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 창업자 "쌀·죽순 등 한국인 먹거리서 아이디어 얻었죠"
“한국 전통 식단에 올라가는 식물성 원료를 활용해 화장품을 만드니 미국인들이 ‘건강한 제품’이라며 먼저 찾더라고요.”

이하나 멜릭서 창업자 겸 대표(CEO·사진)는 9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자와 만나 “지난 1월 미국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매출의 50%를 돌파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멜릭서는 이 대표가 2018년 창업한 화장품 업체다. 주력 제품은 립밤(입술보호제)부터 세럼(짙은 농도의 에센스), 페이셜크림(얼굴에 바르는 크림)까지 다양하다.

멜릭서 제품의 공통점은 쌀, 녹차, 죽순 등 한국인 식생활과 밀접한 식물성 원료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국내 최초로 ‘비건(채식주의) 화장품 전문 업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업한 영향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동물성 원료가 안 들어간 제품’을 찾는 고객을 접하며 비건 화장품 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식물성 원료의 아이디어는 한국의 전통 밥상에서 찾는다고 한다. 이 대표는 “한국의 채식 식단과 선조들이 썼던 피부관리법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한국의 철학과 한국인의 경험을 제품에 녹였다”고 강조했다.

멜릭서는 올초 샌프란시스코로 본사를 옮기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께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아파트를 빌려 ‘전진기지’를 마련하고, 직원 두 명과 함께 합숙에 들어갈 정도로 미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였다. 그는 “미국 시장에서 시작을 잘 하려면 처음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아침 8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모든 것을 함께하며 팀워크를 다졌다”고 설명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한국법인이 멜릭서를 ‘톱10 셀러’로 선정한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이 대표의 ‘적극성’과 ‘실행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멜릭서가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미대 재학 중 샌프란시스코의 한 화장품 스타트업에서 인턴 자리를 얻기 위해 “미국행 항공료도 자비로 부담하겠다”며 채용담당자를 설득했다. 비건 제품에 대한 확신이 서자 4년간 승승장구했던 회사도 미련 없이 그만뒀다. 비건 화장품에 대한 개념이 없던 2018년 창업 초기엔 전국 30곳 넘는 공장을 찾아다니며 비건 제품 생산이 가능한 곳을 물색했다.

이 대표의 첫 번째 목표는 미국에서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젊은 CEO답게 아마존,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한 디지털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더 큰 꿈은 ‘아시아의 LVMH(세계적인 종합 패션 브랜드)’로 우뚝 서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론 멜릭서의 사업 영역을 화장품에서 패션 등 다른 뷰티 영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창업과 경영은 힘들지만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도전하는 게 즐겁다”며 “LVMH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멜릭서를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