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나우 '허보리 개인전'…제주서 온 꽃이 들려주는 노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꽃이 피었다. 붓으로 화폭에 꽃을 피워내는 허보리 작가(40)의 그림 ‘자화상_셀그’(사진)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허 작가의 개인전 ‘Melody of earth’가 열리고 있다. 유화와 수채, 드로잉 등 그의 근작 40여 점을 펼친 전시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딸인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화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사물이 등장하는 그림을 통해 사람 사는 모습을 재치 있게 드러내는 게 허 작가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가 최근 제주에서 1년간 살며 본 꽃과 풀을 경쾌한 붓 터치로 표현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허 작가는 “식물이 물을 빨아올리고 뜨거운 태양을 따르고 비바람을 견뎌내는 모습에서 부지런히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고 번성하는 식물들의 모습에서 감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전시장에 가득한 꽃 그림들에서는 원초적인 생명력과 활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전시장에서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60㎝에 이르는 대작 ‘장미극장’도 눈에 띈다. 꽃을 비롯해 계란과 바나나, 부엉이와 선풍기 등 다양한 동식물과 사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 군상을 표현했다. 부드러운 색채와 대비되는 과감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는 평론을 통해 “허 작가의 그림에서는 마치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삽화와도 같은 압축적이고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며 “태어나고 사라지며 순환하는 동양의 자연관을 리듬감 있는 선으로 구현한 작품들”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