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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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은 역사학계에서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에 첫발을 디뎠다.

《술탄 셀림》은 이 역사적 발걸음을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 불가능하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지 2년 뒤 오스만제국은 비잔티움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1800년대까지 거의 4세기 동안 온 세상의 정치, 경제, 전쟁의 중심지로 군림했다. 오스만제국이 동쪽과의 교역을 완전히 장악하자 다른 많은 유럽 상인처럼 콜럼버스도 먼 땅과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동쪽 대신 서쪽으로 향했다. 오스만제국이 돌려놓은 방향키는 서구 열강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그 결과 잉글랜드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오스만제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재해석한다.

[책마을] "근대를 연 건 콜럼버스가 아닌 술탄이었다"
“오스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역사학자와 일반 독자들에 의해 일축되거나 무시돼왔다. 그렇지만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은 서양과 동양이 공유하는 역사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여기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오스만제국이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서양의 많은 사람에게는 삼키기 어려운 아주 씁쓸한 알약이다.”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미카일이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오스만제국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사책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사물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인 앨런 미카일은 예일대 역사학과장이다. 2018년 알렉산더폰훔볼트재단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문·사회학자에게 수여하는 안네리제마이어 학술연구상을 받았다. 책은 서구 사회가 ‘낯선 타인’을 배제하면서 세계사에 미친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을 축소했다고 지적한다. “서양인은 무슬림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적이자 테러리스트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이슬람교는 특히 미국에서 ‘거대한 타인’, 어떻게든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문젯거리로 인식한다. 서양 사회에서 무슬림은 일반 대중과 관청이 악마화하는 대상이고, 종종 노골적인 신체 폭력이 가해지는 피해자다.”

서구의 관점에서 쓰인 근대의 역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는 점에서 최근 국내에 출간된 《1000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의 저자 발레리 한센 역시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다.

묵직한 메시지와 800쪽이 넘는 분량의 압박에도 책은 잘 쓰인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오스만제국을 세계적 강국으로 만든 ‘야부즈(yavuz·정복왕)’ 술탄 셀림의 인생을 들려주며 자연스레 오스만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예컨대 오스만제국의 왕궁 하렘은 사치스럽고 성적 쾌락이 넘쳐나는 판타지와 신화의 장소로 여겨진다. 실상은 다르다. 책은 오스만제국 왕자와 기독교인 첩 사이에서 태어난 셀림의 어린 시절을 통해 하렘이 왕위 후계자 후보들의 치열한 생존과 학습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왕자들에게 하렘은 오스만튀르크어(행정 언어), 아랍어(종교학 습득 수단이자 쿠란의 언어), 페르시아어(학문과 시의 언어)를 익히고 궁술, 의학, 사냥, 옷 입는 법 등을 배우는 일종의 학교였다. 셀림이 치른 전투들은 오스만제국의 승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슬람교를 이해하는 건 현재에도 중요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셀림의 무덤을 자주 찾아가곤 한다. 보스포루스해협에 건설된 세 번째 다리에 셀림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가 셀림에 집착하는 건 ‘이슬람을 다시 위대하게, 터키는 그 중심’이라는 선언과 마찬가지다. 셀림에 대해 모른다면 읽어낼 수 없는 내용이다. 2070년이 되면 기독교를 대신해 이슬람교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둔 종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세계사에서 이슬람교를 이해하는 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돼가고 있다.

“지난 500년 역사에서 오스만제국의 역할을 이해하지 않고 우리의 과거나 현재를 이해할 수 없다. 1492년 오스만제국은 온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오스만제국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들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