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랑한 미술관 - 코리아나화장품 스페이스 씨
조선의 그루밍족을 엿보다…K뷰티 저력의 근원을 보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88)이 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건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1960년대였다. “감성을 키우는 데 그림이 좋다”는 거래처 사람의 말을 듣고 모으기 시작한 미술품 컬렉션은 그의 성공가도와 함께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1988년 코리아나화장품을 창립한 뒤에는 화장구와 장신구 등 여성의 생활과 관련된 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았다. 1995년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이 국보로 지정되는 등 유물 석 점이 국가 지정 문화재로 인정받는 영광도 누렸다.

코리아나화장품이 2003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개관한 복합예술공간 스페이스 씨는 유 회장의 50여 년에 걸친 미술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는 공간이다. 지하 2층, 지상 7층인 이 건물에는 코리아나미술관과 화장 관련 유물을 모은 코리아나화장박물관이 있다. 화장품기업의 미술관답게 여성과 아름다움, 화장에 관련된 다양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한곳에서 접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미인도 컬렉션·다채로운 현대미술 ‘눈길’
지하 1~2층에 있는 코리아나미술관에서는 여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자주 열린다. 미술관이 2004년부터 수시로 열고 있는 ‘동서양의 근현대 미인도’ 전시가 대표적이다. 전시에서는 김은호 김기창 등이 여성을 주제로 그린 한국화, 천경자 최영림 등 서양화가들의 미인도를 비롯해 20세기 프랑스 여성화가 마리 로랑생의 작품, 다양한 현대 작가의 여성 그림 등 미술관이 소장한 수많은 미인도를 만날 수 있다. 작가별·시대별·지역별 미인도를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천을 가늠해볼 수 있어 열릴 때마다 인기가 높다. 또 다른 주요 전시 주제는 현대미술이다. 미디어아트 등 시각예술뿐 아니라 음악과 연극, 무용과 퍼포먼스 등 광범위한 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전시 기획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미술관 관계자는 “다양한 분야의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적극 후원하고 대중에 소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기획전 ‘프로필을 설정하세요’도 실험적인 현대미술 전시다. 미국 중국 푸에르토리코 등 해외 국적 작가 4명을 비롯해 작가 9명의 영상 작품 등을 선보인다. 미술관 관계자는 “아바타 등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이로 인한 문제들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살펴보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 27일까지.
‘국내 유일’ 화장박물관 만나볼까
스페이스 씨 5~6층에 있는 코리아나화장박물관은 국내 유일한 화장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전통 화장 재료와 화장용기 등 몸을 치장하는 행위와 관련한 생활용품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화장 도구를 비롯해 화장 관련 유물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세정제와 분, 눈썹 먹, 연지, 화장유, 향 등 전통 화장 도구들과 이를 만들어내는 원료, 화장품 제조 도구 등을 통해 조상들의 지혜와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접할 수 있다. 남자들이 주로 쓰던 화장용품들도 눈길을 끈다. 특별 전시실에서는 개관 이후 27번째 소장품 테마전인 ‘자연의 빛, 옻칠’전이 열리고 있다. 나전칠기 유물 40여 점을 비롯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옻칠 유물들을 소개하는 전시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국외 전시를 통해 한국의 화장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 영국 일본의 한국문화원과 중국 베이징 칭화대 등에서 연 ‘한국의 화장문화’전이 그런 전시였다. 2006년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연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 한국 화장문화’전은 문화 외교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외국인이 관심을 보이는 한국 전통 생활문화와 관련한 전시를 시의적절하게 열기도 한다. 어떤 주제로도 전시를 열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생활문화 소장품 덕분이다. 미술관이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연 전통 모자 전시회 ‘조선-모자의 나라’가 대표적이다. 당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인기로 해외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갓을 비롯한 전통 모자 유물 등 134여 점을 선보인 전시는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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