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창궐한 세계…구원자로 나선 고양이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쥐 떼의 공격을 피해 고층 빌딩에 숨어 산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이는 바로 프랑스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1)다. 그가 신간 《행성》(열린책들·전 2권·사진)으로 돌아왔다. 2018년 국내 출간한 《고양이》와 2021년 《문명》에 이어 ‘고양이 3부작’을 구성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말하는 고양이 ‘바스테트’와 동료들이 쥐들이 없는 세상을 찾아 미국 뉴욕에 도착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쥐들에게 쫓기던 바스테트 일행은 맨해튼 고층 빌딩에 숨어 사는 인간들을 발견한다. 약 4만 명의 인간은 200여 개 빌딩에 살고 있었다. 프리덤 타워에는 102개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쥐를 없애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강경파가 대두하며 갈등이 심해진다. 바스테트는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에게 무시당한다.

바스테트의 눈에 비친 인간은 여전히 자기들끼리도 소통할 줄 모르는 존재다. “인간들 입에서 나오는 건 소통의 소리가 아니라 소음이야.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말할 뿐이야.” 책은 민주주의와 이민자 문제, 인종 갈등, 성평등, 광신주의 등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 사회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20년 10월 출간됐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던 때다. 그래서인지 전작들에 비해 디스토피아적 성격이 강하다.

작가는 바스테트의 입을 빌려 “우리가 지금이 삶을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쥐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물이 분명히 우리를 공격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인간이 조연으로 밀려나고 동물이 주연을 차지한 이 소설을 통해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