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환자의 장 속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이 감염되지 않은 사람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는 호흡기 감염병이지만 질환에 걸리면 몸 속 염증반응 등이 늘면서 장 내 미생물 구성도 바뀐다는 것이다. 미국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특정한 세균이 코로나19 중증도를 판단하는 지표로 확인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코로나 감염, 마이크로바이옴도 바꾼다…중증도 예측에 활용가능
홍콩중문대(CUHK) 미생물학과 연구팀은 코로나19 환자의 장속 마이크로바이옴과 면역 반응 등에 관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BMJ Gut' 온라인판에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염증지표로 꼽히는 'C반응성 단백질'(CRP), 젖산 탈수소화 효소(LDH), 면역글로불린(IL) 6·8·10 등의 수치가 높아진다. 일부 환자는 회복한 뒤 다기관염증증후군과 같은 염증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장 속 세포에도 침투할 수 있는데다 확진자의 대변에서 바이러스 리보핵산(RNA)이 나오는 등 위장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코로나19 감염이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관 있는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 속에서 사라지면 마이크로바이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지 등을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2~5월 홍콩의 유나이티드크리스찬 병원 등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등 100명의 혈액, 대변, 환자 기록 등을 감염되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분석했다. 확진자 중 27명은 몸 속 코로나19가 사라진 뒤에도 최대 30일 간 대변 검체를 채취해 분석했다. 대변 속 DNA 를 분석해 장내 마이크로 바이옴 변화를 확인했고 혈장을 통해 혈액 속 염증 수치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약 복용 여부와 관계없이 코로나19 환자의 마이크로바이옴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과 크게 달랐다. 면역 조절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피칼리박테리움 프로스니치, 에우박테리움 렉탈레, 비피박테리아(비피더스균) 등은 코로나19 환자에게서 잘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이 바뀐 환자들은 염증 수치인 CRP, LDH 등이 높았다. 코로나19 증상이 심한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는 회복 후 30일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코로나19에서 회복한 환자 중 일부는 80일 넘게 피로 호흡곤란 관절통 등을 호소한다"며 "마이크로바이옴 변화가 코로나19 감염 후 면역 문제와 연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회복된 환자의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 후유증 등과도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코로나19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 사이토카인 수치, 염증물질 간의 상관 관계는 장내 미생물 군집이 인체의 면역반응을 조절해 코로나19 중증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장속 미생물 변화가 코로나19와 염증반응에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매사추세츠 의대 연구팀은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 중 엔테로코커스페칼리스(Enterococcus faecalis·장내 세균의 하나)가 코로나19 중증도를 예측하는 지표(바이오마커)로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5일(현지시간) 논문공개사이트(medrxiv)에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20%가 입원이 필요한데다 일부는 집중치료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중증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은지는 알 수 없다.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연령, 성별, 동반질환수, 산소포화도, CRP 등 8가지 항목으로 중증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가려내도록 하고 있는데 이 지표의 정확도는 79%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에서 단서를 찾았다. 대변과 구강 검체를 채취한 확진자 62명의 장 속 미생물군을 분석해 중증도 예측 모델을 만들었더니 대변 미생물 모델은 92%, 구강에서 채취한 미생물 모델은 83.8% 정확도를 보였다. 기존 방식보다 정확도가 더 높은 셈이다. 대변과 구강 속 미생물 모델을 모두 결합해 측정하면 정확도는 96%로 높아졌다.
코로나 감염, 마이크로바이옴도 바꾼다…중증도 예측에 활용가능
장 속 미생물 중 코로나19 질병 중증도를 예측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균은 유니포르미스(Bacteroides uniformis), 엔테로코커스페칼리스, 모노글로버스펙티닐리티쿠스(Monoglobus pectinilyticus) 였다. 구강 미생물 중에는 포르피로모나스 엔도돈탈리스(Porphyromonas endodontalis), 베일로넬라 토베트슈느시스(Veillonella tobetsuensis), 비피도박테리움 브레브(Bifidobacterium breve) 등이었다. 중간 정도의 증상을 보이는 중등도 환자는 중증 환자보다 위장관에서는 엔테로코커스페칼리스가, 구강에서는 포르피로모나스 엔도돈탈리스가 각각 적었다.

연구팀은 "중증 코로나19 환자는 염증 반응을 통제하기 어렵다"며 "환자가 심각한 폐손상, 다발성장기부전 등으로 사망에 이르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염증 반응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장 속 마이크로 바이옴이 염증성 면역 반응과 관련이 있다"면서도 "다만 코로나19 감염 환자의 면역 반응에 마이크로 바이옴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