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딸과 그린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  마크 도메이쥬 개인소장
피카소가 딸과 그린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 마크 도메이쥬 개인소장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다섯 살짜리 딸에게 드로잉과 채색을 가르쳤던 스케치북이 처음 공개됐다. ‘바람둥이’로 알려진 피카소의 ‘딸 사랑’을 엿볼 수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2일 “피카소의 손녀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피카소의 스케치북을 창고에서 발견해 세상에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이 스케치북은 피카소의 큰딸 마야 루이즈 피카소가 5~7세 때 제작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스케치북에는 피카소가 딸과 함께 그린 흔적도 남아 있다. 아버지의 그림에 딸이 점수를 매긴 페이지도 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그림은 17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우화작가인 장 드라 퐁텐(1621~1695)의 ‘여우와 포도’를 모티프로 한 그림이다. 피카소가 밑그림을 그리고, 마야가 색을 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을 떼지 않은 채 단번에 그린 독수리 그림도 인상적이다.
파블로 피카소(가운데)와 그의 딸 마야(오른쪽), 프랑스 여배우 베라 크루조의 1955년 모습. 베트만아카이브 제공
파블로 피카소(가운데)와 그의 딸 마야(오른쪽), 프랑스 여배우 베라 크루조의 1955년 모습. 베트만아카이브 제공
스케치북을 발견한 손녀 다이애나 위드마이어-루이즈-피카소는 가족 창고에서 이 스케치북을 발견한 뒤 86세가 된 어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스케치북인 걸 확인했다. 다이애나는 영국 일간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엄마의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엄마는 2차대전 여파로 물감과 캔버스가 부족하자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며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곳인 부엌에서 주로 그렸다”고 했다. 딸과 그린 스케치북에는 피카소가 물감 대신 종이 등을 붙여 만든 ‘파피에 콜레’ 기법과 평면을 해부하고 재해석한 입체파 기법 등이 숨어 있다. 피카소는 1935년 당시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마리테레스 발테름과의 사이에서 마야를 얻었다. 피카소는 마리테레스가 17세였던 1927년에 처음 만났고, 이듬해부터 동거했다. 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46세였다. 1930년대 피카소 그림 속에 주로 등장하는 마리테레스는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자 “그와 함께 있어줘야 한다”며 자살했다. 피카소는 딸 마야가 세 살 무렵이던 1938년 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22개월 동안 그의 초상화를 14점이나 남길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손녀인 다이애나는 예술사가이자 큐레이터,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올 연말까지 피카소미술관에서 열리는 ‘파블로 피카소의 딸, 마야 루이즈 피카소’ 전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피카소는 여러 여성을 만난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지만 이 전시를 통해 아버지로서의 사랑, 가족애에 관한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