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서 없어 공소사실 특정 난항…유족·주철희 박사, 명령서 입수
"단순한 명령서가 아니라 판결문에 준하는 문서"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누명은 군법회의가 만든 명령서 한장으로 벗겨졌다.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김정아 부장판사)는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선고 공판에서 철도기관사로 일하다 처형당한 고(故) 장환봉(당시 29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집행 명령서'…여순사건 재심서 무죄의 결정적 증거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여순사건 희생자들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단한 절차를 더는 밟지 않도록 특별법이 제정돼 구제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948년 당시 군법회의에서 장씨에게 적용한 내란과 국권 문란 죄에 대해 "범죄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948년 11월 당시 군사법원은 장씨를 내란 및 국권 문란죄 혐의로 체포한 지 22일 만에 곧바로 사형을 집행했다.

장씨의 억울한 죽음은 자칫 역사의 뒤안길에 잊힐 뻔했으나 61년만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순사건 이후 군과 경찰이 438명의 순천지역 민간인을 내란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고 결론 냈다.

장씨의 유족 등은 2013년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6년만인 지난해 3월 장씨 등이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보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이 시작됐지만, 당시 재판과 관련해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아 검찰이 공소 사실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재판의 핵심인 공소 제기를 하려면 당시 재판과 관련한 판결문 등 직접적인 자료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족과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는 국가기록원에서 1948년 당시 군법회의와 관련한 판결집행명령서와 신문기사, 인터뷰 자료 등을 입수했다.

판결 집행명령 3호 원본에는 장씨 등 민간인 희생자 3명의 이름이 등장했고 공판 일시와 장소, 피고인 명단, 죄목 등이 적혀 있었다
당시 사형 집행과 관련한 신문 기사도 판결 집행명령 내용과 일치했다.

검찰은 유족 측이 제출한 판결집행 명령서와 신문 기사 등 자료를 바탕으로 공소를 제기하고 장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열린 재판에서 "결정적인 소송기록이나 유사한 기록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군사재판의 정당성에 의문이 있었다고 인정한다"며 "증거로 제출된 명령서가 판결서에 준하고 이를 통해 사형과 무기징역, 무죄 등이 선고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여순사건 연구가인 주철희 박사는 "사법을 가장한 국가 폭력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라며 "불법과 위법이 있었다는 것을 재판부가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평가했다.

주 박사는 이어 "판결집행 명령서는 단순한 명령서가 아니라 판결문에 준하는 문서"라며 "검찰의 공소장과 판결문, 집행 지휘서 등 3개의 문서가 합쳐진 포괄적인 재판 문서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