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설립 58년 만에 폐관되는 남산예술센터.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는 31일 설립 58년 만에 폐관되는 남산예술센터. 서울문화재단 제공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1991년 이후 29년 만에 지정한 ‘연극의 해’다.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고 침체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한 해를 보름 남짓 남겨둔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연극계엔 최악의 한파가 불어닥쳤다. 수많은 연극인은 무대에 서지도 못한 채 극심한 생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계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가 문을 닫는다. 한국 연극의 역사적 공간이 사라지게 돼 연극인들의 상실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창작극의 산실

남산예술센터는 오는 31일 폐관된다. 서울시가 소유주인 서울예술대와 3년 단위로 맺은 임대계약이 종료돼서다. 극장을 계속 운영해달라고 요청해온 연극인들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연극의 해'에 문 닫는 연극계 상징…남산예술센터, 역사 속으로
남산예술센터는 국내 최초의 현대식 민간극장이다. 전신인 ‘드라마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동랑 유치진(1905~1974)이 1962년 설립했다. 정부에서 땅을 불하받고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금으로 건물을 세웠다. 개막작 ‘햄릿’을 비롯해 수많은 창작극이 이곳에서 탄생했지만 운영난을 겪으면서 위상이 흔들렸다.

동랑이 설립한 서울예대의 실습 공간으로 오랫동안 사용되다가 2009년 남산예술센터로 이름을 바꿔 제작극장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시는 서울예대와 연간 10억원 규모의 임대계약을 맺고, 서울문화재단에 운영을 맡겼다. 이후 이곳에서 119개 극단이 200여 편의 작품을 제작해 3000여 명이 무대에 섰다. 누적 관객 수는 26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서울예대 측이 2018년부터 임대계약을 끝내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연극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연극인들은 대책 마련을 거듭 요구했지만 임대료 협상 등이 타결되지 않아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애타는 연극계 “공공극장 전환을…”

오랜 터전을 잃은 연극인들은 서울예대로부터 공연장을 사회환원 받아 공공극장으로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연극협회는 “남산예술센터를 공공극장으로 전환하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는 등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오랜 역사가 쌓인 곳인 만큼 공론의 장에서 다양한 주체가 모여 함께 논의하고 연극사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폐관 방침이 정해진 상태여서 공론화는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유화 논란에도 오랜 시간 서울예대 측이 소유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공극장 전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는 남산예술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다른 시설로 가져오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학로 동숭아트센터를 리모델링해 내년에 개관하는 예술청, 2024년께 개관하는 성북 창작연극 지원시설이 그 기능을 연계·수렴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극인들은 남산예술센터만의 역사성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 또한 온전한 대책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매출 40% 급감에 생계 위협받는 연극인

남산예술센터를 비롯해 연극인이 설 무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학로 소극장 ‘나무와 물’ 등 여러 극장이 잇달아 문을 닫았다. 3600여 개 극단 중 84곳은 휴업 또는 폐업을 선택했다. 매출이 급감해 제작비 인건비 임차료 등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연극 전체 매출은 158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261억원)에 비해 39.4% 줄었다. 이달(12월 1~11일) 연극 전체 매출은 2억원에 불과하다. 한 극단 관계자는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적자인 상황이 이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며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없고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고 토로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