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농부가 전하는 생명의 에세이
“농부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몇 번 맨스플레인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어느 날은 자기도 모르게 농촌 사회의 보수적인 생각으로 내 옷차림을 지적하기에 따졌다가 싸움이 되었다. 친구와 잘 지내고픈 마음이 오히려 싸움을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싸움을 좋은 싸움이라고 부른다. 친구에게 애정이 없다면 일일이 삐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소연 시인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신작 에세이집 《고라니라니》(마저 펴냄)를 출간한다. 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인 이 시인이 시골 농부 주영태 씨와 함께 주고받은 사진과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전북 고창에서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젊은 농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겼다. 매일같이 자기 논에 찾아오는 황새를 좋아하고, 자라나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마음을 시인은 닮고 싶어한다. 농부가 새끼 고라니를 손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통해 순하디순한 생명의 함축, 포악하고 사나운 손이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세계를 읽는다.

편안하게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듯한 시인의 글과 함께 농부가 습관처럼 찍어온 일상의 평범한 사진에 깃든 삶의 이력들이 가슴 속에 뭉클함을 은은하게 전한다.

《고라니라니》는 12일 문화예술·출판 펀딩 커뮤니티인 텀블벅을 통해 출판비 모집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목표금액(100만원)을 달성해 최소 발행부수(80부)를 확보했다. 이날 오후 3시 현재 목표금액의 340%를 모았다. 목표금액의 1000%가 넘어가면 펀딩 금액에 비례해 발행 부수가 크게 늘어난다. 다음달 21일까지 펀딩이 진행되며 책은 9월 초 출간될 예정이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을 쓴 소설가 정세랑 씨는 추천사를 통해 “이렇게 맛있는 에세이는 오랜만”이라고 평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