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insight] '야알못'도 열광하는 '스토브리그'…조직에서 사라진 것 건드렸다
SBS의 야구 드라마 ‘스토브리그’(사진)엔 야구 시합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야구팬뿐 아니라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드라마를 보며 열광한다. 그 힘으로 시청률은 첫 회 5%에서 17%대로 뛰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정체성을 ‘야구 드라마’라고만 정의할 순 없지 않을까.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드라마는 이 기간에 꼴찌 구단 드림즈에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가 오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룬다. 선수 트레이드, 전지훈련 등 스토브리그에 실제로 이뤄지는 일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야구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한다. 조직 내에서 사라진 것들이다. ‘스토브리그’는 이를 비추고 또 되찾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직원들이 잃어버린 ‘꿈’을 다시 품게 하고,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다룬다. 궁극엔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심장이 가장 뛰는 순간은 직원들이 꿈꾸는 장면일 것이다. 백 단장이 부임하기 전, 드림즈엔 패배 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꼴찌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우승까지 할 것이란 꿈을 꾸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백 단장은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드라마는 우승이란 결과 자체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직원들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펼쳐질 것이란 희망을 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백 단장은 각자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 “돈이 없어서 졌다. 몸이 아파서 졌다. 모두가 같은 환경일 수 없고, 각자가 가진 무기로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또 지게 된다.”

직원들은 백 단장과 함께 열정을 품기 시작한다. 위기가 닥치자 직원들은 단장이 자리를 비워도 회의하고 할 일을 찾는다. 개인에게 닥칠 어떤 위험이든 감수하고 함께 걸어가려 한다. 마케팅팀장 임미선(김수진 분)은 이런 말을 한다. “예전엔 광고 많이 팔아 인정도 받았다. 악착같이 일했는데 팀장으로 일하던 언니가 잘리더라. 그래도 이번엔 재밌었다. 오랜만에 새하얗게 불태운 느낌.” 처음엔 다들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을 회사 생활,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지막으로 새하얗게 불태운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다. 그런 시청자들에게도 ‘스토브리그’는 작은 불씨를 남긴다.

조직에서 사라져 버린 ‘설득’의 과정도 드라마에서 반복해 등장한다. ‘확증 편향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최근엔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남의 말은 무시하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이토록 아집에 갇힌 사람들과 자주 마주한다. 백 단장은 파격적인 변화를 추구하지만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시원하게 홈런을 날리는 4번 타자 임동규를 내보낼 때도, 다시 데려오려고 할 때도 직원들 앞에서 이유를 설명하고 진행 과정을 공유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라진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제시한다. 백 단장은 선수들 연봉이 대폭 삭감되자, 최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내놓는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은 “성공하는 조직은 돈보다 사람을 중히 여기고 각자 불안에 떠는 대신 힘을 모아 위기를 돌파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조직을 꾸리기 위해선 백 단장처럼 부하 직원들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마지막에 먹는’ 리더가 있어야만 한다.

지난해 가장 유행했던 말 중 하나가 ‘라떼는 말이야’다. 상사들이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한 말이다. 세대 간 갈등을 중심으로 조직 문화를 지적하는 책도 쏟아졌다. 그만큼 조직 내 갈등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1990년생의 등장 등으로 인한 세대 간 갈등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래전에 곪은 상처가 드러난 것은 아닐까. 그 상처는 드림즈 구단처럼 꿈과 설득 등 소중한 가치와 과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를 되찾고 싶은 대중의 갈증이 ‘스토브리그’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가 진짜인 법. 조직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금이야말로 기업 문화를 제대로 꽃피울 기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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