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강의 기적' 밑그림, 뮌헨서 그려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취임 1년 후인 1964년 12월 독일 방문길에 올랐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은 순방 일정 중 뮌헨을 방문해 한국인 유학생들을 접견하고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한 사람이 서류뭉치를 박 대통령에게 전했다. 한국 철강산업 청사진을 담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었다. 한국 산업화의 기반이 된 종합제철산업을 시작하게 된 단초였다.

당시 서류를 전달한 사람은 독일 철강회사 데마크에서 일하던 김재관 박사였다.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은 철강, 조선, 자동차 등 한국의 산업 육성의 밑그림을 그리고, 선진화로 가는 국가표준을 만들어낸 김 박사의 평전이다.

그는 1950년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독일에서 유학하고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될 때 제1호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했다. 그는 ‘경제의 쌀’이라 불리던 철강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당시 종합제철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는 연구원들을 지휘하며 포항종합제철(POSCO)의 마스터플랜을 설계하고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철강산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세계은행(IBRD) 보고서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당시 최후진국 한국에 없던 수요 창출을 제안했다. 조선, 특수강, 자동차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중화학공업 육성을 주장했다. 그는 대일청구권자금 협상에서 이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자금을 유치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1973년 초대 상공부 중공업차관보에 임명돼 고유 모델을 통한 자동차산업 육성안을 제시하고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이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으로서 유일하게 국제적 규모의 자동차 제조 산업을 갖추게 되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과학기술과 국가 선진화의 뼈대가 되는 국가표준의 기반도 마련했다. 1975년 한국표준연구소 설립을 주도해 5년여간 초대 소장으로 일하며 측정·개발·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김 박사의 삶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데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