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카카오계열사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막막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듯 모임을 열었어요. '첫인상 만들기' '찐친 만들기' 등 벌써 500번의 모임을 진행했죠. 지금은 일주일에 3일을 일하면서 회사에 다니던 때만큼 월급을 벌고 있어요. 다음 목표는 게스트하우스를 여는 것 입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투잡을 넘어 N잡이라는 말이 생겨난 지금 안정된 직장을 나와 색다른 직업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직장인 카카오를 때려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N잡 시대'를 살고 있는 소셜 플랫폼 문토의 호스트 '그레이'(활동명)를 지난 1월25일 한국경제신문이 만났다.
호스트로 활동 중인 '그레이'.
호스트로 활동 중인 '그레이'.
Q. 자기 소개 먼저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문토에서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레이라고 합니다. ‘첫인상 끝판왕 소셜링', ‘또 나만 진심이야? (찐 친 만들기)’ ‘우리 안대를 끼고 이야기해 볼까요? (블라인드)’ 등 현재까지 총 400~500 번의 모임을 열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카카오 라이브 커머스 계열사에서 판매자 정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직장인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쿠팡과 블랭크에서 일했었죠. 작년 11월 말에 퇴사를 해 지금은 유료 모임을 운영하면서 게스트 하우스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Q. 어떻게 호스트를 하시게 됐나요.
"지인을 통해 플랫폼을 알게 됐습니다. 2~3개월까지는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실현해 본다는 생각에서 무료로 모임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죠. 신청 대기만 수십명이 될 정도로요. 자심감을 얻어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가격대를 찾아 꾸준히 유료 모임을 진행 중입니다."

Q. 호스트 일과를 소개해주세요.
"제가 진행하는 모임은 저녁에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오전 늦게 일어나요. 호스트의 큰 역량 중 하나가 참가자 14명을 4~5시간동안 끌고 갈 수 있는 체력이거든요.(웃음) 어떤 날은 모임을 2개 운영하기도 해서 하루에 2~3시간은 헬스장에서 운동하기도 하죠. 그리고 오후부터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공유 공간에서 콘텐츠 기획 등의 작업을 해요. 모임이 있는 날은 3~4시간 전에 미리 모임 장소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사고, 음식이나 주류도 준비합니다. 모임 끝나는 시간은 매번 다른데, 보통 오후 8시쯤에 시작해서 12시 전후나 길게는 3시쯤에 끝날 때도 있어요."
호스트 '그레이'의 모임 공간.
호스트 '그레이'의 모임 공간.
Q. 초기에 애로 사항이 있었나요.
"모임에 적합한 장소를 구하는 것이 초반에는 조금 어려웠어요. 그리고 초반에는 큰 수익을 생각 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에 큰 장소를 구하기에는 다소 애매 했어요. 초반에는 큰 카페에서 진행하기도 했어요."

Q. 시행 착오나 고충이 있나요.
"제가 스타트업이나 IT회사에 쭉 근무했기 때문에 신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니 쉬웠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힘들었죠. 회사에서는 판매자 정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업무를 하긴 했지만 직접 대면으로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저만의 노하우가 생겨서 어렵지 않습니다."

Q. 월 수익은 어느 정도 인가요.
"정확히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최근에는 과거 본업에서 벌었던 것만큼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3일, 그것도 내가 기획하고 준비한 내용대로 같이 즐기면서 얻는 수익인지라 훨씬 삶의 만족도가 높아요. 좋아하는 것으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이런 기회를 알게 되어 빨리 잡은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스트 '그레이'의 모임 공간.
호스트 '그레이'의 모임 공간.
Q. 기억에 남는 게스트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가 운영하는 모임 중 ‘첫인상 끝판왕’이라는 주제의 모임이 있는데, 참여자들끼리서로 외모나 성격, 매력 등 첫인상에 대해서 알려 주는 내용이죠. 한 단골 참여자가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거예요. 본인도 잘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날 다른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본인의 스타일이나 삶의 태도도 바꿔봤다구요. 제가 좋아서 시작한 모임이 다른 사람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니 꽤 보람 있었어요."

Q. 제2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단순하게 ‘돈’, ‘직업’이 아니라, 평소에 관심 있었거나 해보고 싶었던 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해요. 내가 원하는 주제로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열어서 수익도 낼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도 없어요. 자신의 개인적인 가치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MZ세대에게 이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나는 준비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으면 힘이 빠지잖아요. 문토에는 워낙 개성 넘치고, 다양한 관심사와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잘 모인다’는 점에서도 추천합니다."

Q.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전 직원이 다 있는 회사 메신저에 퇴사글을 올렸습니다. 막 입사하신 분들부터 C레벨분들까지 정말 모든 분들이 댓글로 응원해 주셨어요. 3번의 이직이 있었지만 이렇게 응원을 많이 받고 퇴사하기는 처음입니다. 그 때 느꼈어요. 스스로에게 확신이 든다면 퇴사하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도, N잡도 일단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는 없겠구나."

Q.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어려서부터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그러다 운이 좋게도 모임을 통해 수익도 만들고 나니 게스트 하우스를 열고 본격적으로 열어 볼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죠. 처음에는 인생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본업이자 앞으로의 제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참가자로 알게 된 지인도 어느 날부터 액티비티(서핑, 스키, 캠핑 등) 호스트로 활발하게 열고 있는데요. 매주 입금되는 참가비가 꼭 용돈 받는 기분이라고 하더라구요. 요즘에는 다들 'N잡이다, 파이프라인 만든다'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작은 모임부터 가볍게 시작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여러 직업을 가지는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N잡 뿐만 아니라 NEW잡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방준식의 N잡 시대>는 매주 일요일 연재됩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