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레이철 카슨이 펴낸 《침묵의 봄》은 환경 운동의 파급력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다. 이 책에서 카슨은 살충제 DDT가 먹이사슬을 거치면서 계속 농축되기 때문에 사슬의 맨 끝에 있는 인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책은 즉각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대통령까지 나서 관심을 나타냈다. 방송사들은 관련 프로그램을 잇달아 편성했다.

독일 환경 역사학자 요아힘 라트카우가 펴낸 《생태의 시대》는 그 이면에 ‘건강 염려’가 있다고 설명한다. “환경 운동이 거대 권력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해준 배경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커다란 외부 위협이 사라진 산업화 시대에 건강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건 암이었다. DDT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카슨의 묘사는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트카우는 “암을 보는 이런 의식 변화야말로 현대 환경 운동의 뿌리”라고 말한다.

[책마을] 거대권력 된 환경운동, '공포 마케팅'이 키웠다
《생태의 시대》는 이런 식으로 환경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시작은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에 열광하던 낭만주의 시대였다. 한편으론 벌목으로 유럽 전역의 숲이 황폐해지면서 ‘자연 보호’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때였다. 현대적인 의미의 환경 운동은 1970년대에 탄생했다. 1960년대 후반 우주에서 찍은 ‘푸른 별’ 지구 사진이 공개됐고, 1970년에는 ‘지구의 날’이 제정됐다. 베트남 전쟁 중 고엽제 살포, 인구 급증, 핵에너지, 산성비 등에 사람들의 불안은 커졌다.

이런 시기에 출간된 《침묵의 봄》은 환경 운동의 폭발적 성장에 불을 붙였다. 카슨 자신은 종말론적 시나리오나 적대적 태도에 거리를 뒀다. 하지만 이후 환경 운동은 《침묵의 봄》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공포 마케팅’을 적극 받아들였다. 1960년대 TV 보급과 맞물려 미디어를 환경 운동에 이용하는 행태도 이때부터 나타났다. “68 학생운동(권위주의 등 기존 질서에 반발해 프랑스·독일·미국 등에서 일어난 학생운동) 세대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던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소란을 피우면 곧바로 들고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그린피스다. 포경선을 상대로 싸우는 구명보트는 그린피스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그린피스에서 갈라져 나온 로빈우드의 운동가들은 높은 공장 굴뚝에 올라가기도 했다. 책은 “그린피스를 필두로 한 환경 운동은 미디어를 통한 자기 연출에 열을 올렸다”며 “정치인들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등 정작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뒷전으로 내몰렸다”고 설명한다.

독일에서 유달리 심했던 ‘반핵 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1950년대만 해도 독일인들은 원자력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인근 지역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하자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 원자력의 장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말하던 전문가들도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논의의 주도권이 반대 세력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반면 옆나라 프랑스에선 원전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인구 밀도가 낮았고, 부족한 석탄을 대체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68 운동 이후 등장한 새로운 좌파가 자연과 환경 보호를 ‘진보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도 원전 반대에 힘을 보탰다. 원자력은 대자본, 정부 관료주의, 학문적 권위와 연결돼 있어 이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좌파의 가세로 환경 보호는 갈등을 노리는 운동이 됐다. 공격적인 대규모 시위는 원자력발전소를 목표로 삼아 활활 불타올랐다.”

저자는 환경 운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이란 깃발 아래 너무 다양한 가치와 목표를 가진 환경 운동가들이 모이다 보니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환경 운동가 중에도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과 댐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원전을 건설하는 게 낫다는 사람이 공존한다. 숲 보호, 동물 보호, 해양 보호 등 관심 주제에 따라 생각이 제각기 다르다. 저자는 이들이 “자연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스스로 가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책은 1000쪽이 넘는다.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 운동의 역사를 반영하듯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다만 분량의 압박만 잘 헤쳐 나가면 환경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만날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