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대중화로 민주화와 산업화에 기여

한국의 미(美)를 보여주는 단아한 국토, 심오한 문화, 세계 시장에서도 손색없는 농업과 어업….
선조가 물려준 유산은 절대 작지 않다.

공기처럼 익숙해 그 가치를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혹은 우리 자신이 훼손해놓고 변변찮다고 한탄한다.

반만년 삶이 남긴 자취는 한반도 구석구석에 널려 있다.

위대한 유산, 아름다운 유산, 숨은 유산까지.
[imazine] 위대한 유산 ① 한국인을 지성으로 이끈 한글
한국은 1377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찍은 데 이어 1443년 한글을 만들었다.

한국인은 인쇄 혁명과 문자 혁명을 이루어 누구보다 지식 세계의 문 앞에 먼저 도달했지만 세계사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지적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은 앞으로 세계 지성을 이끌 수 있을까.

한글에 그 열쇠가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노예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영어나 한자를 읽고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현대 한국인의 삶을 얘기할 때 민주주의를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한글을 빼놓을 수 없다.

외국에 나가면 나를 보호해줄 조국이 그리운 만큼이나 한글도 그리워진다.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이 있기에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고 맛깔나게 표현할 수 있다.

외국어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고통에 가까울 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한글의 가치를 말할 때 흔히 과학성과 우수성을 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한글이 우리 글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닐까.

우리 말을 우리 말답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글을 갖고 있다는 건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

한글이 없다면 '나는 책을 읽는다'라는 말을 '我讀書'(아독서) 혹은 'I read the book'(아이 리드 더 북) 혹은 'Naneun chakeul ikneunda'(나는 책을 읽는다)로 쓸지 모른다.

한자나 영어로 쓰거나 로마자를 빌려서 말이다.

그렇다면 글이 얼마나 어렵고 불편할 것인가.

생각을 치밀하게 가다듬을 수도, 감정을 실감 나게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지성의 발달을 가로막을 것이고, 민족의 쇠퇴로 이어질 수도 있다.

[imazine] 위대한 유산 ① 한국인을 지성으로 이끈 한글
한글이 있어 고맙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글이 있었기에 '토지', '임꺽정' 같은 대서사, '향수' 같은 토속 서정의 시, '제비는 푸른 하늘 구경 다 하고' 같은 예쁜 동시, 신윤복 선생의 '처음처럼' 같은 멋스러운 글자체 등이 나올 수 있었다.

우리 말을 우리 글로 온전히 옮길 수 있기에 문학은 다채로운 개성을 띠고 우리 말의 표현력은 풍부해진다.

글이 발달하면 말의 묘미가 깊어진다.

한글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 공통된 것 같다.

국립한글박물관이 2018년 1천 명을 대상으로 한글과 한글문화에 관한 국민 의식을 조사한 결과, 86%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라고 생각했다.

73%는 '한글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 89%는 '한글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한국의 문화유산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뭘까.

한글, 현존하는 세계 최고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 팔만대장경, 석굴암, 불국사 등 후보는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국보 1호는 서울 숭례문이다.

숭례문은 국민 사이에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각인돼 있고, 외국인에게는 한국을 상징하다시피 한다.

[imazine] 위대한 유산 ① 한국인을 지성으로 이끈 한글
그러나 국보 번호가 문화재 가치와 정확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 편의에 따른 것으로 일제 강점기 행정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 국보 1호는 교토 고류지(廣隆寺 광륭사)에 소장된 목조 미륵보살반가상이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거의 같은 형식이어서 삼국시대에 제작돼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한반도 전래 유물로 보이는 이 불상을 국보 1호로 정한 것 역시 여러 문화유산 중 이 문화재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행정 편의 때문이었다.

숭례문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게 아니다.

한글이 우리의 가장 보배롭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아닐까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 한글에 붙여진 이름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뒤 한자로 설명한 문자 해설서 '훈민정음'을 펴냈다.

훈민정음 해설서이기 때문에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한다.

문자를 만든 뒤 그 문자의 창제자, 창제 목적, 창제 원리, 사용법 등을 정확하게 기록한 책이 남아있는 사례는 훈민정음해례본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훈민정음해례본은 국보 70호이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세운 문화재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이 해례본을 수집한 과정은 감동적이다.

간송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 경성의 비싼 기와집 10채 값에 해당하는 거금을 주고 해례본을 손에 넣었다.

그는 매도자에게 값을 깎기는커녕 일부러 높은 가격을 쳐주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가격을 흥정하거나 따질 대상이 아님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imazine] 위대한 유산 ① 한국인을 지성으로 이끈 한글
한국인이 제일 존경하는 선현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언어생활에 깊은 영향을 준 세종대왕을 특히 흠모한다.

세종은 재위 32년 동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뤄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0∼1970년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과 충남 아산에 있는 이순신 장군 사당인 현충사에 대해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을 벌였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두 지도자를 기림으로써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성역화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다만 세종대왕릉은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고증을 소홀히 해 원형을 훼손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문화재청은 세종대왕릉 복원 사업을 벌였다.

유네스코가 왕릉의 원형 복원 및 보존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있는 여주 영릉은 6년 2개월간의 긴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한글날인 10월 9일 재개방했다.

영릉을 찾는 관광객은 적지 않다.

매년 60만 명가량 관람한다.

감염병 사태가 터진 지난해에도 약 40만 명이 다녀갔다.

탐방객들이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다시 열린 영릉은 품위와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국민이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언어학계도 인정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몇 년 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에 주재했던 언론인이 전한 얘기다.

한인이 꽤 많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노래방이 몇 군데 있는데, 일부 현지인들은 한국어 가사가 자막으로 흐르는 노래방 기기를 쳐다보며 한국 대중가요를 곧잘 불렀다고 한다.

가령 '아~ 그리워라 … '라는 가사를 뜻도 모르면서 그럴싸하게 부를 수 있던 것은 'ㅇ'와 'ㅏ'가 모여 '아'가 되고 'ㄱ'과 'ㅡ'가 합쳐서 '그'가 되는 한글의 체계를 금방 깨쳤기 때문이었다.

[imazine] 위대한 유산 ① 한국인을 지성으로 이끈 한글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도 한글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다만 문자가 아닌 한국어는 쉽게 배울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다.

한국어는 조사가 다양하고 어미변화가 많은데다 존대어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글은 깨치기 쉽지만, 한국말은 배우기 어려운 언어 '톱 5'에 든다는 얘기도 있다.

몇 해 전에 만났던 국어학자는 한국어는 동사 변화가 무려 60∼70가지나 돼 외국인들이 배울 때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령 '살다'라는 동사는 살고, 살아서, 사니, 사니까 등으로 어미가 다양하게 변한다.

변화무쌍한 동사 변화 때문에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비할 바 아니다.

한글 창제에 깃들어 있는 세종의 애민(愛民)과 개혁 정신, 쉬운 문자의 과학성은 민주주의와 맞닿는다.

세종은 지배계층인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문자와 지식의 세계를 일반 백성에게 개방했다.

쉬운 한글의 보급은 지식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근대를 향한 징후이기도 했다.

한글이 없었다면 광복 후 그처럼 빠른 속도로 문맹률이 낮아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졌을까.

우리가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근저에는 쉬운 문자가 가능케 한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가 자리 잡고 있다.

지성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앞당긴다.

한글은 산업화에 필요한 양질의 인력 공급에 기여했다.

[imazine] 위대한 유산 ① 한국인을 지성으로 이끈 한글
한글은 글자 자체가 예술이 되기도 한다.

한글을 쓰고, 보고, 읽고, 느끼는 가운데 우리는 한글 자형에 민감해지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글자체를 통해 감성을 표현한다.

한글은 읽고 쓰는 것뿐 아니라 보고 느끼는 문자가 됐다.

한글 손멋글씨(캘리그라피)가 발달하고 한글 자체가 지닌 미적, 조형적 가치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글은 과학성, 체계성으로 인해 정보화 시대에 더 빛나는 문자다.

서양에서 개발된 컴퓨터는 로마자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으나 한글 역시 발 빠른 디지털화로 정보 입출력 언어로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 자판, 한글 코드, 음성·필기체 인식에 의한 한글 입력 방식 개발, 자동 통·번역 등은 한글 정보화의 산물이다.

정보력이 사회의 힘이고, 지식을 지배하는 자가 4차 혁명 시대를 주도할 것이다.

한민족은 인쇄 혁명과 문자 혁명으로 정보·지식 혁명의 토대를 누구보다 먼저 쌓았다.

지식을 추구하는 DNA가 핏속에 흐르는 한국인이 세계 역사를 지배할 날이 올까.

언어와 문자는 사고와 지성을 연마하는 도구다.

한글을 잘 다듬고 다루는 데 미래를 여는 열쇠가 있지 않을까.

한글은 과거 유산에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와 함께 숨 쉬고 현재를 살아간다.

우리는 한글로 생각을 전하고, 일상을 누리고, 상상을 쓰고, 흥을 더한다.

'당신이 하는 말이 곧 당신이다'라는 경구가 맞는다면 '당신이 쓰는 글이 곧 당신이다'도 성립할 것이다.

'한글은 당신입니다.

'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 상설 전시관의 마지막 전시 영상물 제목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