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뚱보화가'의 쓸쓸한 눈동자…페르난도 보테로 '피크닉'(1989)
푸른 평원 위에서 느긋하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남녀. 턱을 괸 채 누워 있는 여자와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이상하다. 두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꽉 다문 입과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은 화가 난 걸까, 사랑이 식은 걸까. 바구니에 과일을 잔뜩 싸 들고 왔지만, 소풍 나온 옷차림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몸에 비해 이목구비가 너무 작다. 손 크기에 비해 유난히 짧고 뭉뚝한 손가락, 거대한 하체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작은 발까지…. 볼수록 기묘하다.

‘뚱보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는 ‘남미의 피카소’로 불린다. 보테로는 60년 넘게 풍선처럼 부푼 사람과 사물을 화려한 색채로 그려내 ‘보테로모프’라는 화풍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결코 뚱뚱한 사람들을 그리지 않는다.”

그는 작품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13세부터 투우사 학교에 다니며 밥벌이를 했다. 그는 투우장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했다. 이때 그린 그림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투우 시리즈는 불행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다.

스무 살 무렵 유럽으로 건너가 1년을 보낸 보테로는 벨라스케스, 고야 등 르네상스 명화를 모사했다. 그는 르네상스 명화를 비틀며 자신의 스타일을 굳혔다. 주인공을 통통하고 비대칭적으로 바꿔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고선, 거장들에 대한 ‘경의’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아흔 살 생일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그의 고향인 콜롬비아 보고타는 2022년을 ‘보테로의 해’로 지정했다. 가난을 딛고 화가가 된 보테로는 차곡차곡 모은 프랜시스 베이컨,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등의 명작 300여 점을 모국의 도시 메데인과 보고타에 기증했다. 기증의 조건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현대미술 100년사의 명작들은 그렇게 콜롬비아에 모였다. 마약의 도시 보고타는 그렇게 ‘문화도시’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우스꽝스러우면서 공허한 주인공들의 표정은 그의 조국 콜롬비아 사회의 폭력과 불공정,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조국을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내전과 마약 조직의 위협에 쫓겨 인생의 절반 이상을 타국에서 떠돌아야 했던 그의 삶. 위트 넘치는 그림에 담긴 어딘가 모를 불편함은 기묘했던 그의 인생사 때문 아닐까.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