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지금은 감속의 시대…'변화 없음'을 두려워 말라
현대인의 삶은 늘 정신없이 바쁘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이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사회는 크게 변했다. 모두가 급속한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인구는 급증했고, 소득은 뛰었다. 교통수단은 빨라졌고, 매대 위의 상품은 쉴 새 없이 바뀌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변화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더는 차창 밖의 풍경이 예전처럼 빠르게 지나가지 않는다.

《슬로다운》은 산업혁명 이후 지속된 ‘가속의 시대’가 끝나고 ‘감속의 시대’를 맞이한 세계가 맞닥뜨린 새로운 삶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에 맞춘 새로운 생활방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책을 쓴 대니 돌링은 인구와 주거, 보건, 고용, 빈곤 등을 두루 연구한 영국 옥스퍼드대 사회지리학자다.

[책마을] 지금은 감속의 시대…'변화 없음'을 두려워 말라
대가속의 시대가 동력을 상실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가장 뚜렷한 지표는 인구다. 지난 160년 동안 지구상의 인구는 8배 가까이 늘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분위기가 반전됐다. 많은 나라에서 인구감소가 현실이 됐고, 출산율 저하는 세계적 추세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가 150억 명까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던 1970년대의 우려는 “2040년 80억 명을 정점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2010년대의 현실적 전망으로 대체됐다. 1950년 2.0%에 달했던 일본의 인구증가율은 1958년 1.0%로, 1986년 0.5%로, 2012년 마이너스로 뚝뚝 떨어졌다.

경제성장이 그린 궤적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성장이 가장 가팔랐던 것은 1964년. 전 세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15%에 달했다. 이후 증가율은 감소 추세를 이어가 2008년 이후 10년간 2% 이상 성장한 해는 3개년에 그쳤다.

과학기술 역시 발걸음이 느려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1930년대 이후부턴 컴퓨터나 비행기, 나일론과 같은 예전에 없던, 근본적으로 새로운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반도체 분야에서 철칙처럼 통용되던 ‘무어의 법칙’(반도체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도 언제, 어떻게 끝날지를 고민하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와 TV, 세탁기, 싱크대 같은 범용 제품은 기능은 물론 외형마저 크게 변한 게 없다.

정보기술(IT) 분야도 발걸음이 무거워진 지 오래다. 정보 혁명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 생산은 사실상 제자리걸음 중이다. 유통되는 데이터 대부분은 쓸모가 없거나 중복되고 복제된 것들이다. 2001년 출범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조차 다루는 항목과 접속자 수에서 2007년부터 슬로다운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발전과 확산의 속도가 더뎌지는 것은 인간의 수명 연장 같은 자연현상부터 부채, 대학진학률, 가구당 자동차 보유 대수, 출판 간행물 수 같은 사회현상까지 인간사 거의 전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미국과 중국, 일본, 한국, 과테말라, 브라질, 동티모르 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맞아 저자는 그동안 누려왔던 변화와 혁신, 새로운 발견 등을 당연시하고 높이 평가하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인간 삶의 개선에 폭발적인 변화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슬로다운을 두려워 말고, 대가속 시대 이전의 정체되고 변화가 적은 인류사의 ‘정상 상태’로 돌아갈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만 슬로다운 현상의 확산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에 비해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소 운명론적·체념적이라는 인상이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창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에 눈감고, 손쉽게 포기하자는 주장처럼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애써 깎아내린다거나, 국가와 사회의 발전사를 유아-성인-노년기의 유기체로 파악했던 전근대적 사고가 연상되는 면도 없지 않다.

번역에서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저자가 변화가 적다는 점을 강조해 사용한 ‘stability’의 역어로 긍정적인 어감이 강한 ‘안정’을 기계적으로 택한 탓에 어색한 문장을 자주 접한다. 미국 부채 규모를 달러화가 아니라 원화로 잘못 표시(108쪽)한 것 같은 실수도 잦다. 특히 고유명사를 중구난방으로 옮긴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벨기에 도시 ‘루뱅’은 ‘루벤’으로,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도시국가 ‘누란(樓蘭)’은 ‘룰란’으로 어색하게 불린다. ‘칭기즈칸’은 ‘징기스칸’으로, 저명한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은 ‘앙구스 매디슨’으로 고리짝 책에서나 접할 법한 형태로 표기됐다. 《우주 전쟁》으로 굳어진 H G 웰스의 소설명을 《세계 전쟁》으로 소개한 것도 적절한 번역어를 선택했다고 평하긴 어렵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