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승우 "소설은 현실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손 내밀듯 표현하는 것"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소설가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61·사진)가 최근 문학 에세이 《소설가의 귓속말》(은행나무)을 출간했다. 40년 동안 작가로 살아오며 미처 말하지 못했던 글쓰기에 대한 진솔한 고백, ‘쓰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 어떻게 ‘작가’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지난 1일 서울 서교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독자들이 책을 통해 소설가, 나아가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 속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81년 등단 이후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장편소설 《생의 이면》을 비롯한 그의 주요 작품이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번역됐다. 《생의 이면》은 2000년 프랑스 문학상인 페미나상 외국문학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를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달라고 간절히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동작’이라고 표현했다. 여러 감정 중 왜 ‘아픔’이었을까. “글쓰기의 기원은 결핍과 아픔이에요. 현실의 불만과 불만족이 소설을 쓰는 에너지입니다. 아픔을 표현하는 것은 수많은 말 대신 손을 내미는 동작 하나로 충분해요. 논리적인 설명 대신 아파서 내민 누군가의 손을 어루만져주며 그 아픔을 함께 절실히 느끼는 것이 문학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의 작품들은 존재론적 탐색을 통해 인간 구원의 문제에 다가간다. 최근작 《캉탕》 속 세 인물은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고뇌하고, 자신을 억압하던 과거의 모습과 화해하며 자유를 얻는다. 그는 “소설이란 소설가가 마음속 또 다른 자신에게 건네는 귓속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소설은 자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인정하기 싫은 수많은 모습이 내 안에 담겨 있고, 내가 원하는 걸 내 안의 어떤 존재는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불일치와 혼란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나와 이야기하고 성찰했어요. 내 안의 나와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타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교수는 이번 에세이집에서 움베르토 에코, 토마스 만, 허먼 멜빌, 프란츠 카프카, 이청준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그 속에서 얻은 문학적 사유를 은은한 필체로 전달한다. 멜빌의 《모비딕》을 이야기할 때는 ‘멈추지 않고 계속 쓰기 위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자기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밖에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40년 동안 스스로 이룬 작은 성취조차 내 힘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가족, 사회 구조로부터 덕을 봤다는 걸 깨달았다”며 “글쓰기도 작가의 인내심과 체력 못지않게 주어진 물리적·사회적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문학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타인과 떨어져 혼자 존재하고 사유해야 할 때 문학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기회가 생긴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현상이 작품 자체와 독자의 거리를 좁히며 진정한 문학적 교류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화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문학작품에 많이 녹아들 것 같습니다. 집단 문제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먼저 인식하려는 존재론적 문학이 다시금 요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