끓어 결국 법은 폐지됐다”고 전했다.가격 통제로 국가와 시민이 서로 적이 된 사례도 있다. 미국 독립전쟁 때 펜실베이니아주 인근 밸리 포지에 진지를 친 조지 워싱턴 군대가 물자 부족에 시달리자 펜실베이니아주 의회는 상인들이 독립군에 값싼 가격에 물품을 팔도록 하는 ‘물가 통제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독립군에 판매를 거부했고, 급기야는 적군인 영국군과 거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자 공급이 끊어진 워싱턴 군대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미국 13개 주 연합 의회는 이듬해 이런 법령을 다시는 만들지 말자고 결의했다. 이른바 ‘밸리 포지의 교훈’이다.하지만 물가관리 특명을 받는 공무원들은 종종 이런 교훈을 잊는다. 행정안전부는 지역 평균보다 싸게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착한가격 업소’로 지정해 명패 부착과 함께 상하수도 요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제도 시행 13년이 됐건만, 초기보다 대상 업소가 오히려 감소했다.가격을 내세운 ‘착한 식당’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가격’에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착한 가게는 간판에 ‘순대국밥’이라고 써놓고 음식은 백반만 판다. 돼지고깃값이 올라 국밥 가격을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렸더

    2024.01.25 17:43
  • [윤성민 칼럼] AI 시대, 전기를 쥔 자가 살아남는다

    얼마 전 체감 영하 50도의 미국 동부 지역 한파에 국내 증시에서 ‘뜨거워진’ 종목이 있다.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일진전기 등 송배전주다. 난방 수요 급증으로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정전 사태가 일어나면서 미국의 전력 인프라 수요가 올해도 여전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이들 기업은 대형 변압기의 70%가 교체 시기에 도래한 미국 시장에서의 선전으로 이미 지난해 주가가 두 배 이상씩 뛰었다.미국인들에게는 대규모 정전에 대한 악몽이 여럿 있다. 2021년 2월 텍사스주는 중대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의 대형 정전 사태를 겪었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도 이때 나흘간 지속된 정전으로 4000억원의 피해를 봤다. 2020년 캘리포니아주 정전은 지역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다. 전력의 30%를 변동성이 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의존하면서도 예비전력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진 못한 것이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캘리포니아주는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자 당초 2025년 폐쇄하기로 한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을 2030년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작년 말 결정했다.인공지능(AI) 시대는 전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사적 모멘텀이 되고 있다. AI로 전기 수요가 폭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자연어 처리를 위해 1750억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진 GPT-3 모델을 한 번 학습시키는 데 1.3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이 들어간다. 한국 전체에서 1분간 소비되는 전력량 규모다. 검색에 쓰이는 전기량도 AI가 일반 검색보다 5배나 많다. 무엇보다 AI를 ‘전기 먹는 하마’로 만드는 것은 데이터센터(IDC)다. 생성형 AI는 IDC 서버 용량도 급증하는데, 이때 서버 열을 식히는 냉각

    2024.01.24 17:48
  • [천자칼럼] 애플 vs MS '왕좌의 게임'

    미국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분석이 시작된 것은 1926년이다. 이후 98년 동안 미국 증시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한 기업은 10여 개에 불과하다.발명왕 에디슨이 설립한 제너럴일렉트릭(GE),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 세계 최대 석유 메이저 엑슨모빌, 화학회사 듀폰, 세계 최대 담배회사 알트리아, 통신기업 AT&T, 유통업체 월마트와 정보기술(IT)업체 IBM·마이크로소프트(MS)·애플·시스코·알파벳·아마존 등이다.미국 시총 1위 기업의 바통 터치는 글로벌 산업 트렌드와 맥을 같이했다. 닷컴 버블이 꺼진 2001년부터 미국 증시 대장주 자리는 GE가 차지했다. 2000년대 중반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패권은 석유·자원주로 넘어갔다. 엑슨모빌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황제주 자리를 지켰다.엑슨모빌의 독주를 저지한 기업은 애플이다. 2007년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12년 왕좌에 오르면서 빅테크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그해는 한국전력을 제치고 1999년 한국 증시 대장주에 등극한 삼성전자가 세계 시총 10위에 든 유일한 해이기도 하다.애플은 이후 작년까지 딱 한 차례를 제외하곤 시총 세계 1위 자리를 놓은 적이 없다. 2018년 MS가 애플의 질주에 제동을 건 적이 있는데, 올 들어 애플과 MS 간 세기의 라이벌전이 재현되고 있다. MS는 세계 증시에서 가장 기라성 같은 종목이다. 자본금 1500달러로 시작해 상장 9년 만에 세계 시총 10위에 진입한 뒤 1998~2000년 정상에 올랐으며, 그 뒤로 단 한 번도 톱10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애플과 MS의 왕좌 전쟁은 단순한 기록 경쟁을 넘어 미래 산업의 주

    2024.01.14 18:20
  • [윤성민 칼럼] 한국의 87 체제, 아일랜드의 87 체제

    지난해 마지막 날 일론 머스크가 X(옛 트위터)에 올린 한반도 야경 사진이 화제가 됐다. 한밤중에도 불빛으로 전역이 환한 남한과 전력난으로 평양 정도 외에는 모두 어둠에 잠긴 북한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된 사진이다.머스크는 이런 문구도 붙였다. “‘미친 아이디어: 한 나라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반으로 나눠 70년 뒤 어떻게 되는지 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교수인 대런 애스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제임스 로빈슨(현 시카고대 교수) 세 사람은 이미 2005년 머스크의 ‘미친 아이디어’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본래 한 나라였던 남북한이 왜 이렇게 엄청난 경제력 격차를 보이게 됐는지를 밝힌 ‘장기 성장의 근본 원인으로서의 제도’란 논문이다. 답은 논문 제목에 있듯 제도, 곧 사회 시스템이다.논문 저자 중 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이 남북한 사례에서 영감을 얻어 동서양의 다양한 국가 흥망 사례를 같은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 유명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 저자들의 결론은 경제 제도가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에 따라 국가의 성쇠가 좌우됐다는 것이다.포용적 시스템은 사회 전반에 권력이 분산돼 있으며, 인센티브 추구로 작동하는 ‘기회’ 사회다. 착취적 시스템은 소수 특권층이 자원을 독점하고, 이들의 지대추구로 대다수의 인센티브가 좌절되는 ‘기득권’ 사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제 제도의 포용·착취적 여부를 가르는 게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정치 제도가 포용적이어야 포용적 경제 제도가 가동되고, 착취적 정치제도와 경제 제도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잘사는 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가 훨씬 많듯

    2024.01.10 17:58
  • [천자칼럼] 여군 잠수함 승조원

    예로부터 배에는 금기사항이 많았다. 폭풍우를 불러올 수 있다며 휘파람을 불지 못하게 했고, 사고가 나서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 부자를 한배에 태우지 않았다. 심지어는 생선을 뒤집어 먹지도 못하게 했다. 배가 전복할 수 있다는 미신에서다.동서양을 막론하고 빼놓을 수 없는 배 금기 중 하나는 여자를 배에 태우는 것이었다. ‘재수가 없다’라거나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식의 속설을 내세웠다. 그러나 합리적 이유는 선원 간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여성의 배에 대한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정작 배는 ‘여성’으로 인식됐다. 영어에서 선박을 뜻하는 대명사는 it도 he도 아닌 she다. 항해 용어로 ‘속력을 늦춰’라고 할 때 쓰는 영어 표현은 ‘ease her’다.천주교 세례식에서 여성의 대모는 여성이 맡는 것처럼 여성으로 간주하는 배의 명명식도 여성이 맡는다. 선박명을 지어주고 도끼로 배에 연결된 밧줄을 자르는 의식은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을 끊어주는 것과 같은 의미다. 선박명에도 여성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역사상 가장 도전적 선박 중 하나인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탄 배의 이름도 ‘산타 마리아호’다.여성이 항해사로 승선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세계 최초의 여성 선장인 러시아의 안나 쉐티니나가 항해사로 첫 배를 탄 것은 1932년이었다. 한국에선 현대상선이 1996년 처음으로 여성 항해사를 기용했다. ‘금녀의 벽’이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배는 잠수함이다. 협소한 공간 특성상 여성 승조원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탓이다. 1985년 노르웨이를 필두로 여군 잠수한 승조원이 있는

    2024.01.05 17:41
  • [천자칼럼] 항공사고 골든타임 90초

    항공기 사고 통계를 보면 대부분 이륙 후 3분, 착륙 전 8분 이내에 발생한다. 항공업계에선 이 시간대를 ‘마의 11분’이라고 부른다. 사고가 일어나면 ‘90초 룰’이 작동한다. 항공기 충돌 사고 직후에는 화재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모든 승객과 승무원을 90초 안에 탈출시켜야 하는 항공사고의 골든타임이다.90초의 의미는 이 시간이 지나면 연소 범위가 확대돼 기체 안이 일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90초 룰은 항공기 형식증명(기술 인증)과 승무원 비상 탈출 훈련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44인승 이상 비행기는 비상구의 50%만을 사용해 90초 이내에 전 좌석의 승객이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을 때만 형식증명을 받을 수 있다. 사고 과정에서 문이 망가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비상구 절반만을 사용하도록 가정한 것이다.2006년 3월 에어버스의 세계 최대 여객기인 A380의 안전 테스트는 최대 탑승객 853명과 승무원 2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에어버스사 격납고에서 열렸다. 16개 비상 탈출구 중 8개만을 사용해 승객과 승무원이 대피했는데, 8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항공사 승무원들은 정기적으로 90초 룰에 입각해 승객 대피 안내와 탈출 슈터(미끄럼틀) 작동 등 안전 훈련을 받는다.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항공기 충돌사고와 화재에도 일본항공(JAL) 여객기 탑승객 379명 전원이 무사히 탈출한 것을 계기로 90초 룰이 재조명 받고 있다. 물론 전 승객이 대피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이다. 그러나 평소 90초에 맞춘 대비가 있었기에 비행기 외부에서는 화염이 치솟고 기내는 연기로 자욱한 극한 상황에서도 이른 시간에 전원 구조가 가능했

    2024.01.03 17:51
  • [천자칼럼] 정치인 테러

    한국 정치사에서 테러가 가장 난무한 때는 좌우가 극한으로 대립한 ‘해방 공간’이었다. 1945년 12월 동아일보사 사장을 지낸 우파 정치인 고하 송진우 자택 암살 사건에 이어 1947년 4월 중도좌파인 근로인민당 당수 몽양 여운형 혜화동로터리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여운형은 해방 후 2년 동안 무려 10차례나 피습됐다. 같은 해 12월엔 한국민주당 핵심 설산 장덕수가, 1949년 6월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가 저격당해 세상을 떠났다.독재정권 시절에는 정치 깡패를 동원하거나 정보기관이 개입한 야당 정치인 테러 사건이 심심찮게 있었다. 자유당 정권 때인 1957년 이정재, 유지광 등 정치 깡패들이 범야권의 장충단 시국 강연회에서 폭력을 행사해 집회를 파탄 냈다. 1969년 6월에는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 승용차 초산 테러 사건, 1973년 8월에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4월엔 안기부가 배후 조종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테러인 ‘용팔이 사건’이 있었다.김영삼 정부 이후 잠잠하던 정치인 테러가 다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6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피습 사건이었다. 우측 뺨에 11㎝의 자창을 입은 박 대표가 봉합수술 후 깨어나 “대전은요?”라고 했던 것이 이때다.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 토론회 폭행 사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폭행 사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쇠망치 테러 사건 등이 잇따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어제 부산에서 흉기로 목 부위를 찔리는 테러를 당했다. 국내 정치인 중 팬덤이 가장 두터운 이 대표는 반대자들로부터 종종 봉변도 겪었다. 2022년 5월 인천 계양을

    2024.01.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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