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도 안 한 26세 청년, 김수영문학상을 거머쥐다
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이기리 씨(26·사진)가 선정됐다. 김수영문학상을 주최하는 민음사는 이씨 작품인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을 올해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씨는 언론사 신춘문예나 문학출판사 추천 등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지 않은 시인 지망생이다. 올해로 39회를 맞이한 김수영문학상이 비등단자를 수상자로 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문학상 심사엔 191명이 지원해 총 여섯 작품이 본심에 진출했다. 이씨 작품인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은 개인의 내밀한 경험에서 출발해 과거의 상처를 망설임 없이 드러내고 마주하는 용기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화자의 감정을 과장 없이 담담하고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며 “평이한 듯한 진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내공과 고유한 정서적 결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줬다”고 입을 모았다.

심사를 맡은 김언 시인은 “어린 화자의 시선을 빌리면서도 자신의 어두운 지점을 담담하고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인 박연준 시인은 “화자의 처지와 고통을 구체적으로 내몰듯 서술하면서도 시를 통해 감정 유희를 즐길 만큼 상상과 비유, 유머를 발산하는 모습에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수상 소감으로 “시는 내 삶에 물방울들이 천천히 창 아래로 모이듯 다가왔고, 이제 내 세계가 언어로서 이 세계를 조금이나마 넓힌 기분”이라며 “그토록 바라고 바란 순간을 통과했지만 달라지지 않겠다. 시를 통해 사랑을 보듬고 부족한 사랑을 타인들을 위해 채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수상시집은 12월께 출간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