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자문기구 '반려' 이후 범정부 차원에서 위원국 지지 교섭
"화상회의·총리 서한으로 설득했죠"…갯벌 등재 뒷이야기

"굉장히 좋았습니다.

몇 달간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가면서 갑자기 먹먹해지더라고요.

울컥했습니다.

"
박지영 문화재청 세계유산정책과 사무관은 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 등 4곳에 있는 갯벌을 묶은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을 때 느낀 감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여성희 세계유산정책과장은 "등재 당일에는 정신이 없었다"며 "'됐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문화재계에서 가장 큰 국제 행사인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2020 도쿄 올림픽처럼 지난해에 열리지 않았다.

공교롭게 두 행사는 지난달에 약 1주일 간격을 두고 연이어 막을 올렸고, 양궁 남자 단체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건 26일 오후 한국의 갯벌이 등재 심사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2019년 '한국의 서원' 등재 전까지 예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문기구 심사에서 대부분 '등재 권고'를 받아 본선 무대인 세계유산위원회에 마음 졸이며 참석한 적이 많지 않았다.

한국의 갯벌은 지난 5월 자연유산 자문·심사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반려' 권고를 받았다.

자문기구 평가 체계는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등 4단계로 이뤄진다.

반려는 사실상 불합격점에 가까웠다.

우리 정부는 신청을 철회하는 대신 두 달 남짓한 기간에 21개 위원국을 대상으로 지지 교섭을 하고, 두 단계를 올려 등재에 도전하기로 했다.

성공한다면 반려 판정을 받은 유산을 철회하지 않고 한 번에 등재한 국내 첫 사례가 되고, 실패한다면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까지 가서 등재되지 않은 한국의 첫 번째 유산으로 기록될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여 과장은 "IUCN은 한국의 갯벌이 세계유산 기준에 부합하는 잠재적 가치가 있지만, 지역이 좁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며 "한국의 갯벌에 포함되는 갯벌을 10곳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유산은 문화유산과 달라서 보호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니 IUCN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나서 재신청하려면 4∼5년은 걸릴 것 같았다"며 "아무래도 철회보다는 위원국을 바로 설득하는 편이 등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자문기구가 '등재 불가' 권고를 한 유산이 극적으로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사례가 아주 드물게 있기는 했지만, 한 단계 높은 반려 권고를 받은 유산을 상향 조정하기도 쉽지는 않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위원국 중 한두 국가가 자문기구 견해를 바탕으로 등재를 강하게 반대해 등재 문턱에서 좌절한 사례도 있었다.

여 과장과 박 사무관, 박영록 학예연구사는 위원국 지지 교섭에 앞서 5월 하순 한국의 갯벌과 인접한 지자체를 찾아가 등재가 결정되면 나중에 유산 구역을 넓히는 '확장 등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한강 유역과 금강 하류에 있는 일부 지자체가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화상회의·총리 서한으로 설득했죠"…갯벌 등재 뒷이야기

IUCN 권고를 어느 정도 만족시킬 방법을 찾은 문화재청은 6월 중순부터 프랑스 파리에 있는 주유네스코 한국대표부를 통해 위원국 유네스코 대표부를 온라인으로 접촉하기로 했다.

박 사무관은 "위원국에 있는 전문가와 화상회의로 만나 한국의 갯벌이 지닌 가치와 구역 확대 계획을 설명하는 한편 위원국 소재 한국대사관을 통해서도 각국 대표부에 갯벌의 등재 필요성을 알렸다"고 말했다.

화상회의에는 문화재청 세계유산정책과 직원들과 문경오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사무국장이 참여했다.

먼저 2분가량의 영상을 보여준 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근무 경험이 있는 여 과장이 발표하고, 부가적인 질문이 나오면 문 국장이 답변했다.

"아름다운 갯벌 영상을 보여주니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21개국 중 11개국을 상대로 화상회의를 했는데, 위원국 시차에 맞추다 보니 오후 11시에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첫 화상회의를 한 나라인 바레인과 선도적으로 갯벌 등재를 지지한 키르기스스탄이 기억에 남습니다.

"(박지영 사무관)
키르기스스탄은 위원국이 아닌 한국을 대신해 등재 의견을 담은 수정 결정문을 발의하겠다고 나섰고, 결국 이 결정문은 13개국 공동 발의 형태로 상정됐다.

마침 키르기스스탄 대표부 대사 대리가 한국과 친분이 있어 적극적으로 등재를 도왔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갯벌의 가치를 인정하는 위원국을 늘리기 위해 외교부 외교행낭과 특별 수송을 통해 교섭 자료, 도록, 소책자, 엽서를 보냈다.

국무조정실에 협조를 요청해 이례적으로 국무총리 명의의 서한을 위원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고위급 인사의 지지 요청 서한을 발송하기는 처음입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등재 추진 의지를 강력히 표명할 수단이 필요했죠. 한국의 갯벌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무난히 등재되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박지영 사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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