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지난해 9월 코로나19로 멈춰선 여객기 보잉 777-300ER을 개조해 내부에 화물을 실은 모습. /한경DB
대한항공이 지난해 9월 코로나19로 멈춰선 여객기 보잉 777-300ER을 개조해 내부에 화물을 실은 모습. /한경DB
공급망은 벽 뒤에 숨은 배관과 같다. 배관이 터지고 나서야 거기에 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19는 공급망이라는 배관을 터뜨린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든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원하는 때에 살 수 있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적시에 부품이 도착하지 않아 공장이 멈추는 사태도 벌어졌다. 지진이나 홍수로 일부 지역 공장이 영향을 받는 일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공급망이 차질을 빚은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미국 MIT 교수이자 물류 및 공급망 전문가인 요시 셰피가 쓴 《뉴 애브노멀》은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책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공급망을 어떻게 뒤흔들어 놨고,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결론은 민첩하고 탄력적이고 유연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마을] 팬데믹發 '공급망 쇼크'…유연한 기업만이 살아남았다
일반적인 잡화점은 보통 4만~7만5000개의 스톡키핑유닛(SKU)을 취급한다. SKU는 같은 제품이라도 사이즈별 용량별로 나눈 것으로, 재고 관리를 위한 최소 단위다. 재고 담당자는 제품이 채워지는 주기, 판매량 등에 맞춰 최적의 재고량을 계산한다. 이를 골디락스 재고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측치를 크게 벗어나면 공급망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이 과부하를 모든 영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으켰다.

코로나19로 소비 패턴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몇 개월 분의 화장지, 청소용 클리너, 필수 식품이 며칠 사이 동났다. 한편으론 농민들이 농작물을 갈아엎고, 우유를 버리고, 가축을 안락사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식당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던 업체와 농장들이 수요처를 잃어버린 탓이다. 수요처에 따라 공급망과 포장, 정부 규정이 달랐다.

‘채찍 효과’는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화장지 판매량이 하루평균 100개에서 200개로 늘면, 4일분을 재고로 유지하는 소매점은 주문량을 200개가 아니라 600개로 늘린다. 4일 재고량이 400개에서 800개로 늘어나는데, 현재 재고량은 200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파티용품 판매량이 절반으로 줄었다면 신규 주문량은 0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채찍 효과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때는 물론 완화 때도 작용하며 공급망을 교란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데도 경제가 붕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재기로 인한 소동도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그쳤다. 기업들이 민첩하게 대응한 결과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너럴밀스는 냉동피자 공장을 연중무휴 24시간 가동하며 공급을 늘렸다. 유니레버는 손 소독제 생산량을 5개월 만에 600배 높이고, 65개의 새로운 시장에 제품을 공급했다. 아이스크림 공장을 손 소독제 공장으로 바꾸기도 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코로나19 이전 제품의 약 70%를 여객기에 실어 보냈다. 온도에 민감한 제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객기는 세계 항공 화물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여객기 운항 중단은 세계 물류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항공사들은 사람이 타는 여객기 좌석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좌석을 떼어내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화물을 미리 채워 좌석에 놓을 수 있는 ‘좌석 가방’을 활용했다.

물론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저자는 우선 운송 가시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UPS, 페덱스 같은 특급 소포 배송업체는 발송자와 수령자에게 운송 경로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기업 간 대규모 일반화물 운송은 그와 같은 가시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화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코로나19 이후 전자상거래 비중이 높아지면서 빠른 재고 관리, 빠른 배송이 중요해졌다. 자동화는 업소용 제품을 소매용 제품으로 바꾸는 식으로 공정 운영의 탄력성도 높일 수 있다.

기업의 공급망 관리자 입장에선 중국은 큰 골칫거리다. 그동안 중국에 생산 시설을 많이 지었는데, 미·중 갈등, 임금 인상, 자동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중국에 생산 거점을 계속 둬야 할지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저자는 중국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서의 중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외 국가로 공급망을 다각화하는 ‘중국+1’ 정도를 절충안으로 제시한다.

책의 짜임새는 아쉽다. 사례를 앞세우기보다 저자 자신의 통찰력과 주장을 명확하게 서술했다면 더 좋은 책이 됐을 듯하다. 재택근무와 고등 교육, 빈부 격차 등 공급망과 무관한 이야기도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