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신년음악회를 개최하는 모습. 사진=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캡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신년음악회를 개최하는 모습. 사진=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캡처
1941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1월1일이면 개최되는 연례 축제와 같은 음악회가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인이 활기차면서도 아름다운 선율로 새해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손꼽아 기다린다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회라는 명성답게 새해 첫날 무려 90여개국에 대대적으로 중계됩니다. 1회 평균 시청 인구수만 5000만명에 달합니다. 180년 전통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빈 필하모닉에 대한 대중의 애정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록이죠.

특히 2022년 신년음악회가 지니는 의미는 더욱더 뜻깊습니다. 무려 2년 만에 관객을 직접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무관중으로 음악회를 진행했습니다. 예고 없이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였죠. 물론 올해도 방역에 따른 조치는 있습니다. 관객 인원이 1000명까지로 제한되고, 공연장 입장 시 백신을 접종했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됐다는 증명서,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결과지를 제시해야 하죠. 약간의 불편함은 남아있으나, 새해의 첫날 미소 짓는 관객들과 함께하는 연주가 펼쳐진다는 것은 적막이 감돌던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 생동감을 부여할 것입니다.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2014년에 이어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는 이번 2022년 신년음악회는 왈츠·폴카·행진곡 중심의 레퍼토리로 구성됩니다. 상세 레퍼토리는 매년 약간씩 달라지긴 합니다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 2개의 앙코르 작품이 존재합니다.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은 물론 내년, 10년 혹은 30년 뒤에도 1월 1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신년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킬 음악회 속 대표 앙코르 작품에 대해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전쟁 속 국민의 희열과 좌절감…슈트라우스 父子 손에서 작품이 되다

'라데츠키 행진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오랜 기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에서 줄곧 연주되는 곡으로 자리할 수 있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Johann Baptist Strauss, 1804~1849)와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Baptist Strauss, 1825~1899)의 위상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사진=한경DB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사진=한경DB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은 부자 관계입니다. 슈트라우스 1세가 즐겁고 리듬감 넘치는 음악으로 농민의 춤에 뿌리를 둔 왈츠의 대중화를 이뤄냈다면, 그의 아들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를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 장르로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린 인물이죠.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리게 되는 그림이 4분의 3박자 음악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된 데에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공헌이 상당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단순히 작곡가에 대한 애정만이 위 작품에 대한 지지를 이끈 배경은 아닙니다. 작품의 탄생 뒤 오스트리아인들의 희열과 기쁨, 슬픔과 상실감이 담겨있다는 점은 어떠한 걸작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요소죠. 경쾌한 리듬과 풍부한 화음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라데츠키 행진곡'과 관악기와 현악기의 우아함을 극대화해 청중이 마치 궁전을 떠도는 듯한 착각을 일게 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피로 물들어진 전쟁의 산물이란 것을 인지한다면 승리와 패배 속 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작품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라데츠키 행진곡'은 슈트라우스 1세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육군 원수인 요제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를 위해 작곡하고 헌정한 작품입니다. 더 자세히는 라데츠키가 이끈 오스트리아 제국군이 1848년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고 개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죠. 그해 8월에 초연됐는데 당시 승리의 기쁨에 취한 오스트리아인들이 연속 3번의 앙코르를 외치며 모두 일어나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는 일화에서 지금의 관중 박수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늠름한 장군의 모습을 표현하는 금관악기의 풍부한 음량과 흥겨운 선율로 지금까지도 빈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기념비적인 곡이지만, 역사의 아픔이 큰 이탈리아에선 적국의 음악으로 금기시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2022년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다니엘 바렌보임(왼쪽)이 2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2022년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다니엘 바렌보임(왼쪽)이 2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쟁에서 승리의 환희가 있다면 당연히 패배의 고통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떠한 폭력과 총성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죠.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패전 이후 국민의 좌절감과 상실감을 덜어주기 위해 탄생한 작품입니다. 1866년 오스트리아가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프로이센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뒤, 사회 전반에 흐르는 우울함을 달래고자 빈 남성 합창단 연합이 슈트라우스에 작곡 의뢰를 한 곡이죠.

본래는 시인 게르네르트의 시를 토대로 한 남성 합창곡으로 작곡됐지만, 이후 합창이 빠진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편곡된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서 후자의 형식으로 연주되고 있죠. 공허함과 절망감 등 부정적 감정을 없애고 쾌활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이 곡은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국민의 엄청난 애정을 받고 있습니다.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 15분(현지시간)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전 세계인들과 희망차고도 밝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황홀한 무대를 선사하는 수십명의 연주자들을 머리에 그리면서 신년음악회 앙코르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의 치유…'바라던' 새해의 시작을 알리다

'짝짝짝'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는 변치 않는 전통이 있습니다. 레파토리에 적힌 작품의 연주가 모두 끝나고 첫 앙코르곡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전주가 시작되면 관객들이 손뼉을 쳐서 연주가 중단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객들이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신년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을 건네는 유쾌한 방식입니다.

지휘자가 짧은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 손을 올리면 비로소 작품의 서주가 시작됩니다. 현악기가 아주 작은 소리로 트레몰로 기법을 연주하며 평온한 분위기를 형성하면, 호른이 웅장한 솔로 연주로 작품의 포문을 엽니다. 바순, 플루트, 오보에 등 관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두터우면서도 우아한 선율의 무게감을 전달하고 현악기가 주선율을 뒷받침하며 음량을 키워가면 이내 타악기까지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로 진행된 2014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모습. 사진=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캡처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로 진행된 2014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모습. 사진=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캡처
그러면 비로소 D장조의 제1왈츠가 시작됩니다. 제1왈츠에선 호른은 물론 현악기까지 함께 주선율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서주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 빈 왈츠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박자 표현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특징도 있죠. 한 마디 속 세 박자에서 첫 박자가 짧고 둘째 박자가 조금 길어서 청중으로서는 살짝 넘어지는 듯한 박자로 들리는 부분이 바로 빈 왈츠 고유의 박자입니다.

곡이 진행될수록 소리가 커지고 템포가 빨라지면서 위엄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면, 곧이어 관악기가 스타카토 기법으로 가벼운 분위기로 반전을 이루면서 제2왈츠의 출발을 알립니다. 제2왈츠에서는 하프가 등장하면서 꿈을 꾸는 듯 편안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하는 G장조의 제3왈츠에서는 특색 있는 선율이 귀를 사로잡습니다. 관악기, 현악기 할 것 없이 상하 진행이 어우러지면서 화려한 궁정을 표현하는 듯 밝고도 우아한 선율이 공간 전체를 채우죠.

이후 관악기와 타악기가 아주 큰 소리로 세 개의 음을 끌면 그전과 완전 다른 분위기의 F장조의 제4왈츠가 시작됩니다. 작고도 우아한 선율이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는데, 크레센도 셈여림과 악센트 기법이 어우러지면서 음표가 서로를 밀고 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죠. 이후 타악기의 등장을 기점으로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가 커지면서 축제의 한가운데 놓은 듯한 황홀하면서도 웅장한 선율이 펼쳐집니다.

그리곤 네 개의 음이 큰 소리로 연주되면 이내 A장조의 제5왈츠가 등장합니다. 아주 잔잔한 선율이 흐른 뒤, 호른과 트럼펫이 경적과 같은 소리로 분위기 반전을 알리면 타악기가 아주 큰 소리로 첫 음을 때리면서 3박자 리듬을 강조합니다. 순차적으로 상행하는 멜로디가 관악, 현악에서 함께 진행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작품 전체의 클라이맥스로 꼽힙니다. 아주 강한 왈츠 리듬과 빠르게 오르는 선율, 강한 셈여림 속 경쾌하고 화려한 음향은 현재를 망각할 정도로 황홀한 느낌을 선사하죠.

후주에서는 서주에 나왔던 호른의 주선율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번엔 플루트와 솔로를 주고받으면서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행복을 부르듯 잔잔하면서도 평화로운 선율을 연주합니다. 조용하고도 천연한 분위기에 모두가 방심하는 순간,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곡의 템포가 매우 빠르게 몰아치면서 가장 찬란하고도 호화로운 선율에 다다릅니다. 이때 전체 악기의 소리가 한곳에 모이는 것과 동시에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로 진행된 2014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모습. 사진=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캡처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로 진행된 2014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모습. 사진=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캡처
이후 박수 소리가 끝나지 않을 때 등장하는 곡이 바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입니다. 이 시간은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교감하며 만들어내는 순간, 그 자체일 겁니다. 타악기가 곡의 출발을 여는 것과 동시에 관객은 왈츠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기 시작합니다.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잠시 박수를 멈췄다가 이어가기도, 소리를 줄였다가 키우기도 합니다. 경쾌한 2박 리듬에 복잡하지 않은 선율이 반복되는 특성 탓에 가능한 현상이기도 하죠. 이렇게 청중과 연주자가 한마음이 되어 마지막 음표까지 연주를 끝내면 비로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막을 내립니다.

2022년 1월 1일. 지난해와 달리 올해 작품의 마지막 음표 뒤 청중의 박수 소리가 들려올 것이란 점은 분명히 1년간의 차이를 체감토록 할 것입니다. 지난해 지휘자의 등장에도, 수십명의 연주자 호흡에도 차가운 정적이 흘렀던 일을 알지 못한다는 듯 환한 웃음으로 무대를 바라볼 관객의 존재는 올해 공간의 공기마저 변화토록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쩌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올해는 그 누구도 아프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마음 벅찬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