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나온 3040 아재들도 '패피' 될 수 있다…'이것'만 안다면
세상 모든 남자를 나누는 기준 중에 이런 게 있다. 옷 입는 걸 즐거워하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 나이가 서른 중반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 기준으로 주변 친구들이 더 명확히 갈렸다. 재미있는 건 그 비중이 2 대 8, 많게는 1 대 9 정도라는 것. 더 솔직히 말하면 옷 좋아하는 남자는 100명에 1명도 채 안 된다.

옷차림을 기본으로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단연코 삶에 더 많은 유익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부족한 나를 채우는 자신감으로, 운동을 위한 퍼포먼스로, 여행지에선 동네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느낌으로, 나를 가꾸는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 자칭 ‘옷쟁이’로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그간 내가 옷의 덕을 누렸던 순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남자는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진다고들 하는데, ‘멋’이라는 건 과연 뭘까.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결국 멋이라고 하는 건 ‘나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연예인이 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본연의 나를 내적으로 가꾸고 외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결국 ‘멋’이란 한 음절의 단어로 통칭되는 것 아닐까. 다만 내 안의 멋이 심긴다고 해서 고스란히 바깥으로 자라나 근사한 향을 풍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란 얘기다! 어떤 이론과 공식보단 개인의 노력과 시간 투자가 절실한 영역. 그래서 스스로의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다.
배 나온 3040 아재들도 '패피' 될 수 있다…'이것'만 안다면
30·40대 남자 중 안팎으로 멋을 가득 채운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려 한다. 옷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지, 이것으로 취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는 무엇인지, 반대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뭔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혹시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여 ‘나도 이렇게 해볼까’ 생각이 들면 좋겠다. 이 칼럼의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조금 부끄럽지만 나다.

▷당신은 누구인가.

1983년 2월생. 평범한 회사원이다. SNS 등 온라인에선 ‘디테일런스(detailance)’라는 이름으로 패션과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글을 쓴다. 현재 패션회사의 마케팅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디테일런스’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하다.

오래전 만든 단어다. 디테일(details)과 밸런스(balance)의 합성어다. 패션에서도 삶에서도 꼼꼼하고 섬세하게 파고드는 태도와 균형감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생각해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이기도 하고 삶의 철학이자 모토이기도 하다. 10년여 전 패션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의 주제는 ‘당신의 삶에도 패션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보다 더 멋지다’였다. 30·40대 남자들의 패션 이야기를 담론화하고 그들의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정리하고 싶었다.

▷30·40대 남자들의 옷차림이 어때서? 어떤 이야기를 담론화하고 싶었나.

30·40대라고 해서 자신이 멋있어지는 걸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 아니, 방법을 모른다는 걸로도 부족할 만큼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조차 못 하는 게 현실이다. 마치 일반인에게 로봇을 만들어 보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일 거라 생각한다. 아마도 많은 남자가 30년 이상을 살며 자신의 머리와 마음을 채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지, 외모를 가꾸는 방법에 대해 앞서 말한 것의 1만분의 1시간이라도 썼을까. 아니면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에서 나와 어울릴 이미지들을 찾아보기라도 했을까. 그렇기에 사고의 범위를 넘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달라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패셔니스타는 누군가 등 떠밀어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깨닫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마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지 않을까?

주변 친구들의 80~90%가 옷차림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채 살아간다. 살면서 아주 중요한 이벤트(애인에게 잘 보여야 하거나,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드려야 하거나, 면접 또는 결혼 준비 등)가 아닌 이상, 보통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산다. 30·40대라는 나이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장 바쁘고 복잡한 나이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거듭하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증명할 때다. 그래서 시간과 돈의 여유가 가장 부족할 때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래서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누군가는 그를 보자마자 ‘이미지’라는 걸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그 누군가는 직장 동료일 수도, 비즈니스 파트너일 수도, 오늘 잘 보여야 하는 이성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각인된 이미지는 꽤 오래 간다. 최소한 내가 가진 내면의 가치와 삶의 철학 정도라도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스스로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나?

동기 부여는 쉽지 않다. 체험을 동반한 특강이나 1 대 1 컨설팅이 아니고서야 정말 어렵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의 내 옷차림을 스스로 찍기 시작했다. 옷차림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기록하려고 매일 아침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다. 코디의 의도와 구체적인 스타일, 브랜드와 함께 적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외부 손님이 오시기 때문에 패션 회사 마케터로서 조금은 센스 있는 모습과 함께 신뢰도 줄 수 있는 착장이 필요했다. 신뢰감을 주는 다크 네이비 재킷을 베이스로 전체 착장을 구성하되, 꼭 패션 마케터로서의 센스를 보여주고 싶어 타이와 양말은 보라색으로 맞췄고, 구두도 테슬이나 홀스빗 로퍼와 같은 포인트 아이템을 택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유행하는 데일리룩을 10년 전부터 찍은 건가.

2013년부터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으니 딱 10년이 됐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왔고 여전히 일상의 매일을 담아 기록하고 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나 자신이다. 1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멋있어진 것 같다. (하하) 비록 나이는 들었고 주름도 늘었지만.

다만 시행착오가 많았다. 데일리룩을 처음 찍던 무렵 이탈리안 클래식 스타일에 꽂혔다(사진 ①②). 수트나 재킷을 베이스로 완벽하게 핏이 맞아떨어지는 포멀한 남자의 모습. 조금 과장해서 나는 이게 남자 옷차림의 끝이라 믿는 광신도 같았다. 타이는 무조건 폭이 7㎝ 이상으로 볼륨감 있는 딤플(타이 매듭)이 잡혀야 했고, 상의 재킷은 엉덩이를 덮는 조금은 긴 기장에 소매의 버튼을 실제로 잠갔다 풀 수 있어야 하며, 바지는 복숭아뼈 전후로 떨어지는 깔끔한 핏에 4~5㎝를 접어올린 턴업, 구두는 바느질로 밑창을 이어 붙인 웰트식 제법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면 사실 그 나이에 다소 과한 구석도 있고 꽤나 어색했던 차림이다. 어린아이한테 어른 옷을 입힌 꼴 같달까.

▷10년간 달라진 게 뭔가.

돌고 돌아 나에게 맞는 차림새를 찾아온 것 같다. 내게 어울리는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정교해졌다. 몸과 마음도 변했다. 옷에 어울리는 자세와 체형을 알아가며 거기에 맞춰 운동하고 평소 자세를 교정하는 습관을 들였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었을 때와 정갈한 수트를 입었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장르에서든 최선의 차림을 위해 노력하며 누군가를 대하고, 내 일을 대하고, 상황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 또한 바르게 세워졌다. 그대로인 것도 있다. ‘옷차림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패션회사에 다녀서 더 관심이 많은 것 아닌가.

물론이다. 패션회사에 다녔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엔 패션업계에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더 깊이 있게 옷에 대해 고민하고 즐기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는 것이 이 칼럼의 목표이기도 하다. 옷을 사랑하면서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앞으로 많은 기대를 부탁드린다.

지승렬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