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김건홍 씨는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시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기자 youngwoo@hankyung.com
‘2020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김건홍 씨는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시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기자 youngwoo@hankyung.com
“이제 막 시를 시작하며 처음 응모한 신춘문예였는데 이렇게 빨리 등단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도마에 오른 생선처럼 낯선 독자들의 평가가 두렵지만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휘둘리지 않고 책임감 있게 시를 쓰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에 ‘릴케의 전집’으로 당선된 김건홍 씨(28)는 “당선 통보를 받았을 때 마음을 떠올리면 두려움 80%, 설렘 20%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미학과 미술사, 예술사 등을 이론적으로 다루는 예술학부를 졸업한 예술학도였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베르 시몽동의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그린비) 등 갖가지 미학 관련 책은 탐독했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시는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학창 시절 내내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영화였다. 김씨는 “창작을 하고 싶어 스물한 살 때부터 단편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돈과 사람이 많이 필요해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며 “졸업 직전까지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두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2017년 교환학생으로 떠난 독일에서 만난 한 친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며 시를 썼던 그 친구는 독일 생활을 하는 동안 그에게 여러 시집을 빌려줬다. 그때 처음 읽은 시집이 황병승 시인의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이었다. “충격에 휩싸였어요.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보던 시와 너무나 달랐어요. 이런 시 세계가 있다는 게 재밌기도 했죠. 독일 생활 틈틈이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귀국 후 이수명 시인의 시집 《물류창고》(문학과지성사)를 읽고 시인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겠다고 결심했다. 시를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초 명지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정말 행운이었던 게 대학원 첫 수업이 이수명 시인의 강의였어요.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조교일도 하면서 열심히 시를 썼죠. 더욱 운명적이었던 건 이번 당선 시를 과제로 제출했을 때 이 시인이 ‘정말 좋은 시’라며 의도치 않게 큰 의미를 부여해줬어요. 용기 내 응모하게 된 계기죠.”

이제 막 시인으로 출발하는 그에게 시란 어떤 존재일까. “시는 달아나는 현상 같아요. 그 잡히지 않는 시의 뒷모습을 쫓아서 저도 같이 달아나는 거죠. 시는 항상 누군가에게 쫓기는데 잘 피해 제 앞에서 먼저 달아나요. 그 달아남 속에 운동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시는 제게 즐거움을 주는 도망자예요. 그렇게 저만의 시 세계를 모색하고 탐색하며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요.”

그의 당선 시들은 모두 무겁지 않은 감성이 녹아 있다. 그가 꿈꾸는 훗날 시인 김건홍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재미와 웃음을 주는 시인”이라고 했다. “사실 아픔이나 상처를 해소하려고 시를 쓰진 않아요. 그냥 묘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게 제 행복이자 시를 쓰는 이유예요. 진지한 건 주관적이지만 웃기는 건 보편적인 거잖아요.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발화보다는 실제 보이는 현상에 집중하면서 이 보편과 특수를 잘 담아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매순간 불확실한 세계…무한한 시점으로 포착하겠다
당선 통보를 받고


어디에서 어떻게 세계와 마주해야 하는지 늘 고민했다. 그런 고민 속에는 내 존재 또한 한 곳에서 정립되리라는 믿음과 동시에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세대적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서 세계를 보고 있는지,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지, 허공에 떠 있는지, 바다 위를 부유하고 있는지 불확실하고 보이지 않았다. 이는 정작 눈앞에 놓인 세계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시를 써나가면서 들곤 했다. 시를 통해 그 방향을 조금씩 틀고 있는 것 같다.

시는 내 위치를 때론 작은 의자 위로, 때론 발코니로, 숲으로, 이국으로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곳으로 옮겨 놓곤 했다. 시는 내게 무한한 시선과 시점으로 세계를 포착하는 즐거움을 알려줬다. 내 앞에 매 순간 달리 놓이는 세계에 눈을 돌리겠다. 축복처럼 주어진 현상들과 사물들을 깊고 차분히 감각해 보겠다.

부족한 글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지난 1년, 내 시보다 먼저 내 존재를 헤아려주신 김민정 선생님께, 흐릿하게 서 있는 나를 언제나 선명한 곳으로 인도해주신 이수명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

반짝이는 문학을 위해 함께 분투하는 명지대 원우들과 진심으로 서로의 시를 빚고 서로의 힘이 되어준 시 스터디 ‘쓺’의 문우들에게, 마지막으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 나 자신보다 한발 먼저 나를 믿고 응원해준 지영에게 감사드린다.

김건홍 씨는

△1992년 경북 상주 출생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