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실크로드, 세계 향한 한반도 길목이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서역 및 북방계 유물과 관련된 기록은 일찍부터 한반도와 이들 지역 간에 문물이 교류되고 인적 내왕이 있었음을 실증해 준다. 이러한 교류를 실현 가능케 한 공간적 매체로의 길은 중국을 관통한 실크로드의 동쪽 구간, 즉 한반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세계적 문명교류학자이자 실크로드 연구 전문가인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저서 《우리 안의 실크로드》에서 이같이 밝혔다. 또 기존 실크로드 연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중국의 중화중심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며 실크로드의 한반도 연장론을 주장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1년간 국내외에서 개최된 실크로드 관련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 형식으로 발표한 논문 가운데 22편을 골라 엮은 논문집이다.

저자는 실크로드를 고정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전 지구적으로 역동적으로 확장된 ‘인간 인식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실크로드의 개념이 중국-인도 단계의 단선(單線) 단계와 초원·오아시스·해상 등 3대 간선 단계를 거쳐 환지구로(環地球路) 단계로 넓혀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크로드 위에서 이어져 온 한반도와 세계의 소통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고대 인디언이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향해 라틴아메리카까지 이동할 때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질렀다는 것을 밝힌다. 남인도 타밀족의 언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일치하고 1000여 개의 동음 동의어가 있는 것은 두 지역 간 교류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세 아랍에서 과거 신라를 ‘이상향’ ‘황금의 나라’라고 불렀음을 예로 들며 현재 한국에 세계 고대 금관 유물 10점 중 7점이 있다는 사실도 상기한다. 또 일본의 미술사학자 요시미즈 쓰네오가 30년간 로만글라스(로마제 유리제품)와 황금보검 등 신라의 로마 관련 유물을 연구해 저술한 《로마문화의 왕국, 신라》를 예로 들며 신라와 로마 간 문화교류가 활발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에 대해선 “오늘날까지도 계속 변화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실크로드의 개념적 면모를 무시하고 실크로드를 유라시아 구대륙에만 한정하는 국한론(局限論)에 빠져 있다”며 “실크로드가 중국에서 시작되는 일방향적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자국중심주의를 내세운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한·중·일의 실크로드 개념이 전부 다르다”며 “3국이 함께 모여 환지구적 실크로드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