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후기 소나타 3곡 연속 연주로 다음달 전국 투어에 나서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빈체로  제공
베토벤 후기 소나타 3곡 연속 연주로 다음달 전국 투어에 나서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33)은 클래식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다. 13세 때인 2001년 열었던 첫 독주회 연주곡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이었다. 2009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1~5번), 2012~2013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1~32번)을 연주했다. 베토벤이 태어난 독일 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 멘토링 프로그램의 첫 수혜자로 선정돼 베토벤 하우스 소장품을 독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격도 취득했다.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김선욱이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연다. 원래 3~4월 일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9월로 연기했다. 서울에서는 다음달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연주곡은 당연히 베토벤이다. 코로나19의 급속한 재확산으로 일정이 다시 연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막바지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23일 서면으로 만났다.

김선욱은 사전에 보낸 질문들에 꼼꼼하고 성실하게 답했다. 먼저 연주곡으로 베토벤 후기 소나타인 30~32번을 택한 이유부터 물었다. “연주자에게도 청중에게도 굉장히 높은 집중력과 호흡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베토벤의 초기는 형식과 구조에서 철두철미했고, 중기에는 새로운 형식과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죠. 후기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 신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의 정수가 담겨 있죠.”

김선욱은 이번에 30번과 31번, 32번을 중간 휴식 없이 쉬지 않고 연속해서 연주한다. 이렇게 한 곡처럼 연주하는 이유는 뭘까. “저는 세 곡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듯이 관조하는 30번, 고해성사와도 같은 31번,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산화하는 32번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30번의 마지막 음 G샵이 31번 A플랫(G샵과 A플랫은 같은 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장대하게 마무리된 후 불안한 감7화음의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32번이 시작되죠.”

그는 “세 곡을 온전하게 순수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휴식 없이 연달아 연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런데 세 곡의 연주 시간을 합하면 70분이 넘는다. 그의 말대로 연주자나 청중이나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될 뿐 아니라 체력도 필요하다. 힘들지 않을까. “다행히 저는 타고난 체력이 좋습니다. 특별히 따로 관리하는 것은 없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극적인 음식만 피하려고 합니다.”

김선욱은 첫 독주회부터 매년 거의 빠짐없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 이번 연주회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을까. “무엇보다 청력을 읽은 베토벤이 어떤 소리를 상상하며 음표를 적었을까 깊이 고찰했습니다. ‘내가 만약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이란 가정 하에 이전에 연주하며 기억하던 음표들을 다 지워버리고 새로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했죠. 그랬더니 모든 음표가 새로 들리고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내가 느낀 이 흥분과 놀라움을 연주를 통해 잘 구현해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연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선욱은 이날 공연의 첫 곡으로 ‘안단테 파보리’를 선택했다. 베토벤은 원래 피아노 소나타 21번(발트슈타인) 2악장으로 넣으려 했지만 따로 빼내 소품곡으로 발표했다. 곡 사이에서 주제가 반복되는 론도 형식과 주제 자체가 변하는 변주가 동시에 담겨 있다. 김선욱은 “친근하며 포근하고 따뜻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욱은 음악 인생을 시작한 이후 내내 베토벤을 탐구해 왔다. 그가 피아노로 풀어낼 베토벤의 신념은 뭘까. “무엇보다 ‘자존감’이죠. 어떤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시련이 찾아와도 음악으로 극복했던 예술가가 바로 베토벤입니다. 음악가이기 이전에 인간 베토벤에 먼저 매료됐죠. 베토벤이 남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스스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