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발등에 올리고 조금씩 움직이며 춤을 추니 아이도 이내 적응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딸아이를 발등에 올리고 조금씩 움직이며 춤을 추니 아이도 이내 적응하고 즐거워했습니다.
2021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마냥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먹고 자는 게 다가 아니고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을 하려면 '놀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를 위해 체력이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가 나서야겠다 싶었습니다. 아빠는 처음이라 정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자주]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글을 봤습니다. 미래 아이디어로 배터리 교체형 스마트폰 아이디어를 제출했다는 글이었습니다. 근래에는 배터리 내장형 스마트폰만 출시되는 탓에 요즘 아이들은 배터리 교체형 스마트폰을 본 적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댓글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스마트폰의 통화 아이콘이 왜 수화기 모양인지 모르는 10대가 많다는 반응도 있더군요. '내가 늙은건가. 나도 나름 MZ세대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11개월인 딸아이가 크면 전화의 형태도 더 많이 달라지겠죠. 그래도 과거의 모습을 대강은 알았으면 싶어 종이컵 전화기를 만들어 봤습니다. 종이컵 전화기의 모습은 1900년대 초반에 보급됐던 공전식 전화기와 닮았으니 말입니다. 막무가내 아니냐구요? 11개월짜리 딸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일단 아이디어를 얻고 뭐라도 시도해 재미있으면 그만이죠.

종이컵으로 한 차례 만들었는데, 아이가 어리다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종이컵 전화기를 쥐어주자마자 짓뭉개고 이빨로 물어뜯더군요. 갓 만든 장난감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깨물어도 망가지지 않도록 플라스틱 컵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컵 밑에 구멍을 내고 실만 연결하면 되니 하나 더 만드는 건 일도 아니죠.
플라스틱 컵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했는지 잠시 집중하던 아이가 이내 자리를 피했습니다.
플라스틱 컵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했는지 잠시 집중하던 아이가 이내 자리를 피했습니다.
헌데 제 막무가내가 통하는 것은 여기까지였습니다. 플라스틱 컵을 귀에 대주고 말을 하니 이상했는지 딸아이가 도망가더군요. 컵을 통해 들리는 소리도, 컵에서 느껴지는 진동도 모두 낯설고 어색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욕심만 앞서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구나 싶더군요. 아직 장난감이 어려울 나이이긴 하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즉흥적으로 만든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아이를 안아줬습니다. 아이도 제 두 발로 서서 안기더군요. 아직 두 발로 걷지는 못하지만 벽이나 소파를 잡으면 옆으로 걷곤 합니다. 거기서 다시 막무가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아빠 발 등에 올라 춤을 추게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지요.

발 등에 오른 딸아이와 춤을 추는 것은 많은 아빠들의 로망일겁니다. 제대로 춤을 추려면 아이가 더 커야 하지만, 잡을 곳만 있다면 곧잘 서는 만큼 나름의 흉내는 내겠다 싶더군요. 다양한 방법으로 서고 걷는 움직임을 시도하면서 아이의 근육 조절 능력도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발 등에 올라선 딸아이는 제 바지를 꼭 붙잡고 즐거워했습니다.
발 등에 올라선 딸아이는 제 바지를 꼭 붙잡고 즐거워했습니다.
곧바로 아이를 제 발 등에 올려봤습니다. 딸아이는 재미있는 듯 제 바지를 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웃어보였습니다. 헌데 그 자세에서 제가 조금씩 움직이니 중심을 잡는 데 집중하는 듯 표정이 진지해졌습니다. 아이가 바지를 잡고 있어 팔꿈치를 살짝 받쳐줬는데, 처음에는 중심을 놓쳐 발 등 밖으로 내려가더니 이내 요령이 생겼는지 곧잘 버티더군요.

앞뒤로, 양 옆으로 움직이는 제 몸에 맞춰 딸아이도 다리를 벌리고 팔에 힘을 주면서 잘 따라왔습니다. 나중엔 여유가 생겼는지 이곳저곳 쳐다보기도 하네요. 이 동작을 과연 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민망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놀이를 끝냈는데 아내가 에어캡 한 뭉치를 들고 왔습니다. "아이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데, 뽁뽁이(에어캡) 위에서 걸음마 연습을 시켜보자"면서 말입니다. 에어캡을 밟으며 들리는 소리와 촉감은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도 될 것 같았습니다.
바닥의 느낌이 이상했는지 아이가 걸음마를 하면서도 자꾸 바닥을 보더군요.
바닥의 느낌이 이상했는지 아이가 걸음마를 하면서도 자꾸 바닥을 보더군요.
다음날 저녁 바닥에 에어캡을 깔고 걸음마를 시도했습니다. 손을 잡아주니 딸아이는 에어캡 위에서도 잘 걸었습니다. 다만 바닥 느낌이 이상한 지 자꾸만 시선이 바닥으로 가네요. 에어캡 위로 걷기를 두 차례 반복하니 다음부터는 손을 놓고 주저앉아 "아! 아!" 소리를 내며 바닥을 조막손으로 팡팡 내리칩니다. 바닥이 이상하다는 항의려나요.

그 모습이 귀여워 마주 앉았는데, 손가락으로 에어캡을 하나씩 눌러 터뜨리니 아이 눈이 동그래집니다. 에어캡을 터뜨리는 게 이상했는지 저에게 기어와 안기더군요. 그러고는 제 어깨를 팡팡 치고 "아빠! 아빠!"하며 다른 곳으로 가자는 눈치를 주네요.

그대로 아이를 안고 덩실덩실 흔들며 안방으로, 작은방으로 걸어다녔더니 꺄르르 웃음이 터집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마냥 인형 같았는데, 어느새 제 뜻을 전할 정도로 컸을까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입맛이 씁쓸해졌습니다. 딸아이의 돌이 지나 날이 따듯해지면 코로나19가 수그러들어 야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