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음악감독 정재일
'오징어 게임' 음악감독 정재일
456억을 얻기 위해 극한의 게임에 목숨을 내건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어릴 때 즐겨 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설탕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 추억의 게임들은 이 작품에서 일순간 절박한 생존 대결로 바뀐다.

죽음이 예고될 때면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때 정적을 깨고 들어오는 거친 소고와 리코더 소리. 힘차게 내리꽂는 연주가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듯 애달프다. 긴장과 고요함을 뚫고 나온 이 음악은 자연스럽게 게임과 연결된다. 시각에 더해 청각까지 단숨에 사로잡는 강력한 무기다.

"'오징어 게임'의 또 다른 매력은 잔인한 게임, 절망적인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아이러니를 극대화한 미술과 음악에 있다", "영리한 플롯이 화려한 세트, 의상, 훌륭한 음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작품의 듣는 맛까지 살리는 OST(Original Sound Track)에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리코더, 소고를 내세운 음악 외에도 '장학퀴즈'의 시그널 송으로 친숙한 '하이든의 트럼펫 콘체르토'를 비롯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재즈곡 '플라이 투 더 문'까지 다채롭고 과감한 시도가 '오징어 게임'의 극적 요소를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정재일 음악감독의 손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황동혁 감독은 그에 대해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래서 천재라고 하는구나"라고 극찬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에서 첫 스코어(특정 작품만을 위해 제작된, 가창 없는 연주곡) OST를 발매하기도 했다.

다채롭고 입체적인 구성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로는 단연 정재일 음악감독의 한계 없는 장르적 강점이 손꼽힌다.

1999년 프로젝트 그룹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한 정재일 음악감독은 이후 작곡가, 연주가, 가수 등 다양하게 활동해왔다. 그간의 작업물만 봐도 국악, 록, 재즈, 클래식까지 넓고 깊다. 이소라, 윤상, 박효신, 김동률, 아이유, 이적 등 정상급 뮤지션의 음반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그의 활동 범위는 대중음악을 넘어 연극, 뮤지컬, 무용까지 각종 공연 예술 영역으로 확장됐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열린 마음, 음악에 대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등은 그를 '창작자들이 먼저 찾는 음악감독'으로 만들었다. 일찍이 이름 앞에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앞서 정재일 음악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도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가 작업한 '소주 한 잔(A Glass of Soju)'은 아카데미 주제가상 부문의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종 후보로 지명되는 것은 불발됐지만 의미 있는 성과였다. '기생충' 오리지널 스코어로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와 '청룡영화상' 음악상 후보, '부일영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에 앞서 히트를 쳤던 넷플릭스 'D.P'도 OST가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D.P'의 음악감독은 DJ 겸 음악 프로듀서로 유명한 프라이머리가 맡았다. 'D.P' 오프닝에서 흘러나오는 케빈오 가창의 '크레이지(Crazy)'는 시청자들로부터 "유일하게 오프닝을 건너 뛰지 않은 작품"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어둡고 답답한 현실, 그 안에 놓인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점이 인상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OST 시장은 대중성을 무기로 성장해왔다. 실제로 가온차트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의 주간 디지털차트 상위 400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오래 차트에 랭크된 국내 곡을 집계한 결과, 드라마 '도깨비'의 OST인 에일리 가창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가 음원 강자 아이유, 박효신, 엠씨더맥스의 뒤를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1조 원 규모로 커진 웹툰 시장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아 대중성 측면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까지도 OST 가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친숙함을 강점으로 음원 시장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 가운데 대중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예술적 측면에서의 가치 또한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작품의 분위기를 고조하는 부가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흐름에 포인트를 주는 등 전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한 역할로서의 오리지널 사운드가 감상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직접적인 대사가 주는 '말맛' 외에 미술, 음악 등 비언어적 표현 요소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작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연출자의 그림과 메시지를 한층 효과적으로 나타내주는 사운드 구현이 가능한 음악감독 선정에 고심한다는 후문이다. 향후 또 어떤 창작자들의 만남이 신선한 '음악의 힘'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모인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