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생생헬스] 유전자 분석해 최적 항암제 선별…말기암 환자 치료 길 열려
매년 국내에서 22만 명 정도가 암 진단을 받는다. 한국 국민이 기대수명(82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하면 암에 걸릴 확률은 36.2%다.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암에 걸린다는 의미다. 남성(기대수명 79세)은 다섯 명 중 두 명(38.3%), 여성(85세)은 세 명 중 한 명(33.3%)이 암 환자가 된다.

암이 생긴 초기에 발견해 아직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았다면 수술로 암 덩어리만 떼어내면 된다. 하지만 나이가 젊어 재발 위험이 높거나 주변 조직 등으로 암이 전이됐다면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 방사선을 쬐거나 항암제를 복용해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다. 암이 다른 장기로 번진 4기암 환자도 마찬가지다. 환자에게 맞는 항암 치료법을 찾아 암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맞춤의료 시대 여는 표적항암제

암 치료는 환자 맞춤형 치료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4기 췌장암 진단을 받으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암이 주변 조직을 침범하거나 다른 장기에 전이된 3·4기 췌장암 환자도 암을 극복한 사례가 늘었다. 희망을 갖고 치료받아야 하는 이유다. 장정순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대한종양내과학회장)는 “항암치료는 면역치료와 정밀의료, 개인 맞춤치료로 변화하고 있다”며 “같은 암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암 관련 유전자 변이 상태가 다르고 장기나 전신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개인 맞춤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암 치료법은 수술, 화학항암제, 방사선 치료로 나뉘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정밀의료는 암 유전자 변이를 치료에 반영하는 것이다. 자연히 개인 맞춤치료를 할 수 있다. 이를 대표하는 치료가 표적효소를 활용하는 표적 항암치료와 면역관문억제제를 주로 사용하는 면역항암치료다.

표적치료법은 암 환자의 유전정보를 분석해 표적치료제 등 환자 맞춤형 치료법을 결정하는 것이다. 같은 위암 환자라고 해도 환자마다 암 유전자 돌연변이가 다르다면 돌연변이에 맞는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위암 맞춤형 치료법 효과 입증돼

최근에는 이런 맞춤형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지연·김승태·강원기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경미 병리과 교수, 이혁 소화기내과 교수팀은 올해 10월 전이성 위암 환자의 개인 맞춤치료 효과를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이들은 2014년 3월~2018년 7월 1차 화학 항암치료를 끝낸 전이성 위암 환자 772명을 상대로 유전체 분석 등을 한 뒤 미리 정한 8개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에 맞는 환자를 추렸다. RAS, TP53, PIK3CA 등 암 유전자 돌연변이 유무에 따라 선별된 105명에게 각 바이오마커에 맞는 약물을 투여했다.

나머지 환자 중 2차 치료가 필요한 환자 317명은 기존 치료법대로 약물을 투여한 뒤 경과를 지켜봤다. 그 결과 기존 치료법으로 2차 치료까지 마친 환자의 중앙 생존값은 6.9개월이었다. 바이오마커를 토대로 치료받은 환자의 생존 중앙값은 9.8개월로 3개월 더 길었다. 생존 기간이 40% 정도 더 길어진 셈이다.

병이 악화되지 않은 무진행생존기간도 바이오마커 치료군이 더 길었다. 바이오마커에 맞는 치료를 받은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은 5.7개월이었다. 기존 치료법대로 치료받은 환자는 3.8개월이었다.

면역관문억제제가 효과 없던 환자 중 일부는 바이오마커 치료를 받은 뒤 면역관문억제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기준인 PD-L1 단백질 발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유무 따라 효과 예측도

대장암 환자 치료에도 유전자 돌연변이 분석이 유용하게 활용된다. 대장암 환자의 45% 정도는 RAS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RAS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는 대장암 환자는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보다 특정한 표적항암제(EGFR 억제제) 효과가 더 좋다. 생존율도 높아진다. 대장암 환자에게 RAS 유전자 돌연변이는 표적항암제의 효과를 예측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을 활용해 여러 암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사한다.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유전자 분석법보다 효율적으로 암 표적치료제를 선택해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 중 BRCA1·2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표적치료제 올라파립 치료를 했더니 표준치료법보다 유방암 진행 위험이 42% 낮아졌다.

뇌 전이가 흔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도 표적항암제를 치료에 활발히 사용한다. 장 교수는 “특정 유전자 활성화 돌연변이가 있는 폐암 환자는 특정한 표적 유전자 산물만 억제하는 표적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흡연을 하지 않아도 EGFR 유전자 돌연변이와 ALK 유전자 변이 등으로 폐암이 발병하는 비율이 30% 정도”라며 “이들을 억제하는 표적치료제만 사용해도 폐암 생존율을 2배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면역 활성화하는 면역항암제

몸속 면역력을 높여 암을 치료하는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도 늘고 있다. 2015년 말기 흑색종을 앓고 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를 받은 뒤 완치돼 주목받기도 했다.

인체에는 암세포 등 이종물질을 공격해 죽이는 T면역세포가 있다. 이들 면역세포가 지나치게 과발현되면 다른 정상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면역세포 인지능력을 떨어뜨리는 면역관문 시스템도 작동한다.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이 때문에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찾지 못하고 암 조직은 성장하게 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잘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찾아 공격하도록 돕는 것이다. 면역항암제는 인공면역단백질을 몸속에 넣어 면역체계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면역관문억제제(CTLA4 억제제, PD-1 억제제, PD-L1 억제제), 면역세포치료제, 면역바이러스치료제 등으로 나뉜다.

[이지현의 생생헬스] 유전자 분석해 최적 항암제 선별…말기암 환자 치료 길 열려
황인규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면역관문억제제(PD-1 억제제)는 악성 흑색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암에서도 좋은 임상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비소세포폐암, 신장암, 호지킨림프종, 두경부편평세포암, 요로상피세포암 등 다양한 적응증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면역관문억제제는 세포독성항암제나 방사선 치료 등과 함께 치료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면역관문억제제 등 면역항암제가 암 표준치료로 자리잡으면서 암 환자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bluesky@hankyung.com

도움말=장정순·황인규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지연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