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바비롤리의 브람스…가을볕처럼 포근하네
가을에는 브람스다. 브람스를 듣다 보면 전혀 진부하지 않은 말이다. 여름엔 안 들리던 게 가을엔 들린다. 인생의 가을이라 할 수 있는 중년 이후에 더 잘 들리는 게 브람스 곡들이다. 브람스 음악에 가을의 대기가 섞이면 그곳이 어디든 파노라마 같은 장관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흰 구름, 갈대밭 사이를 흐르는 차가운 냇물, 뉘엿뉘엿 지는 해의 따사로움 속에 고독이 스민다. 클래식 음악 팬들은 해마다 브람스로 가을을 탄다.

음악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큰 편성 작품을 먼저 듣고 작은 편성의 곡들로 옮겨가곤 한다. 브람스도 교향곡에서 협주곡으로, 실내악에서 피아노 독주로 두터운 화성과 구조의 옷을 하나씩 벗겨가며 더 깊은 내면과 만난다. 브람스를 가장 먼저 접할 때는 네 곡의 교향곡과 비극적 서곡, 대학축전서곡,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 관현악곡을 권한다.

브람스 교향곡의 명연은 지금껏 연주한 마에스트로들의 이름과 다르지 않다. 푸르트벵글러, 발터, 뵘, 케르테스, 켐페, 셸, 카라얀, 번스타인, 줄리니, 아바도 등 명지휘자들의 어느 음반을 골라도 후회는 없지만 이 가을에는 존 바비롤리가 빈필하모닉과 녹음한 전집을 듣고 싶다.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인 바비롤리가 브람스가 살았던 빈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다국적 정서의 조합엔 향기가 가득하다. 일찍이 한 인터뷰에서 바비롤리는 “고급 포도주 같은 소리, 따뜻함과 칸타빌레, 의무감을 넘어 함께 연주하는 분위기를 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잿빛 연주에서 듣지 못한 색깔과 맡지 못했던 향기가 바비롤리의 브람스엔 있다.

1966~1967년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녹음된 브람스 교향곡 1~4번의 음원은 일찍이 일본에서 세라핌 시리즈로 발매됐고 디스키 레이블에서도 선보였다. 국내에선 워너뮤직코리아가 오리지널 LP 재킷의 앞뒤를 살린 디자인으로 발매했다. 주관적인 브람스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연주는 독특하다. 교향곡 네 곡의 첫인상은 따스하고 거대하다. 느린 템포와 정중한 악센트, 온화한 감정을 앞세우며 큰 덩어리의 음악을 직조해 낸다. 특히 교향곡 2번과 4번이 훌륭하다. 2번에서는 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호른의 울림이 감상자를 포근하게 감싼다. 4번은 비감과 쓸쓸함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드넓은 갈대밭을 보는 듯하다.

바비롤리의 오랜 친구이며 평론가인 네빌 카더스는 1969년 이렇게 썼다. “바비롤리는 프레이즈 하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긴 시간을 소비했다. 그건 마치 애무를 하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전체적인 곡의 탄력은 균형을 잃었다.”

나무에 매달리느라 숲을 보지 못했다는 그의 지적대로다. 교향곡 1번은 추진력이 약하고 둔중하다. 종결 악장인 코다에서 열정은 폭발을 망설인다. 그러나 교향곡 3번에서 바비롤리는 다른 지휘자들이 지나치던 약한 부분에 천착한다. 브람스가 지녔던 독특한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바비롤리는 모든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거의 ‘원 테이크’로 녹음했다고 한다. 잔재주가 없는 자연스러운 정감 위로 탐미적인 윤기가 도금돼 있는 연주다. 녹음에 임했던 빈필 단원들은 바비롤리의 독특한 리허설에 당황하면서도 “푸르트벵글러와는 또 다른 면에서 신들린 듯한 지휘였다”고 증언했다. 해가 갈수록, 반복 감상할수록 브람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한 해의 가을도, 인생의 가을도 브람스가 있어 좋다.

류태형 <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