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쇼팽’
조성진의 ‘쇼팽’
조성진(27)·손열음(35)·다닐 트리포노프(30)….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피아니스트들이다. 이들은 10년 전인 201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우승을 다퉜던 사이다. 당시 조성진은 3위, 손열음은 2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둘을 제치고 우승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경쟁은 진행형이다. 각자 음악성이 담긴 음반을 잇달아 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성진은 지난 27일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스케르초’ 전곡(4곡)을 음반으로 발매했다. 9월 5일부터는 전국을 돌며 수록곡을 들려준다. 손열음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1937~2020)의 ‘피아노 소나타’와 ‘에튀드(연습곡)’ 등 15곡을 음반으로 선보였다. 9월 30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고 관객들을 만난다. 트리포노프는 오는 10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미완성 유작인 ‘푸가의 기법’을 연주한 음반을 내놓는다.

이들이 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뒤에도 쉼없이 자신을 증명하는 이유는 뭘까. 입상하는 순간 연주자에겐 영예만큼 무거운 족쇄가 채워진다. 대회가 끝나도 실력에 관한 논쟁이 벌어져서다. 입상자들이 내놓는 음반은 그래서 늘 시험대에 올라간다. 한 번이라도 망작을 내면 “경연에서만 강하다”는 비판이 대두된다.

조성진은 이번 음반을 통해 2015년 쇼팽콩쿠르 우승자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쇼팽으로 얻은 인기가 거품이 아님을 증명한 것. 음악평론가들은 2015년보다 한층 성숙된 음색이 담겨 있다고 호평했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6년 전에 비해 다채로운 음색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연주법을 구축한 모습이 엿보인다”며 “쇼팽콩쿠르에선 흠 없이 안정적인 연주를 선보였고, 이번에는 자기 개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평했다.

손열음의 ‘카푸스틴’
손열음의 ‘카푸스틴’
손열음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주 연주되지 않는 현대음악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그가 고른 카푸스틴 레퍼토리에는 클래식과 재즈의 연주법이 한데 섞여 있다. 정통 클래식으로 겨루는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손열음이 연주해 주목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황진규 음악평론가는 “베토벤 등 주류 레퍼토리에 국한됐던 국내 클래식계의 관습을 탈피하려는 것”이라며 “손열음이 다루는 레퍼토리가 늘어나는 건 국내 클래식계에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트리포노프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에 천착하고 있다. 고전음악의 본류를 찾아 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간 셈. 바흐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14개의 푸가와 4개의 카논을 음반에 담았다. 푸가와 카논 모두 서로 다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대위법이 들어간 곡들이다. 슈만은 생전 후배들에게 “대위법을 익히려면 바흐 작품을 연습하라”고 조언했다. 바흐가 창시한 대위법은 클래식의 뿌리다.

트리포노프의 ‘바흐’
트리포노프의 ‘바흐’
트리포노프는 지독하게 바흐를 연구했다. 완벽히 이해하려고 바흐 가족이 만든 곡까지 음반에 실었다. 바흐의 장남 빌헬름 프리데만의 ‘폴로네이즈 8번’과 차남 칼 필립 엠마누엘의 ‘론도’, 3남 요한 크리스토프의 ‘작은별 변주곡’,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의 ‘피아노 소나타 5번’ 등을 연주했다. 바흐가 두 번째 부인인 막달레나에게 물려준 음악노트에 적힌 스케치곡들도 함께 녹음했다. 황 평론가는 “트리포노프는 클래식의 근간을 다루면서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