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길을 묻다, 청춘 占성시대
‘사주쟁이와 명리학자.’

한국에서 사주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개의 용어가 보여주듯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해진 운명이란 생각에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주팔자는 미신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많다.

명리학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인 중국 남송시대다. 당시 도교 수행가이던 서승은 불행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이 자유의지를 갖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생극(生剋)관계를 분석하는 방식의 명리학을 정립했다. 측은지심이 바탕이 된 인문학이 명리학의 시작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중종 때 태어나 선조 때 생을 마친 토정 이지함 선생은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토정비결을 썼다. 전쟁 등으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인생의 길흉화복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지 도움을 주려고 했다.

인본주의에서 시작된 명리학이 한국에서 미신으로 전락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식민지, 전쟁, 분단, 가난으로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에서 한국의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명리학도 기복적으로 바뀌었다. 당장 내일의 안위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명리학은 철저히 세속화했다. 혹세무민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런 명리학이 최근 들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주풀이는 특히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사주카페, 전화사주 등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했다. 진학, 취업, 결혼 등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방황하는 청춘들이 늘어난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하지만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게 미신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필요는 없다.

《명리》라는 책에서 ‘만인의 명리학자화’를 주장한 강헌 씨는 “명리학은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시행착오를 줄이고 어려움을 더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인간의 삶은 정해진 대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명(命)은 하늘로부터 받지만 사람은 그것을 운(運)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은 그 이름에서부터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이 불안한 요즘, 사주를 보며 소란한 마음에 위로로 삼는 이들이 많다. 명리학을 미신으로 추종할지, 삶의 지혜를 얻는 데 활용할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강영연/나수지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