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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어느 날 밤, 넷플릭스를 창업하고 우편으로 영화 DVD를 대여하는 사업을 하던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가 DVD로 가득한 창고에서 얘기를 나눴다. “왜 이 많은 걸 다 여기에 보관해야 하지?” 그들은 고객이 DVD를 갖고 있게 하자고 했다. 과감히 연체료를 없앴다. 대신 월정액제를 도입했다. 이전 영화를 반납하기만 하면 무제한으로 새로운 DVD를 받아볼 수 있었다.

단순한 아이디어다. 하지만 산업을 통째로 바꾼 혁신이었다. 고객은 더 이상 연체료를 걱정하거나, 밀린 영화를 보려고 밤늦게 깨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넷플릭스는 쏠쏠한 연체료를 포기한 대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매출을 올렸다. 넷플릭스를 깔보던 미국 최대 영화 대여점 블록버스터는 2004년 뒤늦게 연체료 폐지에 나섰지만, 이미 넷플릭스로 기울어진 흐름을 뒤바꿀 순 없었다.

[책마을] 맥도날드 왕국 차지한 레이 크록의 '결정적 한방'
《삼국지》를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것처럼, 기업들의 흥망성쇠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비즈니스 워》는 이런 기업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한 달 청취자가 4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인기 팟캐스트 ‘비즈니스 워’에서 방송됐던 내용 중 27개의 이야기를 엄선했다. 진행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브라운은 《손자병법》에 실린 전략을 차용해 비즈니스 전쟁의 결정적 순간을 분석한다.

“손자는 끝없이 무자비한 분쟁이 벌어진 시대인 전국시대에 살았다. 지난 세기의 비즈니스 업계와 이보다 더 비슷한 환경이 있을까? 손자는 인내심을 기르는 일에 대해 쓰든, 미리 계획하는 일에 대해 쓰든, 또는 적의 약점을 활용하는 일에 대해 쓰든 평균적으로 맥킨지 컨설턴트나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다. 레이 크록과 맥도날드 형제의 관계도 그와 같았다. 크록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밀크셰이크용 믹서를 파는 일을 했다. 그러다 방문한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에서 혁신을 경험했다. 그는 모방하는 대신 맥도날드 가맹점을 차리기로 했다. 맥도날드의 감자튀김을 성공적으로 모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맥도날드 형제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으로 가맹점을 운영하게 된 크록은 공격적으로 가맹점을 늘려갔다. 맥도날드 가맹점 중 운영과 품질 수준이 가장 높았다. 그러는 사이 크록과 맥도날드 형제의 관계는 악화했다. 맥도날드 형제는 너무 보수적이었다. 자신들의 허락 없이는 조금이라도 방식을 바꿀 수 없게 했다. 한편으론 다른 가맹점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 수준이 떨어지는 가맹점 때문에 자신의 가맹점까지 피해를 볼까 걱정한 크록은 아예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회사를 사들였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도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2008년 미국 힙합 가수 닥터 드레는 멋진 헤드폰을 만들기로 하고 오디오 기기 업체 몬스터 케이블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협상의 우위는 몬스터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닥터 드레는 음악계에선 거물이었지만 소비자용 전자 기기에 대해선 잘 몰랐다. 게다가 닥터 드레는 다른 업체와 제품을 만들려다 품질에 실망하고, 두 번째로 몬스터 케이블에 찾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닥터 드레가 계약을 맺는 데에는 누구보다 능숙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몬스터는 계약을 맺기도 전에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협상을 맡은 이는 케빈 리. 최고경영자(CEO)의 아들이었다. 성과를 인정받으려고 아버지 몰래 성급히 벌인 일이었다. 수세에 몰린 케빈 리는 불리한 조항으로 계약을 맺었다. 비츠 헤드폰이 출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닥터 드레는 몬스터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비츠는 2014년 애플에 32억달러에 팔렸다.

이 밖에도 책은 자동차의 대중화를 연 헨리 포드, 성인 여성을 모델로 한 인형이 금기시될 때 바비 인형을 출시해 대히트한 마텔의 루스 핸들러, 저렴한 비용으로 인슐린을 개발해 저개발국으로 시장을 확장한 바이오콘, 암벽 등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양심적인 회사를 모토로 삼은 파타고니아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승리한 기업의 공통 요소를 뽑아 ‘9가지 승리 법칙’을 제시한다. 분량 대부분을 기업 이야기가 채운다. 그게 오히려 장점이다. 좋은 사례는 괜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독자 스스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