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한국 현대사에 그대로 적용된다.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까닭에 삼국시대 조선시대보다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등잔 밑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혀줄 책이 여럿 나왔다.
《5공 남산의 부장들 1·2》(김충식 지음, 블루엘리펀드)는 제5공화국이라고 일컫는 전두환 시대(1980~1988년)에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낸 5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30년 전 출간돼 2020년 영화로도 제작된 《남산의 부장들》의 후속이다.
1980년 12·12 군사반란으로 ‘수사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등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이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와 공모(내란 방조)했다고 몰아세우며 군권을 장악했다. 이어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해 정보 조직까지 손에 넣었다.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 임기는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에 불과했지만 그사이 김대중 체포,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정치인 숙청 등 거친 작업을 주도하며 5공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밀수·암살만 빼고 1970년대 중앙정보부를 그대로 답습했다. 1985년 안기부장이 된 장세동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정치 깡패를 고용한 신민당 창당 방해, 수지 김 간첩 조작, 박종철 고문치사 등 각종 무리수를 연발하며 5공의 몰락을 불러왔다.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정진아 지음, 역사비평사)은 박정희 이전 시대인 1945년부터 1960년까지의 경제 정책을 살핀다. 신생 독립국 한국이 경제의 기틀을 다진 시기다. 건국대 교수인 저자는 자유 경제와 국가 주도 산업화 정책의 뿌리를 이승만 정권에서 찾는다.
정부 수립 후 경제 정책을 놓고 자본주의 경제계획론과 자유경제론으로 세력이 갈렸다. 조봉암 이순탁 등은 생산계획 물동계획 물가계획을 통해 국가가 전 산업 분야를 통제하고 균등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임영신 김도연 등 자유경제론자들은 상공업은 자본가에게 맡기고, 국가는 물동계획 자금계획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추구했다.
승기를 잡은 것은 자유경제론자들이었다. 6·25전쟁 후 백두진을 수장으로 하는 재건기획팀은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적극 편입해 원조를 받는 것이 경제 부흥의 지름길”이라고 봤다. 6·25전쟁 전만 해도 지식인들 사이에선 미국에 종속될 것이란 경계감이 컸다. 전쟁 뒤 미국의 경제적 지원은 한국 경제를 재건할 유일한 방안으로 간주됐다.
1956년부터는 장기 개발계획 수립에 나서 산업개발위원회가 1960년 4월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핵심은 중화학공업 육성이었다. 곧이어 발생한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계획으로 계승돼 한국의 국가 발전을 이끌었다.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 1》(손호철 지음, 이매진)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쓴 글과 사진을 담았다. 먼저 나온 1권은 제주 호남 영남, 여름에 나올 2권은 충청 강원 경기 서울을 다룬다.
제주 4·3사건, 동학농민운동,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돌던 저자는 여수공항 옆에 있는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아버지에 앞서 순교한 두 아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둘은 여수·순천 사건 때 좌익 학생들이 연 인민재판에서 ‘친미 예수쟁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영광 바닷가 염산제일교회 앞에도 이와 비슷한 ‘77인 순교기념비’가 있다. 저자는 “좌익이든 우익이든 학살은 학살”이라며 “목적이 옳다면 수단도 옳아야 한다”고 감상을 전한다.
1492년은 역사학계에서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에 첫발을 디뎠다.《술탄 셀림》은 이 역사적 발걸음을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 불가능하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지 2년 뒤 오스만제국은 비잔티움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1800년대까지 거의 4세기 동안 온 세상의 정치, 경제, 전쟁의 중심지로 군림했다. 오스만제국이 동쪽과의 교역을 완전히 장악하자 다른 많은 유럽 상인처럼 콜럼버스도 먼 땅과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동쪽 대신 서쪽으로 향했다. 오스만제국이 돌려놓은 방향키는 서구 열강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그 결과 잉글랜드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오스만제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재해석한다.“오스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역사학자와 일반 독자들에 의해 일축되거나 무시돼왔다. 그렇지만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은 서양과 동양이 공유하는 역사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여기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오스만제국이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서양의 많은 사람에게는 삼키기 어려운 아주 씁쓸한 알약이다.”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미카일이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오스만제국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사책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사물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했다.저자인 앨런 미카일은 예일대 역사학과장이다. 2018년 알렉산더폰훔볼트재단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문·사회학자에게 수여하는 안네리제마이어 학술연구상을 받았다. 책은 서구 사회가 ‘낯선 타인’을 배제하면서 세계사에 미친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을 축소했다고 지적한다. “서양인은 무슬림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적이자 테러리스트를 생각한다”는 것이다.“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이슬람교는 특히 미국에서 ‘거대한 타인’, 어떻게든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문젯거리로 인식한다. 서양 사회에서 무슬림은 일반 대중과 관청이 악마화하는 대상이고, 종종 노골적인 신체 폭력이 가해지는 피해자다.”서구의 관점에서 쓰인 근대의 역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는 점에서 최근 국내에 출간된 《1000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의 저자 발레리 한센 역시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다.묵직한 메시지와 800쪽이 넘는 분량의 압박에도 책은 잘 쓰인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오스만제국을 세계적 강국으로 만든 ‘야부즈(yavuz·정복왕)’ 술탄 셀림의 인생을 들려주며 자연스레 오스만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예컨대 오스만제국의 왕궁 하렘은 사치스럽고 성적 쾌락이 넘쳐나는 판타지와 신화의 장소로 여겨진다. 실상은 다르다. 책은 오스만제국 왕자와 기독교인 첩 사이에서 태어난 셀림의 어린 시절을 통해 하렘이 왕위 후계자 후보들의 치열한 생존과 학습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왕자들에게 하렘은 오스만튀르크어(행정 언어), 아랍어(종교학 습득 수단이자 쿠란의 언어), 페르시아어(학문과 시의 언어)를 익히고 궁술, 의학, 사냥, 옷 입는 법 등을 배우는 일종의 학교였다. 셀림이 치른 전투들은 오스만제국의 승리의 역사를 보여준다.이슬람교를 이해하는 건 현재에도 중요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셀림의 무덤을 자주 찾아가곤 한다. 보스포루스해협에 건설된 세 번째 다리에 셀림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가 셀림에 집착하는 건 ‘이슬람을 다시 위대하게, 터키는 그 중심’이라는 선언과 마찬가지다. 셀림에 대해 모른다면 읽어낼 수 없는 내용이다. 2070년이 되면 기독교를 대신해 이슬람교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둔 종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세계사에서 이슬람교를 이해하는 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돼가고 있다.“지난 500년 역사에서 오스만제국의 역할을 이해하지 않고 우리의 과거나 현재를 이해할 수 없다. 1492년 오스만제국은 온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오스만제국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들었다.”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쓴 톨스토이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세계적인 대문호다. 폭력을 거부한 평화사상가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교육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학교는 아이들의 실험장이다》는 톨스토이의 교육철학을 담은 ‘교육론’의 전반부를 국내 처음으로 번역한 책이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은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교육이 강압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였다. 이에 맞서 톨스토이는 어떤 폭력이나 강요도 없는 교육을 강조했다.그는 교사와 학생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톨스토이가 설립한 야스나야폴랴나학교는 학생에게 어떤 체벌이나 속박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학생이 등교하지 않거나 교사의 말을 듣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았다. 그래야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개성을 발현할 수 있는 실험장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톨스토이는 교사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호통치고, 돈 거두고, 이따금 숙제를 내주거나 물어보는 교사들만 있어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학생이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야스나야폴랴나학교의 주된 수업 방식은 자유로운 대화였다. 학생들이 자유로운 인격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는 당시 귀족의 전유물이던 음악과 미술을 농민 자녀에게 가르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톨스토이는 교사를 지도·감독하는 사람의 역할도 강조했다.톨스토이는 다양한 학생의 개성과 사정을 고려해 학교에 더 큰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기성세대가 학문으로 여기는 것에 주목하기보다 젊은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톨스토이는 교육을 이렇게 바라봤다. “아이들 스스로 잠재력의 꽃망울을 틔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그의 교육관은 21세기 한국 교육에도 분명한 길을 보여준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선진국 중에서 사회적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는 어디일까. 세계 유력 연구기관 및 여론조사업체들은 대체로 세 국가를 지목한다. 이스라엘 미국 한국이다. 이스라엘은 종교 갈등이, 미국은 인종 갈등이 심각하다. 한국은 인종과 종교, 언어 등 본질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은 없지만, 지역 세대 성별로 나뉘어 격렬하게 싸운다. 이런 싸움을 부추기는 건 항상 정치다.《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는 정치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과 원인을 심층 분석한 책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스타 기자 에즈라 클라인이 썼다.책은 최근 미국에서 심화하고 있는 ‘정치 양극화’를 중심으로 글을 풀었다. 정치 양극화란 건강한 경쟁 대신 증오가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정당들은 지지자들이 상대 당을 한층 더 증오하도록 부추긴다.저자가 정치 양극화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는 건 인간의 ‘뇌 구조’다. 각종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 바깥의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배척하도록 진화해왔다. 전통 사회에서 외부인은 공동체의 재산을 축내거나 질병을 옮기는 등 해악을 끼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이런 본능은 지금도 인간의 뇌에 깊이 박혀 있다. 많은 유권자가 실제 이해관계나 정책을 따지기보다 감정이나 주변 사람 의견에 따라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공격을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끼고, 다른 정당을 사라져야 할 적으로 인식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정치적 의사 결정이 좋아하는 스포츠팀을 응원하듯 비이성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저자는 이 같은 현상이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로 인해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종합적인 뉴스를 제공하는 신문·방송 대신 보고 싶은 뉴스만 볼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성향이 맞는 미디어만 골라 보고, SNS에서 ‘좋아요’ 클릭 등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한다.책은 미국 정치 사례와 다양한 정치·심리학 연구 결과 등을 통해 정치 양극화의 해악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심각한 정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개인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식의 뻔한 해법을 제시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