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호랑이 모양의 가마덮개.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호랑이 모양의 가마덮개.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임인년(壬寅年)은 검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십이지(十二支)의 세 번째 동물로 방향으로는 동북동, 시간으로는 오전 3~5시, 달로는 음력 1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호랑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에 쓰이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로 꼽힌다. 한반도 지도를 통상 호랑이 형상에 비유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신화에는 곰이 쑥과 마늘만 먹어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동굴을 뛰쳐나갔다고 돼 있다. 하지만 곰은 삼국유사 이후 관련 설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반면 호랑이는 꾸준히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호랑이 관련 기록만 해도 650여 회에 달한다. 1752년(영조 28년) 경복궁 후원에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다.

국가대표 마스코트…사악한 기운 물리치는 '백수의 왕'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호랑이가 많기로 유명해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다. 호환(虎患)에 시달리던 조상들은 두려움의 대상이던 호랑이를 산신령이나 산군자(山君子)라고 부르며 신격화했다. 조선 초에는 왕이 호랑이 머리를 놓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선비들은 호랑이의 용맹과 지혜, 늠름한 기품에 자주 찬사를 보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착하고 성스럽고 문무를 겸비했다.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지혜롭고 인자하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정초에는 궁궐부터 민가까지 나쁜 귀신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였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가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색시의 가마엔 호피나 호피 그림이 그려진 담요를 장식해 사악한 기운을 물리쳤고, 어린아이의 머리쓰개에도 호랑이 무늬를 넣었다. 호랑이와 매가 함께 있으면 물·바람·불에 의한 세 가지 재난을 면할 수 있다고 여겨 삼재를 막기 위한 부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호랑이가 그려진 가장 오래된 그림은 국보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에는 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수(神獸)로 백호가 나타나는데, 청룡 주작 현무와 달리 유일한 실존 동물이다. 신라에서는 십이지를 형상화한 흙인형 중 하나로 호랑이가 등장하고, 조선 왕릉에는 돌로 된 호랑이 상인 석호(石虎)가 있다.

올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지방선거가 있는 중요한 해다. 공자가 남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