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 토끼 모양 연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백자 청화 토끼 모양 연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3년 계묘(癸卯)년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위태로운 경제와 사회 곳곳의 대립, 점점 심해지는 저출산 등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영특한 꾀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진하는 토끼에서 위기를 헤쳐나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토끼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큰 귀와 360도를 볼 수 있는 눈, 자유자재로 땅을 팔 수 있는 앞발, 오르막을 달리기 알맞은 뒷발 덕분에 천적들의 위협 속에서도 번성해 왔다.

토끼가 힘센 동물들의 힘을 역이용해 이익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민족 설화 <별주부전>이 대표적 사례다. 가장 오래된 별주부전 얘기는 <삼국사기>에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의 신하인 선도혜에게 뇌물을 바치고 살려주길 부탁했다. 선도혜는 토끼가 거북이를 타고 용궁에 갔다가 거짓말로 잘 둘러대 도망쳤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김춘추는 보장왕에게 “땅을 주겠다”고 둘러대고, 무사히 도망쳐 훗날 왕의 자리에도 오른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도 있다. 영리한 토끼는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굴 세 개를 파 놓는다는 뜻이다. 만일을 위해 이중삼중의 대비를 하는 영리한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토끼는 헌신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불교 설화에 따르면 어느 날 동방을 지키는 신인 제석환인(帝釋桓因)이 누가 진정으로 보살의 길을 걷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노인으로 변신해 여우 원숭이 토끼에게 각각 먹을 것을 청했다. 여우는 생선, 원숭이는 과일을 가져왔다. 하지만 토끼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토끼는 불 속에 제 몸을 던져 바쳤다. 토끼의 소신(燒身)공양에 감동한 제석환인은 토끼의 모습을 달에 그려넣어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게 했다고 한다.

현실에서 토끼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번식력이다. 번식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100마리 가운데 70마리가 죽어서 30마리가 남아도 1년 뒤면 다시 100마리로 늘어날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 문화에서 토끼의 장점은 지혜, 헌신, 번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마침 우리 사회에 가장 귀하고 아쉬운 가치들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