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주년 기념음반 ‘라이트 앤 섀도우’를 발표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 /엔돌프뮤직 제공
데뷔 25주년 기념음반 ‘라이트 앤 섀도우’를 발표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 /엔돌프뮤직 제공
재일동포 2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61)이 데뷔 25주년을 기념한 음반 ‘라이트 앤 섀도우(Light&Shadow)’를 발표했다. 지난달 30일 발매한 이 음반은 ‘라이트(빛)’와 ‘섀도우(그림자)’ 두 장으로 구성돼 있다. 빛 음반에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도쿄와 서울, 제주에서 펼친 공연을 녹음한 라이브 음원 14곡을 실었다. 그림자 음반에는 그가 게임, 영화 등을 위해 쓴 음원 9곡과 두 가지 버전으로 녹음한 신곡 ‘메테오’ 등 11곡을 담았다. 음반 발매를 기념해 8일 서울 소공동의 한 음식점에서 양방언을 만났다.

“빛 음반에 실린 곡들은 제가 했던 공연에서 최고로 꼽히는 음원들입니다. 그림자 음반에는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지 않으면 찾아 듣지 않게 돼 그대로 묻히는 음원들이 아까워서 한데 모았고요.”

그는 당초 2016년 ‘The Best’ 이후 5년 만에 내는 이번 음반에 신곡만을 담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계획을 급히 바꿨다. 하늘길이 막히자 함께 작업하던 해외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수 없어서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기존 곡을 다시 손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4년간 펼친 공연 영상을 다시 감상하며 곡을 골랐다. 2018년 이후 쓴 음원도 다듬었다. 3700만 장이 팔린 일본 만화 원작의 게임 ‘일곱개의 대죄’ 배경음악(BGM)과 2021 도쿄패럴림픽을 다룬 다큐 ‘Who i am’의 영화음악(OST),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선보인 ‘디지털 실감 영상관’의 배경음악 등 9곡을 편곡해 다시 녹음했다. 그는 “팬들이 음반을 들을 때 서곡부터 앙코르까지 실제 공연 하나를 감상하듯 곡 순서를 배열했다”며 “내년에는 꼭 신곡 음반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방언은 국경과 장르를 넘어선 음악가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차별을 우려한 부모님의 권유로 니혼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사가 됐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원래 꿈꾸던 음악가로 진로를 바꿨다. 피아니스트 겸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영화 ‘썬더볼트’와 홍콩 드라마 ‘정무문’의 OST를 제작했다. 1996년 일본에서 첫 음반 ‘꿈의 문(The gate of dreams)’을 발표하면서 데뷔했고 록,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적인 음악을 선보여 실력을 인정받았다.

일본에서 인기 작곡가로 입지를 다진 그는 199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부모의 고국에 돌아왔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가를 쓰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드라마 ‘상도’, 온라인 게임 ‘아이온’ 등 다양한 소재로 곡을 쓰며 성가를 높였다. 2013년 대통령 취임식 배경음악 ‘아리랑 판타지’를 썼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립 7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연주자로 무대에 올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음악감독도 맡았다.

그는 일본 출신이라는 배경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고도 했다. 올림픽, 음악축제 등을 기획할 때 현장에서 ‘일본인이 왜 여기 있어’라는 뒷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는 것.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그림자 없는 인생은 없는 법이죠.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음악을 배운 뒤 고국에 돌아와 연주활동을 펼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선구자는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거라고 다짐했던 이유죠.”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