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 산책

▲ 색의 인문학 = 미셸 파스투로·도미니크 시모네 지음, 고봉만 옮김.
소설가 겸 기자의 질문에 색의 역사에 정통한 중세사 연구가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색에 관한 관념이 사회 규범과 금기, 편견 등을 반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의미로 변주돼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태도, 언어와 상상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설명한다.

저자는 그림이나 장식물, 건축, 광고는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제품, 옷, 자동차 등 이 세상 모든 것의 색이 비밀에 싸인, 불문(不文)의 코드로 지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여섯 가지 '기본색'으로 이뤄진 체계 속에서 산다.

소심한 '파랑', 오만한 '빨강', 순결한 '하양', 위선과 교활의 '초록', 콤플렉스의 '노랑', 우아함과 오만함의 '검정' 등이다.

이 같은 색에 관한 관념에는 모두 역사적 유래가 있다.

파랑은 오랫동안 중요하지 않은 색, 아무 의미가 없거나 별것 아닌 색, 고대에는 심지어 경멸받는 색이었으나 중세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지면서 위치가 바뀌었고 오늘날에는 신성한 색, 만장일치의 색으로 여겨지게 됐다.

현대에 들어 웨딩드레스의 색은 대부분 하양이지만,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웨딩드레스의 색은 화려하고 빛나는 빨강이었다.

빨강은 권력의 힘, 전쟁의 승리, 화려한 아름다움 등을 의미했기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빨강은 매춘부들의 색이기도 했다.

이처럼 색이 지닌 이미지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결정되고 언제나 변해 왔으며 상반되는 속성을 동시에 지니기도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미술문화. 168쪽. 2만2천원.
[신간] 색의 인문학·남자다움의 사회학
▲ 남자다움의 사회학 = 필 바커 지음, 장영재 옮김.
'남자다움'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이 우리 자신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해친다고 확신하는 저자가 이 같은 관념이 생기게 된 연원과 문제점, 전망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남자다움'의 세계를 구분 짓는 공간으로 '맨박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남자아이는 맨박스에서 요구하는 대로 남자다워지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립되고 외롭고 분노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할 능력이 없는 상태로 성장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특히 여성들 앞에서 과장되게 남자다운 척해야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깊은 좌절감과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열 살 무렵부터 포르노를 접하고 20대 초반이 될 때까지 1만 시간이 넘는 포르노물을 시청한다고 한다.

포르노를 많이, 자주 접할수록 점점 더 강력한 하드코어를 원하게 되고 그러면서 진정한 섹스의 즐거움이나 두 사람 간의 대등한 관계에서 느끼는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남자들은 때로 지배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튼튼하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을 향한 이러한 기대는 여성에 대한 폭력, 학대, 통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조성한다.

남자다움에 관한 사회적 정의를 재검토한다면 남자들이 받는 압박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는 돈을 벌 테니 당신은 집과 아이들을 돌보라'는 역할 관계는 변화하는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저자는 미래의 취업 시장에서 가장 소중한 자질인 창조성과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를 저해하는 맨박스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소의 책. 336쪽. 1만7천원.
[신간] 색의 인문학·남자다움의 사회학
▲ 유럽 인문 산책 = 윤재웅 지음.
국문학자인 저자가 유럽 문화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걸으며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곳, 잘 내비쳐지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을 발견해낸다.

시냇물처럼 소살거리는 이름을 가진 살리나섬에서 시의 아름다움과 시인 네루다의 흔적을 기록하고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빛을 아랍문화원의 조리개에서 찾아낸다.

위대한 로마의 건축 판테온에서 석굴암의 기저를 발견하고 르코르뷔지에의 필로티에서 한국 빌라촌의 안타까움을 고찰해낸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입구의 큰 유리 피라미드 이외에 그 아래 숨겨진 역피라미드, 그리고 다시 그들을 받치는 작은 피라미드 등 모두 세 개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작품의 연쇄성이 뿜어내는 수학의 역동적 아름다움과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문화유산의 재창조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수도원 몽생미셸에서 저자는 호화로운 성의 외관보다 돌바닥에 새겨진 숫자를 살핀다.

하루 일한 양에 따라 급여를 주기 때문에 자기가 나른 돌에 숫자를 새겨 나룻배들에 실어 보냈다는 노동자들의 손길에서 관광지가 아닌 삶의 현장 기록을 보게 된다.

은행나무. 292쪽. 1만6천원.
[신간] 색의 인문학·남자다움의 사회학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