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들'

하렘 스케치한 최초의 서양화가
19세기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
불과 몇시간 방문해 알제리 하렘 재구성
신비한 이슬람 정취 물씬…공개되자 화제
외젠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들, 1834년, 루브르박물관 소장.

외젠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들, 1834년, 루브르박물관 소장.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운 좋은 사람과 운 없는 각계각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8년간의 인터뷰와 실험 끝에 놀라운 결론을 얻었다. 우연과 행운은 개인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행운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활용한다면 행운의 여신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걸작 ‘알제의 여인들’은 우연을 내 것으로 만드는 전략으로 태어난 행운의 산물이다. 이슬람 하렘의 여성들을 등장시킨 이 그림은 1834년 프랑스 공식 미술전시회인 파리 ‘살롱 전’에 선보인 순간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서양 남자인 들라크루아가 이슬람 여성만의 주거공간인 하렘을 방문한 데다 현지 여성을 스케치해 그린 최초의 서양화라는 진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자화상, 1837년, 루브르박물관 소장.

외젠 들라크루아 자화상, 1837년, 루브르박물관 소장.

신비한 하렘의 전통주택 구조와 아라베스크 문양의 인테리어, 화려한 공예품, 성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여성들의 에로틱한 이미지, 이국적인 패션 등 풍부한 볼거리에 프랑스인들이 열광했다. ‘악의 꽃’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작은 시와 같은 이 작품은 우리를 슬픔의 주변으로 이끈다’는 찬사를 바쳤다. 또한 벅찬 감동에 사로잡힌 프랑스 왕 루이 필리프가 2400프랑을 주고 작품을 구입해 룩셈부르크 미술관에 선물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들라크루아는 어떻게 금남의 구역인 하렘에 들어가 이슬람 여성들의 사생활을 관찰하며 현장에서 스케치할 수 있었을까. 우연한 기회가 그를 찾아왔을 때 행운이 자신을 따르도록 준비하고 행동했다. 낭만주의 대표 화가인 들라크루아에게 동방은 ‘살아있는 고대(古代)’이자 억제된 감정을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 그는 동방 기행을 통해 혁신적인 기법을 개발하고 낭만주의의 핵심인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정열, 환상과 상상력을 그림에 표현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19세기 모로코 탕헤르의 하렘.

19세기 모로코 탕헤르의 하렘.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 들라크루아에게 두 번의 우연이 찾아왔다. 첫 번째는 프랑스 외교 특별대사로 임명된 샤를 에드가 드 모네이 백작이 1832년 1월부터 6개월간 외교사절단을 이끌고 모로코와 알제리를 포함한 북아프리카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들라크루아는 모네이 백작의 정부인 여배우 안네 프랑수아즈 부테와의 친분과 인맥을 활용해 외교사절단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우연은 1832년 6월 25일 알제리에 도착해 3일간 머물던 때 찾아왔다. 들라크루아는 동방 여행을 하는 동안 500여 점에 달하는 수채화와 스케치를 그렸지만 정작 간절히 바랐던 하렘을 방문하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는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항만 관리의 도움으로 운 좋게도 한 알제리인 집의 하렘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아냈다. 들라크루아는 하렘을 방문한 짧은 몇 시간 동안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스케치했고, 눈으로 목격한 모든 것을 일지에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서양 남성 화가로는 최초로 하렘을 체험한 감격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너무도 아름다워 호메로스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아! 내가 이해하는 한 이것이 진정한 여자다!”

여행에서 돌아온 들라크루아는 스케치와 일기, 직접 수집한 민속품, 장신구, 수공예품을 활용해 동양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기억을 되살리며 하렘 장면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1834년 살롱전에 출품했다. 고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과 낭만적 환상이 결합해 탄생한 ‘알제의 여인들’은 동시대 예술가뿐만 아니라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등 후세대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 과거 걸작에서 영감을 받아 재창조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2015년 5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937만달러(약 1955억원)에 낙찰돼 세계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오리엔탈에 대한 갈망…'禁男 구역' 하렘을 그리는 행운을 쥐다

일본 심리학자 모로토미 요시히코는 “성공한 사람은 ‘행운’을 불러오는 사건과 많이 만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뜻밖의 행운을 만나고 싶은가? ‘알제의 여인들’이 우연에서 행운을 붙잡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줄 것이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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