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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으로 유명한 국내 유튜브 진행자들이 일명 ‘뒷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기업으로부터 협찬을 받아 광고하고도 영상물 안에 광고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튜버 당사자와 관련 조직의 해명·사과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몇몇 유튜버가 사과하면서도 논란에 관한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하려 하거나 ‘잘 몰랐다’는 식으로 해명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많은 기업과 조직이 잘못을 저지르는 즉시 발 빠르게 사과한다. 그런데 조직과 개인이 사과하는 방송이나 사과문을 보면 미안해하는 듯하지만, 진정성이 의심되는 때가 많다. 곤혹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사실을 왜곡하고 재구성해 능숙하게 사과의 말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마을] 진심 담은 사과의 위력…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영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숀 오마라 에센셜콘텐츠 대표와 조직 심리 전문가인 케리 쿠퍼 맨체스터대 조직학 교수는 함께 쓴 《사죄 없는 사과사회》에서 기업과 최고경영자(CEO)가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의심돼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위기를 키운 사례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거짓 사과와 진짜 사과를 구별함으로써 어떻게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사과하는 게 옳은지 안내한다.

이들은 2010년 이후 세간의 이목을 끈 전 세계 기업과 기업인의 공개 사과를 꼼꼼히 살펴봤다. 그 사과 속에서 유명 인사와 기업, 조직이 그릇된 사과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고,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재구성해 사실상 거짓에 가까운 진술을 꾸며내는 데 얼마나 능숙한지를 보여준다. 기업과 조직의 이런 태도는 사과해야 할 사안인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사과해야 하는 일인지에 대한 깊은 판단 없이 사과부터 먼저 하고 보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이를 ‘사과 충동(apology impulse)’이라고 부른다.

책은 먼저 사과의 주체와 대상부터 이야기한다. 2018년 구글과 모회사 알파벳이 성적 학대와 선거 방해, 성차별 논란 등 갖가지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 구글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는 한 번도 언론과 의회에 등장하지 않아 눈총을 받았다. 저자들은 “조직이 사과해도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나타나지 않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난다”며 “사과는 책임 있는 주체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기업이 자주 활용하는 ‘익명 사과문’은 사안이 조용히 사그라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어 큰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사과를 망치는 조직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류한다. 먼저 겉으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속으론 소비자나 제3자의 변화를 요구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슈뢰딩거식 사과’다. 저자들은 “이런 방어적 수사법은 비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조직 치부를 일부 가려주지만 모든 걸 해결하진 못한다”고 비판한다.

‘바가지 요금’을 ‘가격 책정 문제’로, ‘폭발’을 ‘화염에 의한 과잉 가압’과 같은 전문 용어로 바꿔 책임을 줄여가는 ‘전문용어로 된 사과’는 의도적으로 문제 핵심을 흐리면서 사과문을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잘못했을 때 잠재적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떠넘기는 ‘책임회피형 사과’, 사과받는 구체적 대상을 정하지 않고 모호한 용어로 유감의 뜻을 전하는 ‘전시용 사과’, 허수아비 같은 존재를 내세워 사과의 대상을 교묘하게 바꾸는 ‘허수아비 사과’ 등도 있다. 저자들은 “이런 요식적인 사과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이 찾아낸 최고의 공개 사과법은 단순하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사과하는 것이다. 깊이 뉘우치는 태도와 자제력 있는 태도를 동시에 보여야 한다. 그 균형을 잘 맞춰야 소비자가 기업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는 확실한 사과법이지만 실제론 아주 드물게 찾아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그 드문 예 중 하나가 2014년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에서 점화 스위치 리콜 스캔들이 터졌을 때 진정 어린 사과문과 반성을 바탕으로 해결한 메리 바라 GM CEO를 꼽는다. 저자들은 “미디어 문화가 시시각각 변해도 대중은 언제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잘못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기를 원한다”며 “진정성이 결여된 사회에서 진심을 담은 사과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위기를 딛고 조직을 일으키게 한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