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롯데에비뉴엘 본점 까르띠에 매장 앞에 대기자들이 늘어섰다. /한경DB
서울 중구 롯데에비뉴엘 본점 까르띠에 매장 앞에 대기자들이 늘어섰다. /한경DB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많이 올랐는데 설마 더 오를까’라는 의구심이 있지만 해외 명품 브랜드의 국내 가격이 끝없이 오르는 분위기입니다. 연말에 들어서면서 각 업체가 잇따라 가격을 기습적으로 올리고 있는데, 올렸다 하면 기본이 두 자릿수 인상률입니다.

업체들은 “통상 연초에 환율·관세 변동에 맞춰 가격을 조정하는 데다 원자재 값과 물류비, 인건비가 뛰어 가격을 올렸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명품 업체들이 구매 심리를 자극하려 갈수록 더 자주,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올랐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달엔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가 가격 인상에 나섰습니다. 까르띠에의 대부분 제품 가격이 평균 8~10%나 올랐습니다. 인기 제품 중 하나인 까르띠에 러브팔찌는 920만원에서 995만원으로 가격이 뛰었으며 산토스 시계(미디엄·스틸)는 905만원에서 965만원으로, 발롱블루 시계(33mm)는 1270만원에서 1360만원으로 각각 인상됐습니다.

앞서 샤넬도 최대 11%까지 가격을 올렸습니다.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입니다. 이밖에 버버리, 생로랑, 몽클레르 등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지난달 생로랑은 핸드백, 지갑, 슈즈 등 대부분 제품 가격을 올렸습니다. 루이비통 역시 기습적으로 가격을 3% 정도 인상했습니다. ‘패딩계 샤넬’로 불리는 몽클레르 역시 지난달 일부 제품 가격을 10~20% 올렸습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업체들은 환율·관세를 반영한 가격 조정이라는 입장입니다. 지난달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문의가 쏟아지자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환율 변동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 가격을 조정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소비자들은 환율·관세나 물류비에 따른 인상이라고 보기엔 가격 인상이 지나치게 잦고 인상 폭이 크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회원 수 60만명이 넘는 한 명품 커뮤니티엔 “명품 브랜드들의 끝없는 가격 인상이 이제 불쾌할 지경”이라는 성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선 과시적 소비에 나서는 소비자 행태를 이용해 희소성을 더해 ‘갖기 힘들수록 더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풀이합니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허영심 또는 과시욕 때문에 수요가 줄지 않는 ‘베블런 효과’를 마케팅 전략에 흔히 활용해왔습니다.

'또' 오른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연말 인상을 단행했지만 앞으로 가격 조정을 예고한 업체들은 더 남았습니다. 최근 열애설이 난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와 블랙핑크 제니가 가방을 들어 화제가 된 벨기에 명품 브랜드 델보도 다음달 4일부터 가죽 전 제품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릴 전망입니다. 올해 1월과 5월 두 차례 가격을 올린 후 8개월여만의 인상입니다. 초고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내년 가격을 5~10% 인상할 계획입니다. 쇼파드, 불가리 등 보석 브랜드들도 가격을 올리는 안을 검토 중입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따른 수요 폭발로 촉발된 명품 가격 인플레이션이 내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명품관 샤넬 매장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명품관 샤넬 매장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업체들이 가격 유지를 위해 공급을 거의 늘리지 않는 상태에서 수요는 늘어나니 제품 구하기가 갈수록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 제품을 구매하는 ‘오픈런’ 현상이 연말이 되자 다시 심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까르띠에가 제품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이 돌자 지난달 중순부터 각 백화점 매장엔 제품을 사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명품 매장 관계자는 “한동안 뜸하다가 다시 오픈런 현상이 심해져 오전에 백화점 문이 열리면 매장으로 전력 질주하는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니 한국 소비자가 호구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명품 브랜드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매출이 계속 오르기 때문입니다. 국내 명품 시장은 성장세를 지속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달러(16조원)로 세계 7위를 차지했습니다. 글로벌 명품 시장도 높은 실적을 유지 중입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올해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 늘어난 31억4000만 유로(약 4조4000억원)를 올렸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기간 루이비통 디올 펜디 등을 보유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매출은 19% 늘어난 197억6000만 유로(약 26조826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