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영의 ‘바코드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가로 8m, 세로 2m의 대작이다.
오현영의 ‘바코드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가로 8m, 세로 2m의 대작이다.
창덕궁 희정당에 걸린 해강 김규진의 벽화 그림 ‘금강산만물초승경도’(등록문화재 제241241호)가 바코드를 입고 현대식 산수화로 거듭났다. 첩첩이 포개진 만물상의 웅장한 봉우리와 단풍 든 가을 숲, 운무와 안개, 온정천의 푸른 물까지 바코드로 표현돼 있다. 서울 충무로 세종갤러리의 ‘오현영 초대전’에 전시된 ‘바코드 금강산만물초승경도’이다. 원작 크기와 비슷한 가로 8m, 세로 2m의 대작이다.

오현영 작가(71)는 동양화에서 산과 바위의 질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준법(法)을 바코드로 대체한다. 각종 상품과 영수증에 찍힌 바코드를 모으고 확대해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찍는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바코드들이 수직으로, 수평으로, 사선으로 촘촘히 들어차 있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와 글자들도 등장한다.
바코드로 그려낸 山水와 도시 풍경
이번 전시에는 오 작가의 ‘바코드 산수화’ 25점이 걸렸다. 전통적 산수화의 구도를 차용해 작업하되 현대사회의 시각적 이미지들을 등장시킨 현대판 산수화다. 전체 윤곽은 산 같은데 바코드와 영수증의 숫자들로 표현한 봉우리들은 도시의 빌딩처럼 보인다. 웅장한 산세를 배경으로 빌딩들이 숲을 이룬 것 같다.

현대사회의 풍경을 전통적 산수화와 중첩·대비시킨 것이 절묘하다. 거대한 빌딩들로 이뤄진 현대도시를 바코드와 상품의 브랜드, 간판 등으로 묘사한 도시 풍경은 전혀 새로운 장르처럼 신선하다.
바코드로 그려낸 山水와 도시 풍경
오 작가는 “내게 바코드는 모든 가치가 기계화되고 코드화된 현대문명을 상징한다”며 “내 그림은 그런 환경 속에 알게 모르게 젖어들며 각박해져 가는 자신과의 투쟁의 결과”라고 했다. 과거 김홍도, 정선, 김규진이 그린 금강산을 바코드를 이용해 재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가 사는 빌딩숲처럼 돼 버린다는 것이다.

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이 반영된 바코드 산수화는 이제 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의 작품에 대해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모든 것이 계량화되고 인정마저 삭막하게 코드화된 사회와 탈(脫)코드화된 자연을 매개하는 작업”이라며 “인간마저 기계적으로 코드화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현대사회를 아름다운 산수화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학적”이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