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학수 상병
故 이학수 상병
전쟁은 너무나도 큰 일이라 때로는 그 비극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을 둘러싼 거대한 정치·사회적 맥락을 살펴보다 보면 더 그렇다. 우리가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그 시간을 살아낸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구글이 DMZ 온라인 전시에서 6·25전쟁 참전 용사인 고(故) 이학수 상병의 이야기를 다룬 건 그래서다. 1951년 당시 20세 청년이던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1952년 휴전선 부근 경기 장단 지역에서 전투를 치르다 큰 부상을 입었다. 머리에 총탄이 박혔다. 실명은 피할 수 있었지만 깊게 파고든 파편은 당시 의학 기술론 없앨 수 없었다.

故 이학수 상병의 머리에 박혀 있었던 파편.
故 이학수 상병의 머리에 박혀 있었던 파편.
머릿속 파편은 전쟁이 중단된 후에도 끔찍한 두통으로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 상병은 2005년 눈을 감고 나서야 비로소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가족은 화장한 뒤에야 그를 괴롭히던 파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파편은 전쟁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구글 온라인 전시에선 그 파편과 함께 그가 남긴 93쪽 분량의 병상 비망록을 볼 수 있다.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쟁에 희생된 사람은 이 상병뿐만이 아니다. 1950년 끊어진 대동강 철교에 가까스로 매달려 탈출하려는 피란민, 1951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판잣집과 천막으로 된 피란 학교에 모인 어린아이들, 나라를 구하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든 앳된 얼굴의 학도병 등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들의 삶이 온통 암흑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단한 시절에도 새 생명이 태어나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존재했다. 아픈 역사를 딛고 우리가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이유를 말해주듯이.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