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담론 실종' 한국정치 어디로 가야하나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 역시 시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독점했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과 다를 바 없었다.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였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자기들만의 정의를 내세웠다. 현재 진행 중인 대선(大選)에선 미래 담론이 실종됐다. 양당 후보가 상대의 감옥행을 예고하기까지 한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와 강원택 서울대 교수 등 9명의 학자가 함께 쓴 《시민정치의 시대》는 이런 문제점에서 시작한다. 민주화 이후 35년 동안 새로운 정권마다 독주·독선·독점 등 ‘삼독(三獨)’을 반복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문제의 근원을 ‘단절적 개혁’에서 찾는다. 단절적 개혁이란 기존 정권의 노선과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정책을 구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5년 후 다음 정권에 의해 다시 폐기된다. 기존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새 정권의 정당성을 쌓는 가장 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 정치는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 구미에 맞춰 새롭지만 생뚱맞은 메뉴를 선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유별난 팬덤 정치, 캠프 인사가 휘두르는 독선 정치, 치고 빠지는 무책임 정치는 이런 폐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해법은 연속성의 정치, 관용의 정치다. “독점 정치의 폐단을 35년이나 앓았다면 이제는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전 정권의 정당성 인정하기, 전 정권의 선정을 이을 수 있다는 관용의 정치가 필요하다.”

또 저자들은 ‘대권’ 개념을 폐기하고 ‘시민정치’를 새 경로로 설정하자고 제안한다. 35년 민주정치는 일종의 대리정치였다. 대리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겼는데, 이 운전기사가 승객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차를 운전했다. 시민권, 시민참여, 시민책무라는 세 바퀴로 작동하는 시민정치를 통해 족쇄 풀린 ‘리바이어던’을 제어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